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2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주거안정 지원 강화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제공국회가 '선구제 후회수' 제도화를 골자로 전세사기특별법을 개정하기로 한 가운데 정부가 피해자 지원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대안'을 제시했다. 주거안정 강화를 위해 세부적 정책 개선안이 제시됐지만 구조 자체의 변화는 없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27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주거안정 지원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국회의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 처리를 하루 앞두고 이뤄진 이번 발표는 '선구제 후회수' 제도화에 대한 정부의 반대를 재확인한 것이다.
국회는 28일 본회의에서 과반 의석의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특별법 개정안을 처리할 예정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전세사기 피해자로부터 임차보증금 반환채권을 사들여 보증금 일부를 '구제'한 뒤, 나중에 전세사기 주택을 팔아 해당 채권매입 비용을 '회수'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이날 발표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염두에 둔 명분쌓기로 해석되기도 한다.
박 장관은 발표 과정에서 "야당의 특별법 개정안에 따르면 보증금 채권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법과 절차가 미비해 현실적으로 시행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 주택도시기금이 원래 용도에 맞지 않게 사용될 뿐만 아니라, 향후 막대한 손실이 예상되고 이는 고스란히 국민 부담으로 전가된다"고 말했다.
LH가 사들여 최장 20년 살도록…퇴거 때 잔액 지급
정부가 발표한 지원 강화 방안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기존 피해자 지원업무를 확장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우선 LH는 피해자의 우선매수권을 양도받아 피해주택을 경매를 통해 매입한 후 해당 주택을 공공임대로 바꿔 피해자에게 최장 20년간 제공한다.
피해자는 최초 10년간 임대료를 내지 않고 살 수 있다. 이는 경매에서 정상 매입가(감정가)보다 낮게 낙찰받은 차익을 공공임대 보증금으로 전환해 월세로 차감하는 방식이다. 재원이 부족하면 10년간은 재정으로 보조한다는 계획이다. 피해자의 추가 10년간 거주는 시세 대비 50~70% 할인된 임대료를 낸다.
기존 정책에서는 LH가 다시 제공한 공공임대주택에 시세 대비 30~50% 수준 임대료를 부과했다. 대신 한도 4억원의 연리 최저 1.2%짜리 대환대출을 제공했다.
정부 발표에는 또 임대료로 제하고 남은 경매차익을 피해자가 공공임대주택에서 이사할 때 지급한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보증금 손해를 최대한 회복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취지다.
아울러 기존에는 매입 불가였던 위반건축물이나 신탁사기 주택 등도 LH가 사도록 요건이 완화된다. 이는 전세사기 피해자단체도 요구해온 내용이다. 다가구주택에 대해서는 피해자 전원 동의로 LH가 경매 매입한 뒤, 차익을 피해액 비율대로 안분하는 방안도 도입된다.
피해자 전용 정책대출 확대…중개사 책임 강화
8일 오전 국회 앞에서 여덟 번째 전세사기 희생자 추모 및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황진환 기자전세사기 피해자 전용 정책대출의 요건 완화로 금리 부담을 낮춘다는 방안도 나왔다. 피해자로 결정되면 임대차계약 종료 전이라도 임차권 등기 없이 기존 전세대출의 대환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한다. 다른 버팀목전세대출 이용자도 피해자 전용 버팀목전세대출로 대환할 수 있다.
정부는 또 전세사기 피해자 보금자리론 지원대상에 주거용 오피스텔을 추가하고, 불가피하게 피해주택을 낙찰받는 피해자에게는 디딤돌대출의 생애최초 혜택을 이연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밖에 정부는 안심전세앱으로 임대인의 주택 보유 건수·보증사고 이력 등을 종합한 위험도 지표를 제공하는 등 임차인들의 정보접근성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공제금 지급절차 간소화와 공인중개사의 손해배상 책임 강화 등도 추진한다.
피해자에 경매차익 지급, 임대료 부담 없는 거주 지원, 위반건축물이나 신탁사기 피해주택 매입, 오피스텔 보금자리론 지원 등은 전세사기특별법 개정 사안이다. 다가구 확정일자 정보 제공(주택임대차보호법), 공인중개사의 책임 강화(공인중개사법) 등도 법 개정이 요구된다.
정부는 각계각층의 의견수렴을 거쳐 발표된 지원방안을 보완하는 한편, 전세사기피해자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박 장관은 "22대 국회 구성과 동시에 정부안을 중심으로 여야와 긴밀히 협의하고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전세사기 피해자의 주거안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고작 1건 LH 매입, 가속될까…보증금 회수액은 얼마나
정부 발표에서 지원 범위가 확장됐지만, 우선매수권을 양도받은 LH가 낙찰받은 주택을 공공임대주택으로 피해자에게 '최장 20년' 공급한다는 구조는 유지된다.
다만 지난해 6월 특별법 시행 이후 전세사기 인정 사례가 1만7060건에 달하는 동안, LH가 우선매수권을 넘겨받아 사들인 피해주택이 1건에 그치는 등 더뎠던 피해구제의 '속도'가 얼마나 개선될지는 미지수다.
"이번 방안으로 피해자는 살던 주택에서 추가 임대료 부담 없이 보증금 피해까지 회복할 수 있어 많은 신청 수요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는 정부 설명대로 구제가 더 지연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정치적인 절충이 원활히 이뤄질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정부 설명대로 앞으로 확장될 LH의 역할은 특별법 개정이 이뤄져야 가능한데, 과반 의석의 야당이 선구제 후회수 방침을 포기하고 정부안에 동의할지는 알 수 없다.
주거안정성 못지않게 '평생 모은 재산'인 전세보증금 회수에 민감한 피해자들도 있는 만큼, 여전히 아쉽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은 "공공임대주택에 10년 살고 나갈 때 피해자가 받아 나갈 경매차익이 과연 얼마나 될까. 최우선변제금 만큼도 되찾기 어려운 후순위 임차인에게는 회수방법이 아예 없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사항. 국토교통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