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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대통령 격노'가 죄냐는 물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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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대통령 격노'가 죄냐는 물음에 대하여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충남 천안 재능교육연수원에서 열린 제22대 국민의힘 국회의원 워크숍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윤석열 대통령이 30일 충남 천안 재능교육연수원에서 열린 제22대 국민의힘 국회의원 워크숍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596년 전라병마절도사로 전근간 이순신 장군은 이듬해 임금의 명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삭탈관직을 당했다. 왜군 침입에 맞서 호남의 곡창지대를 방어하고 왜군의 수륙병진책을 죽을 힘을 다해 막았지만 모함앞에서 조선의 최고 장수도 어쩔 수 없었다.
     
    삭탈관직의 이유는 조정의 명에 따라 싸우지 않고 조정을 기망했다는 것이었다. 무능한 선조와 위관들은 전장의 사실에 입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순신의 전공을 모함하는 헛것만 쫓아다녔다. 뒤에는 임금의 칼이 노려보고 앞에선 적병의 칼들이 춤을 추었다. 장군이 마주한 전장은 그 자체가 허깨비와 같은 것이었다.
     
    장군은 한양 의금부로 압송돼 모진 고문을 받는다. 장군이 압송되고 원균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된 지 5개월도 지나지 않을 때였다. 1597년 7월 16일,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칠천량 전투에서 해군 사상 최대 참패를 당하고 만다. 조선 수군에 13척의 배만 남게 됐다는 대패의 전장이다. 원균 최후는 언급할 것이 없다.
     
    정유재란을 떠올린 이유는 해병대 사건을 끄집어내고 싶어서이다. 필자는 이순신 장군과 해병대 박정훈 대령을 같은 반열로 생각하지 않는다. 장군은 우리 역사에서 영웅이다. 박 대령을 영웅이라 칭할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박 대령은 '참군인'이라고 생각한다. 참군인이란 무엇인가. 제 자리에서 제 임무를 생각하며 사심 없이 공정하게 일처리하는 군인을 참군인이라 할 수 있다. 그곳이 전장이든, 수사이든, 일상의 부대 지휘이든 상관없다.
     
    거듭 말하지만 장군 이순신이 마주한 전장과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의 전장은 감히 비교조차 불가하다. 그러나 관통하는 하나의 공통점은 있다. 허깨비 같은 것인데, 그것은 '어명'이라 해야 할 것이다. 어명은 왕의 명령이고 절대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충남 천안 재능교육연수원에서 열린 제22대 국민의힘 국회의원 워크숍에서 만찬을 마친 뒤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윤석열 대통령이 30일 충남 천안 재능교육연수원에서 열린 제22대 국민의힘 국회의원 워크숍에서 만찬을 마친 뒤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의 책임 문제가 해병대 사건에서 최대 쟁점이다. 박정훈 대령의 항명사건을 비롯한 해병대 사건은 '대통령의 격노'가 아니었다면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었다. 대통령의 격노는 이 사건의 피라미드 꼭짓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 열쇠말을 풀지 않고는 사건의 실체를 절대 풀 수 없다.
     
    격노에 대한 정부·여당의 방어논리는 마치 모래성 같다. 처음엔 이첩보류 지시를 어겼다고 주장하다가 수사외압 앞에서 군색해지자, 해병대 수사단은 "수사권이 없다"는 궤변을 늘어놨다. 그것도 허접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다. 급기야는 골목길에서 주먹질이라도 하기로 작정한 듯 "대통령 격노가 무슨 죄가 되냐"고 고개를 빳빳하게 세운다.

    시간을 뒤로 돌려보자, 2023년 7월 28일 아침 7시, 포항 해병대 1사단의 마린호텔에서 박정훈 수사단장은 김계환 사령관에게 초동수사 결과를 보고했다. 수사단을 지휘하는 사령관은 보고를 받고 "내가 궁금한 것이 다 해소되었다. 이 결과를 유가족들에게 잘 설명해라"고 지시했다. 며칠 전 해병대 방첩부대장은 "안전사고가 많이 일어나 국가적 관심으로 대두됐는데, 아래 잔챙이 몇 명 처리하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진언했다. 그렇게 결정된 것이 임성근 사단장을 포함한 8명의 이첩이었다.
     
    2023년 7월 31일 오전, 채 상병 사건 보고를 받은 윤석열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사실을 더 무엇으로 증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오히려 그 격노가 한번이 아니라 며칠에 걸쳐 연속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닌가 할만큼의 사실들만 확인되고 있다. 이틀 뒤인 8월 2일 낮 12시경, 윤 대통령은 개인 휴대폰으로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1시간 동안 3번에 걸쳐 무려 18분에 이르는 통화를 한다. 대통령은 공관에서, 장관은 우즈베키스탄에서 어떤 말을 주고받았을까.
     
    윤석열 대통령과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연합뉴스·박종민 기자  윤석열 대통령과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연합뉴스·박종민 기자 
    3번의 통화 직후, 대통령실과 국방부는 또 한 번 전광석화처럼 움직였다. 특히 대통령과 최측근 법률 참모가 이끄는 공직기강비서관실 등장은 의미심장하다. 공직기강비서관실은 대통령으로부터 무슨 '어명'이라도 들었는지 모르겠으나, 국방부는 물론이고 경찰청과 경북경찰청을 쥐락펴락했다.
     
    허깨비에 쫓긴 듯 마치 경찰은 고양이 앞에 쥐같았다. 공직기강비서관실의 업무와 기능을 뛰어넘는 국정농단 수준이라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8월 2일 대통령과 그 위관들의 권력 행사가 특검을 통해 반드시 진상이 규명돼야 하는 이유이다. 장관 이종섭은 "국방부 검찰단의 이첩기록회수를 당시엔 몰랐다"고 했으니 더욱 그렇다.
     
    "대통령의 격노가 무슨 죄가 되냐"는 우격다짐에 답을 할 때가 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선시대의 선조임금이 아니다. 윤 대통령은 공화국의 지도자이다. 공화국의 지도자는 헌법과 법률에 의거해 국가를 운영해야 한다. 어명으로 다스리지 못한다. 국군통수권자라고 해서 '어명'처럼 지시할 수 없다. 국군통수권자도 이 사건의 경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는 물론이고 군사법원법, 군사경찰직무법 및 시행령, 법원이 재판권을 가지는 군인 등의 범죄에 대한 수사절차 등에 관한 규정 등과 배치되는 지시를 하면 안 된다.
     
    격노가 무슨 죄냐고 묻기 전에 대통령은 7월 31일과 8월 2일 무슨 지시를 했고,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국민에게 진실되게 설명해야 한다. 공화국 지도자의 의무이다. 그래야 그 지시가 헌법과 법률에 합당한지를 판단할 수 있다. '격노가 죄냐'는 항변은 그때 성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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