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작가 호추니엔이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호추니엔: 시간과 클라우드'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시아의 근대성을 탐구해온 싱가포르 출신 작가 호추니엔(48)의 연구조사(서베이) 전시 '호추니엔: 시간과 클라우드'가 4일 서울 아트선재센터에서 개막한다. 전시는 '미지의 구름'(2011), '호텔 아포리아'(2019), '시간(타임)의 티'(2023~2024) 등 3점을 중심으로 작가의 작품 세계를 살핀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6채널영상 설치작업 '호텔 아포리아'다. 2019년 일본 아이치트리엔날레 커미션 작품이다. 당시 일본 제국주의에 대해 연구하던 작가는 큐레이터로부터 '료칸(일본 전통 여관)인 기라쿠테이에 장소특정적 작품을 설치해달라'고 제안받았다. 알고 보니 이 료칸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가미카제 특공대였던 구사나기 부대의 마지막 연회 장소였다.
작가는 3일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싱가포르 출신 작가가 일본 제국주의 역사를 다룬 작품을 만드는 것에 대해 우려 섞인 시선이 있었지만 이 문제에서 외부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싱가포르를 비롯한 동남아시아는 일본 제국주의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며 "싱가포르의 경우, 영국에 지배받은 기간이 더 길었지만 지배 강도는 일본이 훨씬 셌다"고 말했다.
호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호추니엔: 시간과 클라우드' 기자간담회에서 참석자가 '호텔 아포리아'를 관람하고 있다. 전시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아시아 근대성, 역사, 정체성을 탐구한 호추니엔의 작업을 선보인다. 연합뉴스 2019년 이 작업을 공개했을 때 일본 관객과 평단의 반응은 예상 외로 호의적이었다. "전시장에 긴 줄이 늘어섰고 SNS 상에서 토론이 활발하게 이뤄졌어요. 비평가들은 자국의 역사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준다고 했죠."
작품에서 역사를 다루는 이유에 대해 작가는 "과거에 해소되지 않은 트라우마를 직면하지 않으면 그것은 다양한 형태로 돌아와 우리를 억누른다. 서로 차이를 인식하고 존중해야 진전된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호텔 아포리아'는 작품 영상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얼굴을 지웠다. "얼굴이 비어 있으면 아무도 아니면서 모두가 될 수 있어요. 우리 자신을 거기에 투사하면 과거의 존재들을 현재로 데리고 올 수도 있죠."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호추니엔: 시간과 클라우드' 기자간담회에서 참석자가 작품을 관람하고 있다. 전시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아시아 근대성, 역사, 정체성을 탐구한 호추니엔의 작업을 선보인다. 연합뉴스 2채널 영상설치 작업 '시간(타임)의 티'와 43개의 모니터 영상설치 작업 '타임피스'는 아시아의 근대성과 시간성에 대한 총체적인 연구의 결과물이다. '호텔 아포리아' 작업을 하면서 영감을 얻었다. 작가는 "일본 제국주의에 대해 리서치하던 중 일본이 도쿄의 시간을 기준으로 동남아시아의 시간대를 통합하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이후 시간에 흥미를 가졌고 시간이 제국주의의 도구로 사용됐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서구 근대성의 유산을 비틀면서 그 파국의 잔해를 보여주는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단채널 영상설치 작업 '미지의 구름'은 싱가포르의 허름한 공동 주거단지에 거주하는 인물 8명이 경험하는 초현실적 사건이 펼쳐진다. '뉴턴'과 '굴드'는 서양의 발명품인 과학과 예술의 개념을 비틀고 '지구'는 유럽 바로크와 낭만주의 화가들의 도상을 차용해 재난 이후 지구의 묵시론적 풍경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