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 관련 영상 게시한 유튜브 채널. 유튜브 캡처일부 유튜버가 지난 2004년 경남 밀양에서 발생한 집단 성폭행 사건 가해자들의 신상을 최근 잇따라 공개하면서 강도 높은 처벌이 이뤄졌어야 한다는 공분(公憤)과 맞물린 호응을 얻고 있지만, 한편에선 이 같은 사적 제재의 부작용에 대한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피해자 동의와 정보 검증 없는 폭로라는 지적도 적지 않은 가운데,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는 해당 유튜브 채널에 대해 제재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신상공개에 폐업‧해고…방심위 "관련법 위반 사항 검토 중"
방심위 관계자는 7일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유튜브 채널 나락보관소 관련 사안에 대해서 인지하고 있다"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 위반 여부 및 명예훼손 등 권리 침해 여부에 대해서 검토를 진행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유튜브 채널 '나락보관소' 운영자는 지난 1일부터 밀양 집단 성폭력 사건 가해자들의 이름과 나이, 직업 등 신상 정보를 동영상을 통해 공개했다.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은 2004년 밀양 지역 고등학생 44명이 울산 여중생 1명을 1년여 간 지속적으로 성폭행한 사건이다.
밀양 집단 성폭행 가해자가 일했던 청도 식당. 연합뉴스 나락보관소가 올린 신상 공개 동영상은 각각 100만~300만 회에 달하는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했다. 여파도 상당했다. 첫 번째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이 일하던 식당은 '별점 테러' 등으로 폐업했고, 또 다른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은 직장에서 해고됐다.
단시간에 이목을 집중시킨 나락보관소는 이 같은 신상 공개가 피해자의 동의를 받고 이뤄진 것이라고 했지만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나락보관소는 "피해자 가족 측과 직접 메일로 대화 나눴고 44명 모두 공개하는 쪽으로 결론이 난 상태"라고 설명했지만 피해자를 지원한 여성단체는 "사실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피해자 지원단체인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지난 5일 "피해자 측은 첫 영상이 게시되기 전까지 해당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며 "영상 업로드된 후 지난 3일 영상 삭제 요청을 했다"고 밝혔다.
결국 나락보관소 운영자는 7일 유튜브 채널 커뮤니티를 통해 "피해자분들의 간곡한 요청이 있었다"며 "관련 영상을 전부 내렸다"고 밝혔다. 이날 오후 현재 해당 채널의 밀양 집단 성폭력 사건 관련 영상은 전부 삭제된 상태다.
'솜방망이 처벌' 공분 토대로 사적 제재…전문가 "부작용 크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처럼 유튜브 등 온라인을 통해 가해자의 신상을 공개해 사실상 처벌 효과를 보는 '사적 제재' 행위가 끊이지 않는 배경엔 사법 체계에 대한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장다혜 연구위원은 "밀양 집단 성폭력 사건은 성폭력 피해에 대한 국가적 대응의 실패 사례"라며 "이번 현상의 배경에 집단적인 성폭력에 대한 처벌 수위가 낮았던 당의 양형 관행이 있었다"고 분석했다.
당시 사건 가해자 44명 중 10명은 재판에 넘겨졌고 20명은 소년원으로 보내졌다. 나머지 가해자는 합의에 따른 공소권 없음 등의 결정이 됐다.
'솜방망이 처벌'에 대한 분노가 사적 제재 행위에 대한 호응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등 부작용과 불법성이 큰, 위험한 행위라는 지적이 대체적이다.
성범죄 전문 변호사인 이은의 변호사(이은의 법률사무소)는 "사적 제재는 피해자의 잊혀질 권리와 스스로 피해 사실을 잊고자 하는 노력을 짓밟는 행위"라며 "특히 사건이 다시 재점화되는 걸 피해자가 원치 않는 상황에서 이뤄지는 사적 제재는 가해자를 저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피해자를 무시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사적 제재는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될 수도 있지만 불확실한 정보를 바탕으로 신상을 공개한다는 점에서 애꿎은 피해자가 생길 가능성도 높다"고 짚었다.
실제로 나락보관소는 '밀양 사건 가해자 가운데 한 사람의 여자친구가 운영하는 곳'이라며 한 네일숍을 공개했다. 그러나 해당 숍 사장은 지난 5일 인터넷 카페 게시판에 글을 올려 "가해자의 여자친구가 아니다"며 "더 이상 이 같은 마녀사냥으로 인한 피해가 없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