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우리 민간단체의 대북전단과 북한 오물풍선으로 격화된 한반도 긴장이 일시 소강 국면에 들어섰지만 불안감은 여전하다.
이번 주 북러 정상회담과 한중 외교안보대화라는 '외교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결과에 따라 다시 심각한 충돌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이쯤에서 차분하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보듬는 게 불필요한 사태 악화를 막을 수 있다.
객관적 인식을 위해서는 역지사지(易地思之)가 필요하다. 상대의 입장에도 서봐야 주관적 오류를 피하고 진짜 실현 가능한 해법을 내올 수 있다.
지난달 29일 북한 김여정 담화는 "우리에 대한 저들의 전단 살포는 '표현의 자유'라고 떠들고 그에 상응한 꼭 같은 우리의 행동에 대해서는 '국제법의 명백한 위반'이라는 뻔뻔스러운 주장"을 남측이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중 잣대라는 것이다.
물론, 실패국가 북한의 허무맹랑한 주장을 우리와 동등하게 비교할 수 없다. 오물 쓰레기로 앙갚음하는 몰상식도 그저 할 말을 잊게 만든다.
탈북민 단체 겨레얼통일연대 회원들이 지난 7일 밤 강화도에서 대북 전단을 살포하는 모습. 이 단체는 8일 보도자료에서 대형 풍선 10개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비판하는 내용의 대북 전단 20만 장 등을 담아 북한 방향으로 날려 보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하지만 북한으로선 대북전단을 쓰레기로 여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북한이 아무리 허접한 국가라 해도 최고 지도자의 부인을 포르노 합성사진으로 능욕하는 것까지 참아내긴 어렵다.
북한은 이미 탈북민 반북단체를 쓰레기라 부른다. 그들이 "정치선동 오물들"(대북전단)을 뿌렸으니 응당 오물풍선으로 되돌려준다는 게 그들의 논리다.
남에게 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다. 상대가 북한이라고 예외일 순 없다. 이게 국가 간 상호주의이며, 따라서 '표현의 자유'에도 금도가 있다.
만약 누군가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나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원색적으로 비방하는 전단을 날려도 우리 정부는 과연 가만히 있을 것인가?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대북전단이나 대중국 전단, 대일본 전단은 본질적 차이가 없다. 상대가 만만한지, 감당 가능한지가 다를 뿐이다.
황진환 기자 그런 점에서 표현의 자유에도 현실적 국경선이 존재한다. 국경을 넘을 자유까지 국제적으로 보장되진 않는다. 특히 그 수단이 '풍선' 같은 물질적 실체가 있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되는 셈이다.
자국 영공에 허가 없이 들어오는 비행체를 용인해줄 나라는 없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협약상 풍선은 엄연한 비행체다.
미국은 지난해 초 자국 영공에 진입한 중국 풍선을 격추했다. 우리 정부도 이번 오물풍선 사건 때 격추를 검토했다. 북한에 넘어가는 대북전단 풍선이라고 다를 바 없다.
나는 항상 옳고 너는 언제나 틀리다 식의 태도로는 어떠한 문제도 풀 수 없다. 우리는 이미 안으로 '내로남불' 병세가 깊어 가는데 밖에서조차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