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 공관에서 열린 고위 당ㆍ정ㆍ대 협의회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국민의힘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 추경호 원내대표, 정진석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마치고 회의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정부가 저출생 대응 정책 발표를 예고한 가운데, 관련 사업들의 '구조조정' 압력이 거세다. '예산 뻥튀기' 문제와 별개로 여전히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투자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신설될 '저출생 컨트롤타워'가 관련 정책을 제대로 총괄할 수 있도록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16일 고위당정협의회에서 "2006년 저출산 예산 처음 신설돼 18년간 천문학적 재정이 투입됐지만 결과적으로 저출생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며 "정부는 저출생 문제에 대해 보다 근본적이고 실효성 있는 접근을 통해 출산율 저하 추세를 역전시키는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당정은 고위급협의회를 통해 신생아 특례대출 소득 기준 완화를 전향적으로 검토하는 등 저출생 대책을 마련해 발표하기로 했다. 최근 저출생 예산이 방만하게 운영됐다는 지적이 일어난 가운데, 간접적인 지원 사업에 예산을 쏟아붓기보다 육아 기반을 확충하는 데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앞서 KDI(한국개발연구원)은 지난 11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와 함께 주최한 세미나에서 지난해 저출생 대응 사업에 투입된 예산 47조 원 중 저출생 대응 핵심직결과제는 23조 5천억 원으로 절반에 불과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저출생 예산이 뻥튀기됐다는 비판은 하루이틀 문제가 아니다. 저출생 대응 예산은 2006년 2조 1천억여 원에서 시작해 2021년 46조 7천억 원, 2022년 51조 7천억 원까지 치솟았지만, 출산률을 해마다 최저기록을 갈아치웠다.
보건복지부나 여성가족부, 고용노동부 등 부처는 물론, 전국 각지 지자체마다 중구난방으로 저출생 사업을 벌이면서 예산 규모는 부풀어 올랐지만 정책 효과가 제대로 검증되지 않거나, 사업이 중복된 경우도 잦다. '저출생' 이름표를 예산을 수월하게 배정받기 위한 명분으로 악용한다는 지적도 드물지 않다.
특히 역대급 세수펑크가 일어났던 지난해보다 올해 재정 적자가 더 커질 위기에 정부는 저성과 사업을 퇴출하는 지출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가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유재언 교수는 "최근 KDI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아닌 조세재정연구원이 저고위 위탁 아래 인구정책평가센터를 운영하기 시작한 것은 저출생 사업을 재정, 조세 측면에서 전문적으로 판단하겠다는 것"이라며 "그동안 저출생 사업에 허수도 있었는데, '다이어트'가 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저출생 예산이 겉보기에만 급증했을 뿐, 정작 저출생 해법과 직결된 사업은 제자리걸음 수준이라는 비판도 늘 있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국제비교기준인 OECD 가족지원 예산의 평균치가 GDP 대비 2.29%인 데 비해 한국은 1.56%에 그친다.
더구나 '저출생' 관점에서 당장 성과를 거두지 못했거나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업이 아니라도, 해당 사업을 곧바로 구조조정 대상에 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예컨데 지난해 저출생 예산 중 주거지원 예산이 21조 4천억 원에 달했는데, 저출생 해결 효과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이런 사업을 모조리 '구조조정'할 수는 없다. 간접 지원 사업이라도 저출생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느냐 여부를 간단히 판단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오건호 운영위원장은 "저출생 이름이 달린 예산의 범위는 정부가 임의로 분류하기 나름으로, 간접 사업들도 집어넣은 것 자체는 큰 문제는 아니다"라며 "결국 관건은 정부가 저출산에 대한 새로운 정책을 입안할 수 있느냐, 그 사업들이 실제로 얼마나 효과적이냐를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양대학교 정책대학원 이삼식 교수는 "저출생 사업으로 분류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일 뿐, 저출생 효과가 낮다 해도 대다수 부처 고유 사업은 자체 사업 목적이 있으니 그대로 남을 것"이라며 "저출생 대응기획부가 신설되면 저출생에 분류됐던 수많은 사업들이 이관되고, 실질적인 저출생 대책 예산이 어느 정도 규모인가 이제야 나오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마트이미지 제공이처럼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도록 정부의 대담한 투자와 '선택과 집중'이 함께 요구받는 가운데, 신설될 '인구 정책' 컨트롤타워가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그동안 기존 저고위는 자문 기구로 정책 심의 기능만 가질 뿐, 다른 부처·지자체와 직접 연계해 사업을 조정하거나 자체적으로 정책 기획해 예산을 집행할 권한이 없었다. 만약 윤석열 대통령이 장담한대로 저출생 대응기획부가 정책 집행권·예산권을 가진다면 저출생 정책에 대한 선택과 집중과 함께 실질적인 예산 확보가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를 받는다.
다만 단순히 하나의 부처로서 저출생 사업을 추진하는 수준을 넘어, 부총리급 부처로서 정부 인구정책을 총지휘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여러 부처·지자체를 망라한 저출생 사업을 기획하거나, 기존 정책을 평가해 개선하게끔 다른 부처를 평가할 수 있는 권한·역량을 신생 조직이 갖추는 일은 쉽지만은 않다.
당장 이번 저출생 정책 발표를 앞두고 저고위 일각에서는 출생 본연의 사업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급감한 세수에 '건전재정'에 골몰하고 있는 기재부 등에서 저출생 사업 군살빼기를 강도 높게 주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기재부 관계자는 "기재부가 부총리급 부처로서 활약할 수 있던 이유는 예산편성권 뿐 아니라, 차관보급 정책 보좌 조직 등을 통해 관련 부처들의 사업을 속속들이 파악할 능력을 갖췄기 때문"이라며 "신설될 조직이 단순히 하나의 부처를 넘어 다른 부처 사업까지 총괄하려면 조직구성부터 충분한 역량을 갖춰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신설될 저출생 대응기획부가 사회부총리급 부처로서 인구 정책의 컨트롤타워로 작동하려면 정부의 충분한 '투자'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온다.
육아정책연구소 최윤경 저출생가족정책연구실장은 "저출생 대응기획부가 문제 인식부터 정책 대응 및 설계, 집행 및 사후 조치까지 묶어서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며 "특히 다부처 사업일 수밖에 없는 저출생 사업 특성상 정책 설계는 물론 행정력, 재정 구성까지 같이 권한을 가져가야 각 부처별 사업을 연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유 교수는 "보건복지부에는 900여 명이 근무했는데, 그동안 저고위는 20~40여 명이 근무했다"며 "최근 1년새 저고위에 힘이 실렸다지만, 그동안 저출생 정책은 사실상 기재부와 KDI가 중심인 인구정책 TF가 주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재부에서 맡고 있는 역할처럼, 저출생 대응기획부에도 인구 관련 부처에 대한 다양한 조율 권한이 같이 주어져야 할 것"이라며 "특히 '엉터리' 저출생 사업 중 상당수가 지자체에서 만드는데, 지자체의 사업계획서를 단순 취합·배포만 하다시피 했던 저고위가 부처로 승격되면 강도 높게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