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한국 대표 마에스트라'로 꼽히는 여자경 지휘자의 저서 등에 기재된 '프랑스 브장송 국제 지휘 콩쿠르 수상 이력'이 허위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세계적 권위를 지닌 해당 콩쿠르 측은 직접 '여 지휘자가 상을 받은 적이 없다'는 취지의 공식 입장을 내고 법적 대응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파장이 커지고 있다.
여 지휘자는 논란이 일자 언론이 자신의 수상 이력 설명을 사실과 다르게 보도한 탓이라며 이를 수정하지 못한 건 실수이지만, 결과적으로 자신도 피해를 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본인 저서에도 사실과 다른 수상 이력이 적시된 경위를 묻는 질문엔 결국 "확인을 못했다. 죄송하다"고 했다.
그간 여 지휘자는 각종 보도, 공연 홍보 팸플릿 등에서 브장송 국제 지휘 콩쿠르(브장송 콩쿠르)에서 '오케스트라가 뽑은 지휘자상'을 받았다고 소개됐다. 직접 지은 책에서 해당 수상 이력을 언급하기도 했다. 프랑스 브장송 콩쿠르는 세계 최고 권위의 지휘자 콩쿠르로 손꼽힌다.
20일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브장송 콩쿠르는 지난 4월 "여자경 지휘자는 수상을 주장할 권리가 없다(she has no right to assert this)"는 입장을 문화체육관광부, 대전시립교향악단 등에 공문 형식으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브장송 콩쿠르 측에서 보낸 공문 일부여자경 지휘자는 지난해 4월부터 대전시립교향악단(대전시향)에서 상임 지휘자와 예술감독을 겸하고 있다. 그전에는 서울 강남문화재단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및 예술감독을 역임했다.
해당 공문에서 브장송 콩쿠르 측은 "우리는 여자경 지휘자가 수년 전부터 전기(biography), 사회관계망서비스(social medias), 미디어 인터뷰 등에서 2002, 2004년 '오케스트라가 뽑은 지휘자상 수상자'라고 말한 것을 알았다"며 "그녀는 브장송의 어떠한 상도 받지 않았고 우리는 그녀의 이력에서 브장송에 대한 언급을 제거할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수상 이력이 언급된) 모든 문서를 유의해서 보고, 앞으로 이런 정보들을 확인하도록 요청한다"며 "도둑질(theft of title or reward)이 반복되면 법적 대응(legal action)을 검토하겠다"고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이에 여 지휘자는 브장송 측에 "언론사가 보도 과정에서 상 이름을 축약하면서 벌어진 일이다"라는 취지로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 지휘자는 전날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도 브장송 콩쿠르 측에 사과하고 관련 수정 작업을 시작했다고 설명하면서도 비슷한 취지의 해명을 내놨다.
그는 "(브장송 콩쿠르 본상이 아닌) 커뮤니티 후원회에서 상을 받았던 게 약간 오해가 되고 글들이 공연장이나 공연 주체 이런 데에서 이렇게 축약되고 늘어나고 바뀌었다"며 "인터뷰 때 (수상 관련 얘기를) 했는데 이게 다르게 표현이 돼서 나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보면 저도 그런 인터뷰 등으로 피해를 입은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는 "(브장송 수상 이력을) 일부러 이렇게 쓴 거는 당연히 아니다. 어떤 이득을 본 것도 없다"며 "잘못된 것을 인지를 했지만 오랫동안 고치지 못한 것은 나의 실수니 하나씩 고쳐가겠다"고 밝혔다.
이런 여 지휘자의 입장에 대해 브장송 콩쿠르 총 감독 쟝 미셸 마테(JEAN-MICHEL MATHÉ)는 지난 18일 오후 9시 20분쯤 CBS노컷뉴스에 보낸 메일에서 "그(여 지휘자)는 '언론이 불러온 오해(some misundertanding from journalists)'라고 말했다"며 "(이에 대해) 나는 납득할 수 없다(I am not convinced)"고 밝혔다.
특히 여 지휘자의 2021년 발행 저서 <비하인드 클래식> 지은이 소개글에는 "프랑스 브장송 국제지휘콩쿠르 등에서 수상했다"는 문구가 명확하게 적시됐다는 점에서 '언론 탓'이라는 그의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자경 지휘자가 저술한 책 <클래식 비하인드>에서
게다가 여 지휘자가 참여한 각종 공연 홍보 팸플릿에도 해당 수상 이력이 최근까지 언급됐다. 대전시향이 지난 4월 진행한 공연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팸플릿에는 여 지휘자 소개글로 "프랑스 브장송 국제 지휘 콩쿠르를 비롯한 유럽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여러 차례 '오케스트라가 뽑은 지휘자상'을 받았다"고 기재됐다.
이에 여 지휘자에게 '직접 저술한 책 작가 소개란에 적시된 수상 이력은 어떻게 된 것인지' 묻자 "거기(책)도 그렇게 돼 있냐"고 오히려 반문했다. 그러다가 "누구에게 책임을 돌릴 생각은 전혀 없다"며 "하나부터 열까지 체크를 했어야 하는데, 못한 건 제 책임"이라고 밝혔다. 여 지휘자는 10여년 전부터 언론 보도 등에 사실과 다른 해당 수상 이력이 소개된 데 대해서도 "확인을 하지 못했다. 정말 죄송하다"고 말했다.
대전시향 관계자도 "프로필이나 이런 것들을 검증을 못한 상황으로 그냥 사용했던 것"이라며 "브장송 콩쿠르의 요청에 따라 지난 4월 말부터 언론사 기사나 다른 공연업계 단체들에게 프로필 정정을 요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 지휘자는 '대한민국 대표 마에스트라'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공연 예술업계에 종사 중인 한 관계자는 "여 지휘자가 한 드라마의 모티브가 됐다는 얘기도 들었을 정도"라고 말했다.
여 지휘자는 오는 21일 울산시립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 '불후의 명곡'에서 객원 지휘를 맡는다. 수상 이력 문제가 불거진 상황에서 여 지휘자가 지휘를 맡은 것을 두고도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