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경기 화성 일차전지 업체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 현장. 화성=박종민 기자화재 사고로 23명이 숨진 경기 화성시 리튬 배터리 제조업체 아리셀에는 금속화재 진화용인 'D급 소화기'가 단 5대뿐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공장 규모가 11개 동인 것을 감안할 때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화학물질안전원(안전원)에 따르면 아리셀은 유해화학물질인 염화 티오닐(SOCl2)을 취급하고 있다. 염화 티오닐은 리튬 배터리에 사용되며, 물과 닿을 경우 폭발 위험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리튬같은 금속에 불이 붙으면 물이 아닌 'D급 소화기'를 사용해 진화해야 한다. 소화기는 화재 유형별로 A·B·C·D·K로 각각 종류가 나눠져 있는데, 금속화재는 D급으로 분류된다.
리튬 배터리를 생산하는 아리셀 역시 화재 사고에 대비해 D급 소화기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문제는 대수였다. 아리셀이 구비해놓은 D급 소화기는 5대에 불과했다. 아리셀은 지난해 화학물질종합정보시스템에 D급 소화기 대수를 5대로 등록했으며, 올해 현황은 아직 등록하지 않았다.
지난 25일 경기 화성 일차전지 업체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 현장에서 수색작업이 진행되는 모습. 화성=박종민 기자화재가 발생한 아리셀 3동은 연면적 2300㎡로, 소방시설법 기준으로 보면 소화기 약 6대를 구비해야 한다. 더욱이 소방시설법은 칸막이 등으로 분리된 공간 면적이 33㎡ 이상일 경우에는 각 공간마다 소화기 1대씩을 추가로 비치하도록 정하고 있다.
소방이 공개한 아리셀 공장 3동 2층 작업장 평면도를 보면, 전체 면적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작업실 외에도 7~8개의 방이 있다. 여기에 1층 작업장까지 고려하면 단순 계산해도 3동에만 소화기가 10대 이상은 필요한 셈이다.
아리셀 공장 11개 동 모두가 똑같은 2층 규모는 아니지만, 화성시에 등록된 아리셀의 건축물 용도를 보면 리튬 배터리를 제조하는 건물만 3개동(2·3·4동)이다.
우석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공하성 교수는 "불이 난 공장 규모만 보면 소화기가 6~7대는 있어야 한다"라며 "그 안에서 또 분리된 방이 있다면 각 공간 면적에 따라서 1개 동당 10대 이상은 있어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아리셀은 D급 소화기 5대 외에도 분말소화기 99대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분말소화기는 금속화재 진화에는 효과가 없다.
초기 소화 시도하는 화성 리튬전지 공장 직원들. 연합뉴스
실제 이번 화재 당시에도 2층에 작업장에 있던 작업자가 분말소화기로 진화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당시 상황이 담긴 CCTV를 보면 리튬 배터리에서 연기와 함께 3차례 폭발이 이어지자 한 작업자가 분말소화기로 진화에 나선다. 첫 폭발이 일어난 지 29초 만이다.
하지만 불길은 잡히지 않았고 배터리가 또다시 폭발하면서 약 10초 뒤에는 작업장 전체에 연기가 가득 찬다. 결국 보관 중이던 리튬 배터리 3만 5천개가 모두 불에 탔고, 31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D급 소화기 역시 완벽한 대안은아니라고 경고한다. 공하성 교수는 "D급 소화기는 아직 개발이나 상용화나 초기 단계이다 보니 금속 화재를 완벽하게 진화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이번 사고처럼 금속화재 규모가 대규모일 경우에는 현재로서는 진화는 무리이고 무조건 대피하는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경민대학교 소방안전관리과 이용재 교수는 "소화기는 면적별로 배치해야 하는 기준이 있고, 공간이 나눠져 있을 경우에는 기준에 따라 추가로 소화기를 둬야 한다"라며 "무엇보다 이번 사태처럼 급성장 하는 산업에 대해선 국가 차원에서 안전관리 규정이나 지침을 명확히 해줘야 기업들도 따를 수 있다"라고 했다.
한편 소화기 등 장비 비치와 관련해 아리셀 측에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