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니가 軍, 장갑차 탱크 앞세워 대통령궁 진입
26일(현지시간) 볼리비아 대통령궁과 정부청사 등이 있는 수도 라파스의 무리요 광장에 집결한 군부. 연합뉴스남미 볼리비아에서 26일(현지시간) 군부 쿠데타가 발생해 대통령궁까지 무력으로 진입했지만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 채 3시간 만에 실패로 끝이 났다.
군 핵심 지도부는 "무너진 조국을 되찾을 것"이라고 선언하며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끌고 갔지만 대통령의 '쿠데타 시도' 강경 대응 천명과 시민과 국제사회의 반발 움직임 등에 결국 회군했다.
로이터통신과 AP통신 등에 따르면, 후안 호세 수니가 볼리비아 장군(전 합참의장)이 이끄는 군대는 이날 오후 3시쯤 장갑차와 탱크까지 동원해 대통령궁 등이 있는 라파스 무리요 광장에 집결했다.
수니가 장군은 "우리나라는 더 이상 이런 상태로 지속될 수 없다"며 "군은 민주주의를 재건하고 30, 40년 동안 똑같은 소수 인사들에 의해 돌아가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진정한 민주주의를 만들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군대는 장갑차를 동원해 대통령궁 입구를 부수고 청사 안으로 진입해 루이스 아르세 대통령과 대치했다.
텔레비시온 우노 등 현지 TV 방송 매체들은 급박했던 당시 상황을 생중계했고 뉴스를 보고 놀란 시민들은 마트로 달려가 물품을 사재기하는 등 곳곳에서 큰 혼란이 빚어졌다.
볼리비아 대통령 "쿠데타 시도 용납 못해"…철군 명령
루이스 아르세 볼리비아 대통령. 연합뉴스루이스 아르세 볼리비아 대통령은 대통령궁 안으로 들어온 수니가 장군과 대면해 "군 통수권자로서 이런 불복종을 용납할 수 없으니 철군하라"고 요구했다.
두 사람 주변에 몰렸던 사람 중 누군가 수니가 장군에게 "그만 물러나라, 이래선 안 된다"고 외치기도 했다. 이 모습은 현지 방송 유튜브를 통해 중계됐다.
아르세 대통령은 수니가 장군과의 대면 직후 각료들과 함께 긴급 대국민 연설에 나섰다. 그는 "볼리비아가 군의 쿠데타 시도에 직면했다"면서 "국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저와 내각 구성원은 이곳에 굳건히 서 있다"고 역설했다.
아르세 대통령은 곧바로 육군, 해군, 공군 참모총장을 교체했다. 신임 호세 윌슨 산체스 신임 육군 참모총장은 "아무도 우리가 거리에서 보고 있는 모습들을 원치 않는다"며 병력들의 복귀를 명령했다.
이후 대법원, 경찰과 소방 노조, 시민사회단체 등은 잇따라 군을 성토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무리요 광장에 모인 시민들도 군을 비판하는 구호를 외쳤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국제사회 볼리비아 쿠데타 규탄…"민주주의 지켜야"
연합뉴스국제사회 역시 쿠데타 시도를 규탄했다.
미국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을 통해 "미국은 볼리비아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진정하고 자제하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민주적으로 선출된 볼리비아 정부를 전복하려는 시도를 단호하게 규탄한다"고 말했다.
루이스 알마그로 미주기구(OAS) 사무총장도 "볼리비아에서 발생한 사건을 가장 강력하게 규탄한다. 군은 합법적으로 선출된 시민 권력에 복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볼리비아와 갈등을 빚어온 주변국들을 비롯한 중남미 주요국들 까지도 쿠데타를 시도한 군부를 규탄하고 아르세 대통령의 현 볼리비아 정부를 지지한다는 뜻을 밝혔다.
가브리엘 보릭 칠레 대통령은 "우리는 이번 쿠데타 시도를 규탄하며 기관들이 제 기능을 다하고 헌법과 법률이 존중될 것을 요구한다"며 "우리는 아르세 대통령의 합법 정부가 계속해서 볼리비아 국민이 투표한 임무를 계속 수행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산티아고 페냐 파라과이 대통령도 "파라과이는 아르세 대통령이 비난한 바 있는 볼리비아군의 비정상적인 동원을 규탄한다"면서 "우리는 민주주의와 법치를 존중하기를 강력히 요청한다"고 밝혔다.
볼리비아는 칠레와 영토 문제 등으로 오랜 기간 갈등을 빚어왔으며 국교도 맺고 있지 않다. 파라과이와도 영토 문제로 1930년대 전쟁까지 치르는 등 사이가 좋지 않다.
'쿠데타 시도' 볼리비아 장군 "대통령 지시 있었다" 주장
루이스 아르세 볼리비아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라파스에 있는 대통령궁 앞에서 '쿠데타 시도' 저지 후 환호하는 지지자 앞에서 주먹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결국 군대는 이날 쿠데타를 시도한 지 3시간 만인 오후 6시쯤 철군했고 수니가 장군은 막사에서 장병들을 상대로 연설을 하던 중 경찰에 체포됐다.
수니가 장군은 체포 직전 취재진에게 "대통령이 상황이 매우 어려우니 지지를 끌어올릴 수 있는 방안을 준비할 것을 지시했다"며 쿠데타 시도가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지 일간 엘데베르는 수니가 장군의 진술은 진위 여부를 확인하긴 어려운 단계라면서 볼리비아 군이 지난 주말 장갑차를 수도 라파스 주변에 집결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아르세 대통령은 쿠데타 시도가 실패로 끝난 후 무리요 광장에 모인 시민들 앞에서 "국민들께 감사드린다"며 "민주주의 만세"를 외쳤고 시민들도 환호했다.
수니가 장군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최근 정치 개입 가능성을 암시하는 언사를 이어왔던 것으로 파악됐다. 그는 특히 에보 모랄레스 전 대통령에 대한 반감을 서슴없이 드러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수니가는 최근 "모랄레스는 다시 대통령이 될 수 없다"라거나 "군대는 국민의 무장한 날개인 만큼 모랄레스를 막기 위한 적법한 모든 도구를 사용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모랄레스 전 대통령은 2006년부터 2019년까지 장기 집권하다 선거 부정 의혹으로 물러났다. 모랄레스 측에서는 수니가 장군의 언사가 '도를 넘었다'고 보고 그에 대한 고발을 준비 중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