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보직해임 집행정지신청 심문에 참석하기 위해 수원지법에 출석한 박정훈 대령. 정성욱 기자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 기록을 경찰에 이첩했다는 이유 등으로 보직해임된 박정훈 대령 측이 지난해 8월 해임취소 소송을 제기했지만, 1년 가까이 지난 현재까지 첫 재판이 열리지 않고 있다.
박 대령 측은 재판이 지연되는 것은 사실상 법원이 권리구제를 거부하는 것과 같다며 신속한 진행을 촉구했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박 대령은 지난해 8월 21일 수원지법에 해병대사령관을 상대로 한 보직해임 무효확인 소송 및 집행정지신청을 제기했다. 지난해 9월 집행정지 심문기일에 출석한 박 대령 측은 "국방부가 보직을 박탈하는 것은 근거없는 횡포에 가깝다"며 "이번 사건은 박 전 해병대 수사단장 본인의 구명뿐 아니라, 채 상병의 사망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조치"라고 소송 사유를 밝혔다.
법원은 이 중 집행정지신청에 대해선 지난해 9월 기각했다. 재판부는 "제출된 소명자료만으로는 집행을 정지할 긴급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본안사건인 보직해임 취소소송은 11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첫 기일도 잡히지 않은 상태다. 지난해 8월 시작된 소송은 올해 2월 법원 정기인사 과정에서 한 차례 재판부가 변동되며 지연됐다. 당초 사건을 맡았던 수원지법 행정3부에 박 대령 측과 연고관계가 있는 판사가 있다는 이유 등으로 행정4부로 재배당된 것이다.
지난달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 관련 입법청문회에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그러는 사이 박 대령 측은 법원에 서증 등 증거자료를 52차례 제출하며 재판 진행을 기다리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이종섭 당시 국방부장관과 박진희 군사보좌관간 통신기록도 증거로 냈다.
박 대령 측은 신속한 재판을 통해 구제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 대령의 변호인 김정민 변호사는 "권리구제의 지연은 권리구제의 거부와 같다"며 재판 진행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법조계에선 소송 결과 역시 늦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진행 중인 항명 사건 선고재판 이후에 판단이 나올 것이란 분석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형사사건이 먼저 진행중이고, 내용적으로도 보직해임과 연결돼 있지 않느냐"라며 "재판부 입장에서는 군사법원 판단을 먼저 지켜보고 행정재판 역시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법원 측은 처리하는 사건이 많아 기일이 아직 잡히지 않은 것이며, 재판은 접수된 순서대로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수원지법 관계자는 "법원에서 처리하는 사건이 많다 보니 기일이 아직 잡히지 않은 것이며,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라며 "원칙적으로는 접수되는 순서대로 재판이 진행된다"라고 말했다.
박 대령은 지난해 8월 이종섭 국방부장관의 지시를 거부하고 채 상병 순직 사건 기록을 경찰에 넘겼다는 이유로 입건(항명)되고 보직도 해임됐다. 이 사건은 현재 군사법원에서 재판이 진행중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VIP 격노설'로 알려진 외압 의혹을 수사중이다. 채 상병 순직 사건의 과실을 따지는 수사는 경북경찰청이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