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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볼래]서양인들, '몰락한 조선' 130년 후 '라이징 코리아'를 보다

책/학술

    [책볼래]서양인들, '몰락한 조선' 130년 후 '라이징 코리아'를 보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불린 망국 조선
    130년 흐른 오늘 대한민국에 대한 평가

    1903년 미국 공사 호러스 알렌(오른쪽에서 네번째)이 대한제국주재 각국 공사들을 미국 공사관으로 초청해 회의를 진행한 뒤 찍은 기념 사진. 독일 프랑스 중국 영국 벨기에 공사가 참석했으나 일본 공사는 불참했다. 1903년 미국 공사 호러스 알렌(오른쪽에서 네번째)이 대한제국 주재 각국 공사들을 미국 공사관으로 초청해 회의를 진행한 뒤 찍은 기념 사진. 독일 프랑스 중국 영국 벨기에 공사가 참석했으나 일본 공사는 불참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한국을 찾은 수많은 서구 선교사들과 외교관들은 순수하게 복음을 전하고 제국주의 팽창에 휘말린 이름조차 생소한 동쪽 끝 나라의 처량함과 백성들을 어여삐(긍휼히)여긴 이도 있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오리엔탈리즘(동양에 대한 서구의 왜곡과 편견)에 젖어 철저하게 자신들의 이익과 목적에 부합해 움직였다.

    한국인 편에 서서 일제와 열강의 폭압에 맞서 싸운 영국 데일리메일 특파원 프레드릭 매킨지와 어니스트 베델, 선교사 호머 헐버트와 호러스 알렌, 한국의 비극을 적극 알린 프랑스 공사 이폴리트 프랑댕, 러시아 공사 베베르, 미국인 외교 고문 윌리엄 샌즈 등은 수많은 보고서와 편지, 보도, 한국 안팎에서의 구명활동을 통해 한국 독립과 민족적 당위성을 열변했다.


    조선을 찾은 이방인들…"사랑했거나 이용했거나"


    영국 지리학자이자 최초의 왕립지리학회 여성 회원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1894년 한국을 답사하고 쓴 그의 저서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1898)에서 한국인을 '매우 잘생기고 체격도 좋은 인종'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그는 "한국인은 대단히 명석한 민족이다. 그들은 스코틀랜드식으로 말해 말귀를 알아듣는 총명함을 타고났다. 외국인 교사들은 한결같이 한국인의 능숙하고 기민한 인지 능력과 외국어를 빨리 습득하는 탁월한 재능, 나아가 중국인과 일본인보다 한국인이 훨씬 더 좋은 억양으로 더 유창하게 말한다는 사실을 증언한다"고 전했다. 이미 일본과 중국, 아시아 여러 나라를 돌아보며 보고서를 썼던 그는 한국인에 대한 자질을 높게 평가했다.

    물론 오리엔탈리즘 관점에서, 학문적 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상대적 평가였지만 제국주의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특히 서구 열강에 '미개한 민족'이라는 프레임으로 한반도 통치를 합리화 하려 했던 일본의 프레임을 부정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가 된다.

    효형출판·와이겔리 제공효형출판·와이겔리 제공
    민족지 '대한매일신보' 발행인 어니스트 베델은 창간사 서두에 "본 기자는 한국인에게 묻는다. 대저 삼천리 강토와 2000만 인구로 자주독립하지 못할 바가 없는데 무슨 이유로 나라의 권세를 잃고 자유롭게 살 권리조차 없는 비참한 지경이 되었는가?"라며 한국인들을 다그친다.

    역사 저술가인 이상각의 '꼬레아 러시: 100년 전 조선을 뒤흔든 서양인들'(효형출판)은 구한말 저물어가는 나라 조선, 서양인의 눈에 비친 조선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한다.

    개항 이전 도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통상을 요구한 오페르트나, 불확실한 자료를 이용해 한국 전문가 행세를 한 그리피스, 일제의 주구가 되어 한국인을 모욕한 통감부 고문 스티븐스 같은 인물도 다뤘다.

    최종고의 '한국을 사랑한 세계작가들'(와이겔리)은 파란만장한 격동의 시대에 한반도를 찾아온 이방인들이 남긴 한국에 관한 정치, 역사, 문화, 일상의 기록들을 찾아 인문학적 관점에서 들여다 본다.

    천문학자인 퍼시벌 로렌스 로웰이 쓴 '내 기억 속의 조선, 조선 사람들(Choson, the Land of Morning Calm)'은 서양인들에게 조선을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고 각인시켜준 저서다.

    매킨지는 1919년 조선에서 3·1운동이 일어나자 자신이 목격하고 인터뷰한 내용을 엮어 '한국의 독립운동(Korea's Fight for Freedom)'을 출간해 세계에 일제의 만행과 세계에 유래 없는 독립운동을 알렸다. 3·1운동은 세계사적으로도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세계 독립운동 확산에 불을 붙인 사건으로 꼽힌다.

    1890년대 격동의 구한말에서 130년이 흐른 21세기 대한민국에 대한 그 서양인 후예들의 평가는 어떨까. 대한민국이 세계 경제 강대국, 문화 강대국이 된 이유를 분석한 책들을 소개한다.


    오리엔탈리즘에서 탈피, 21세기 대한민국을 향한 냉철한 분석


    더타임즈, 가디언, 워싱턴타임즈 등에서 한반도 전문가이자 북한 전문기자로 활동한 저널리스트 마이클 브린은 2차대전 이후 신생국중 유일하게 민주국가를 이루었고 농업국가에서 첨단제조업국가로 탈바꿈한 대한민국의 역동성에 주목한다.

    그의 저서 '한국, 한국인'(실레북스)에서 브린은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의 국제적 명성이 발전의 곡선을 앞서기 시작했다"고 평가한다. 25년 전 쓴 '한국인을 말한다'(1999·홍익출판사)에서 한국인의 역동성과 긍정적 에너지에 대해 서술했던 그는 그동안 한국이 이룬 성취를 '경제적 성취, 민주화, 문화 한류' 3가지로 정리했다.

    한국 발전의 원동력에는 역사, 지리적, 경제적 처지에 대한 저항의 역사가 있었다면서 단기간에 민주화를 이루고 국민 생활수준을 높여서 세계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음을 세계에 확신 시켜줬다고 평가했다.


    랜덤하우스UK·실레북스 랜덤하우스UK·실레북스 

    한국은 어떻게 해방 이후 불과 한 세대가 저물기 전에 최빈국에서 선진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일까.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 교수이자 벨기에 브뤼셀 자유대학 한국 석좌인 라몬 파체코 파르도 교수는 저서 '새우에서 고래'(열린책들)에서 일제강점기 식민 통치와 민족의식, 정부 수립과 한국전쟁,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사회의 갈망과 엄혹한 독재 정권, 경제적 번영과 사회적 불평등 문제 등을 약 70년이라는 단기간에 겪은 한국에 주목한다. 이러한 분열과 갈등, 대립과 이해를 반복하며 역동적 사회변화와 경제 성장을 이뤄왔다고 진단한다.
     
    그는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구석에 자리 잡은 한국은 불과 70년의 세월 동안 분단의 아픔과 전쟁의 황폐화, 빈곤에 따른 배고픔, 빠른 경제 성장에 대한 흥분감, 민주화의 기쁨, 그리고 멋진 문화 대국으로 인정받는 환희를 모두 경험했다. 다른 나라들이 수백 년에 걸려 해냈던 것을 한국은 단 70년 만에 해냈다"고 평가한다.

    유난히 높은 교육열은 한국 사회에 에너지를 촉발시켰다. 그는 "교육은 한국 사회의 발전에 장기적으로 기여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승만에게 정치적 위협이 되었다. 1960년 2월 고등학생들이 주축으로 이승만 독재 정권에 저항했던 민주주의 운동 사례는 더 높은 교육이 민주주의 이상을 요구하게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주었다"면서 한국 사회의 변혁과 발전의 기저에 교육의 힘이 깔려 있다고 봤다.

    진보적 성취에 대해서도 그는 높이 평가했다.


    열린책들·저스트북스 제공열린책들·저스트북스 제공
    한국전쟁, 독재 정권, 1988년 서울올림픽,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격랑을 거친 한국 사회 변화의 흐름은 가족과 가문을 비롯하여 다양한 유형의 사회적 관계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를 더 위축시켰다고 봤다. 이로 인해 유교가 지배하던 과거를 그리워하는 이들, 그리고 자유로운 세계관을 지닌 이들 사이에 분열이 나타났지만 시간의 편은 더 자유로운 생각을 가진 젊은 세대 편에 섰다고 진단한다.

    이명박이 2007년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김대중·노무현 진보주의 통치 10년을 끝냈을 때 한국 사회는 크게 달라져 있었고, 한국인들의 사고방식은 더욱 열려 있었다며 그 변화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었다고 봤다.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한국 문화에 있어 BTS와 블랙핑크를 비롯한 많은 K-팝 그룹이 한국 문화와 한국어를 앞세운 노래, 영화와 드라마가 들려주는 지극히 지역적인 이야기는 전 세계 수많은 수많은 스마트폰을 통해 영향력을 끼친 흥미로운 '민족주의'를 발견했다고 말한다.

    그것은 전통적인 '민족주의'와는 또 다른 동료 선진국들과 함께 시민 사회의 특성을 공유하는 '시민 민족주의'를 통해 여전히 강력한 힘으로 발산되고 있다고 평가한다.

    'BTS 길 위에서'(홍석경/어크로스)는 BTS가 어떤 시대정신을 내세웠으며, 어떻게 세계적 팝 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 들여다볼 수 있다. 단순히 K-팝 가수의 성공기 아니라 BTS라는 아이콘이 가진 가치를 세계의 눈으로 들여다본다.




    이코노미스트, 월스트리트저널, 타임지 등에서 저널리스트로 일하며 한국 특파원을 지낸 제프리 케인은 저서 '삼성 라이징'(저스트북스)에서 '삼성'을 중심으로 한국이 어떤 과정을 거쳐 세계적인 첨단산업국가로 올라섰는지 파고든다.  

    2009년 한국에 처음 발을 디딘 저자는 수년 동안 한국에 살면서 메르스 사태, 세월호 참사, 촛불 혁명 등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며 "우리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산다"는 교훈을 배우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을 때면 '삼성 스토리'가 떠올랐다고 한다.

    40년 전 삼성은 설탕, 종이, 그리고 비료를 생산하는 한 개발도상국의 작은 기업에서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업, 구글·애플과 치열하게 경쟁하며 전 세계에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기업으로 우뚝 섰는지 객관적 역사를 펼쳐낸다.

    저자는 70대 이병철과 20대 스티브 잡스의 운명적 만남이 21세기 경제 지도를 바꿨다고 강조했다.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인데, 1983년 11월, 28세의 스티브 잡스가 한국을 방문한다. 그의 방문 목적은 27년 후 출시될 아이패드를 제작하는 일이었다. 이때 이미 스티브 잡스는 '미래는 모바일의 시대가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당시의 기술로서는 구현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잡스는 포기하지 않았고, 삼성 사옥에서 만난 이병철 회장에게 자신의 계획을 공개하게 된다. 이 무렵 삼성은 미국이나 일본의 경쟁업체보다 한 세대나 뒤처져 있었지만, 잡스는 삼성전자가 컴퓨터칩 공급업체로 자리잡기를 희망했다.

    40년이 흐른 지금, 애플 아이폰의 강력한 경쟁 스마트폰 제조사이자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협력사로 성장한 삼성의 아이러니한 성장사에 한국적 특성을 발견한다.

    그런가 하면, 한국의 성장사에 빼놓을 수 없는 정치 발전사에 대해 '한국의 하향식 민주주의' 특성으로 규정하는 시각도 있다.

    미국 랜드연구소 한국정책회장이자 수석 정치학자인 에릭 모브랜드는 한국통이다. 서울대 초빙교수로도 인연이 깊은 그는 한국의 정치사를 흥미로운 주제로 삼았다.


    '한국의 하양식 민주주의' 워싱턴 대학교 출판부 제공. 2016년 국정농단 대통령 탄핵 촛불 시위'한국의 하양식 민주주의' 워싱턴 대학교 출판부 제공. 2016년 국정농단 대통령 탄핵 촛불 시위
    그는 저서 'Top-Down Democracy in South Korea'(한국의 하향식 민주주의 / 워싱턴대 출판부)에서 현대 한국의 대부분 역사는 정당 간의 치열한 경쟁이 특징이지만 정당 간 또는 정치 엘리트와 국민 간의 협력을 촉진하는 데는 그다지 좋지 않은 정치 시스템을 가졌다고 지적한다.

    이 책 '한국의 하향식 민주주의'는 독재 정권에서 성장한 정치 세력들이 어떻게 한국 정치사회를 민주화로 이끌었고, 어떻게 중앙집권적 정당과 제한적인 선거법을 유지해왔는가를 설명한다.

    저자는 한국 정치가 여전히 시민사회와 거리감이 큰 엘리트에 의해 지배되 있으며, 선거를 대중 참여의 장이라고 보기보다 '유권자를 관리해야 할 신경쓰이는 일' 정도로 치부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한국인들의 민주주의를 향한 열정에는 찬사를 보낸다. 그는 1960년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3·15 부정선거에 항의해 이승만 하야를 이끌어낸 3·15 의거와 4·19 혁명, 1987년 민주화운동은 전두환으로 이어진 군부 독재정권을 사실상 종식시켰고, 그로부터 30년 후에는 국정농단의 박근혜 보수정권을 무너뜨리는 한국인들의 민주주의적 역동성을 추켜 세운다.

    저자는 여전히 한국의 민주주의는 '현재진행형'이라고 평가한다.    

    벽안(碧眼)에 물든 구한말 조선의 새벽을 보며 감탄과 안타까움을 함께 느꼈던 서양인들은 130년이 흐른 21세기 한국의 성장사와 역동성을 지켜보며 '새우에서 고래'가 된 놀라움을 담담하게 전한다. 아울러 새로운 선진 국가로 발돋움하는 대한민국에도 입에 쓴 당부 잊지 않는다.


    ■참고 문헌: 꼬레아 러시-100년 전 조선을 뒤흔든 서양인들(이상각/효형출), 한국을 사랑한 세계작가들(최종고/와이겔리), 한국, 한국인(마이클 브린/실레북스), 새우에서 고래로(라몬 파체코 파르도/열린책들), 삼성 라이징(제프리 케인/저스트북스), BTS 길 위에서(홍석경/어크로스), Top-Down Democracy in South Korea(대한민국의 하향식 민주주의·에릭 모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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