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splash Humphrey Muleba 갈무리눈송이(snowflake): 미세한 충격에도 눈송이가 쉽게 바스라지는 것처럼 요새 젊은이들을 응석받이로 자란 자기집착적이고 유약하고 예민하고 쉽게 질색하는 유리멘탈 MZ세대라고 폄하하는 멸칭.
'눈송이' 또는 '눈송이 세대'는 우리에겐 낯설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구권에서 대체적으로 '발칙한' MZ세대를 향한 기성세대의 비하가 담긴 표현이다.
'나때는 말이야'라는 말로 대표되는, 기성세대를 멸칭하는 우리식 속어 '꼰대'에 대응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들 '꼰대'는 보통 2차 세계대전 전후 1946년부터 1964년까지 베이비붐이 일어난 시기에 출생한 세대다. 유소년기 전쟁과 혹독한 불경기를 겪은 후 사회·경제적 안정 속에서 태어난 '베이비부머' 세대를 가리킨다.
이들 베이비 부머는 그들의 부모 세대가 이뤄낸 경제 호황을 누리면서 오늘날의 불균형하고 불공정한 사회구조와 기후변화, 생태위기, 세계적 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그럼에도 정작 젊은 세대들에게 "나때는 열심히 일해서 성공할 수 있었는데 요즘 젊은 애들은 열정도 끈기도 없다"고 무시하는 '꼰대'로 대표된다. 여기서 좀 더 심화되고 노년층으로 옮겨가는 멸칭이 '틀딱'(틀니를 딱딱거리며 잔소리하는 노인)이다.
영어 표현적 비하인 '부머'는 2019년 들어 미국에서 베이비 붐 세대의 낡은 가치관이나 꼰대스러운 면을 조롱·비하하는 의미로 생겨난 밈(meme)이다. 4년 전 뉴질랜드 녹색당 소속 20대 국회의원 클로에 스와브릭이 의회 발언 중 자신에게 야유하는 나이든 의원에게 '오케이, 부머'(OK, Boomer)라고 응수한 뒤 발언을 이어가면서 해외 토픽에 오를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또 다른 표현으로 '딕헤드'(dickhead), '아스홀'(arsehole)이 있지만, 새롭게 만들어진 용어는 딱히 없다.
그런데 두 상대적 멸칭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극우 성향의 인터넷 공간에서 퍼져나갔다는 점이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에서 대중문화와 정치 분야를 다루는 비디오 저널리스트 해나 주얼은 저서 '꼰대들은 우리를 눈송이라고 부른다'를 통해 이런 기성세대의 세대론이 애초 극우 인터넷 밀실에서 나온 혐오에 기대고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한국 사회의 꼰대 문화와 청년 정치 담론을 돌아보게 한다. 같은 세대를 두고도 88만원 세대, 3포세대, N포세대, 2030세대, MZ세대, 알파세대에 이대남과 이대녀라 불리는 이 청년들은 어떤 이들일까?
잠시 시계를 되돌려보자. 베이비 부머 세대 이후 새로운 세대가 태어났다. 1960년대 중후반에서 1970년대 후반까지 출생한 세대다. 성장기에 민주화, 소련 공산권과 베를린 장벽 붕괴 등 이념의 몰락을 경험했다. 누구보다 사회 변화에 빠르게 반응하고 근검절약보다 소비와 여가활용을 지향하고 인내보다 적당히 분노하고 자기 주장과 표현이 무엇보다 강한 이들이었다. 자기를 사랑하는 개인주의가 특징으로 전통적 가치관으로는 설명되기 힘들어 '신세대' 또는 'X세대'라 불렸다.
새로운 세대의 중심에 서 있던 이들은 IMF 외환위기로 날개를 펴기도 전 한국에서는 '낀 세대'로 평가받는다. 한편으로는 치열한 경쟁에 몰리며 청년 실업을 경험한, 저출산의 진원지로도 꼽힌다. MZ세대들은 이들을 사회에서 마주하는 자기중심적이고 고집스러운 대표 '꼰대' 세대로 규정하기도 한다. 군대 맞선임이 가장 힘들다고 하듯이 대학 신입생 때, 사회 초년생으로 만난 중간보스의 '꼰대짓'은 초·중·고등학교 시절 봉사 활동과 팀워크 생활을 경험하면서 겸양과 봉사, 협업의 미덕을 잘 아는 MZ 세대에게 곱게 보일 리 없다.
뿌리와이파리 제공 자, 지금까지 살펴본 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규정해왔던 세대차이 또는 세대갈등을 다룬 대표적 세대론이다. 그럼 왜 이 세대론, 세대갈등론이 부상한 것일까. 연구자들이 인류학적, 사회과학적, 경제학적으로 현상을 분석하고 정의하려는 강박관념에서 출발했거나, 시장 자본주의 결정체인 기업이 마케팅을 고도화 하기 위해 세대별 특성을 구분하기 시작했다는 다양한 의견이 있다. 하지만 멸칭과 혐오로서 조장되는 세대 구분에 대해 '꼰대들은 우리를 눈송이라고 부른다'의 저자는 다른 이유가 있다고 봤다.
그는 책에서 '눈송이'의 기원을 하얗고 순수하고 아름다운 결정체인 눈송이가 쉽게 바르러지고 뾰족뾰족 불평만 많은 한심한 존재로 전락하게 된 것을, 백인우월주의와 반페미니즘을 표방하는 대안 우파에 있다고 분석한다.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고 영국의 브렉시트 탈퇴가 결정된 2016년 이후 이들이 인터넷 플랫폼, 언론, 대학 강연, 대중 담론 등을 삽시간 장악했다고 지적한다.
콜린스 영어사전이나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도 '나약하고 예민하고 쉽게 불쾌해 하고 자신이 특별한 대우나 배려를 받아 마땅하다고 여기는 사람'을 일컫는데 구체적 현실에서는 표현의 자유와 '철회'를 외치는 대학생, 유색인, 여성, 그리고 성소수자 등을 지칭하는 것으로 자리매김했다. 저자는 극우의 인터넷 밀실에서 나온 혐오 표현이 암암리에 대중의 의식 속 깊이 파고 들었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이 멸칭이 대중화 된 데는 진보 엘리트주의자, 기업 경영인, 트랜스 배제적인 급진 페미니스트의 공이 적지 않다고 말한다. 꽤나 리버럴하고 진보적인 체하지만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명예에 위협이 되는 발언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 청년 노동자들이 주어진 노동 조건에 감사할 줄 모르고 불평만 한다고 비난하는 이들, 이분법적인 젠더 구분에 혼란을 주는 트랜스인과 논바이너리인을 혐오하는 이들 모두 너무 쉽게 '눈송이'로 낙인 찍어버린다는 것이다.
저자는 기성세대가 부와 권력을 이용해 불편한 존재에게 주홍 글씨를 짊어지게 한다며, 이제 세대 낙인과 같은 진흙탕 싸움을 끝내자고 말한다.
Unsplash Markus Spiske 갈무리 새로운 세대를 나약하고 예민하고 유별난 행동으로 치부하는 꼰대 문화는 젊은이들의 기세와 연대를 꺾는다. 그들의 급진적 발상을 짓밟으려는 정치 이데올로기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서로 독립된 세대층(60대와 2030세대)을 하나의 정치세력을 지지하도록 묶어, 중간의 세대 혹은 다른 세대에게 보수적 철학과 담론을 전파시킴으로써 선거 등에서 승리한다는 이른바 '세대포위론'의 발상도 교묘한 세대 이용 정치술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격심한 상처를 남긴 젠더 갈등의 배경에 극우 인터넷 밀실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가 'X세대'의 등장을 별종으로 봤던 것처럼 오늘날 역시 'MZ세대'를 별종으로 보지만, 아직 미국과 서구권의 '눈송이'처럼 완전히 등치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세대론은 기성세대와 신세대를 가르고 세대간 갈등과 세대 내 갈등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더 나아가 고질적인 빈부, 이념, 지역, 종교를 둘러싼 갈등이 세대갈등에 제자리를 내어줘야 할지 모를 정도로 심각하다는 진단도 나온다. 세대 갈등에 젠더 갈등은 물론 그 청년끼리 쪼개지고 갈라치는 분열을 조장한다.
이 책은 우리 시대의 청년이 어떤 이들인지 이해하지 않고 기득권의 시각에서 평가하려는 답습을 지적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런 세대 구분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 역시 따져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문화전쟁의 진원지로 대학을 꼽은 저자는 공장처럼 눈송이 패닉을 양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언론이 호들갑을 떨어 관심과 아우성을 촉발해 매출을 끌어 올리고, 젊은이들이 제시하는 정치적 가능성을 위축시키기 위해서라고 꼬집는다. 새롭고 흥미로운 관점에 호기심을 느꼈을 사람들에게 독약과도 같은 부정적인 인식을 서서히 주입해 결국엔 대학생들을 사실상 혐오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저자는 눈송이 혐오는 프레임이라고 잘라 말한다. 세상의 온갖 사회악을 '요즘 젊은 것들' '빌어먹을 눈송이들' 탓으로 돌리려는 시도를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걸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하게 된다면, 우리는 독약과 같은 극악한 프레임을 만드는 극우 인터넷 공간과 이에 동조하는 언론과 정치계의 기만적 행위자들이 내뱉는 헛소리, 정치 이데올로그들로부터 우리 사회가 집단면역을 키울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정치 꼰대' '경제 꼰대' '차별 꼰대' '극우 꼰대' '기득권 꼰대'들의 헛소리는 공허하다. 저마다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이익을 위해 세대 갈라치기 낙인에 희생된 '발칙한 눈송이'들은 과거 세대가 앞으로 나아갔듯이 똑같이 면역력을 키우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때론 신념과 연민을 내세우면서. 때론 억압과 혐오, 차별과 불균등, 불공정한 사회 시스템과 기후위기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화내고 불평하면서.
■꼰대들은 우리를 눈송이라고 부른다
해나 주얼 지음 | 이지원 옮김 | 뿌리와이파리 | 38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