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김건희 여사가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게 보낸 문자가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온통 감싸고 있다. 이러다가는 문자에서 시작된 전당대회가 문자 논란으로 끝날지도 모르겠다. 문자논란을 지켜보는 입장에서 다양한 생각과 상상력을 가질 수 있다. 어떤 이는 '영부인과 당대표 후보간' 진흙탕 싸움이라고 치부할 수 있고, 또 국민의힘 진성당원 입장에선 '배신자 프레임'의 끝판 논쟁이라고 부를 수 있다.
김여사와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 간 문자는 더 많은 것을 내포하고 함의한다. '읽씹'의 예송논쟁을 떠나 문자 논란의 실체는 무엇이고 진실은 무엇인가를 탐구하면, 이 문제는 단순한 권력투쟁으로만 볼 수 없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김 여사는 1월 23일 문자에서 "지금껏 생사를 가르는 여정을 겪어온 동지였는데 아주 조금 결이 안 맞는다 하여 상대를 공격할 수 있다는 의심을 드린 것조차 부끄럽습니다"라고 고백했다. 이 고백 앞에서 김 여사가 한 전 위원장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문자는 애초 편집된 일부가 공개됐을 때부터 공개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고 본다. 조선일보가 5개의 문자 전문을 공개했다. 그러나 이것이 전문인지, 아니면 전문의 일부인지 아직도 의심을 지우지 않을 수 없다. 문자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주변에서 일부 문자는 상당히 장문이라고 했다. 더욱이 친윤 쪽이든 한 후보이든 "사적인 내용이 포함돼 있어 다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도 밝힌 바 있다. 전문을 공개한 언론사는 '전문'이라고 표기했지만 그 언론사조차 그 전문을 텔레그램 방에서 전부 보고 확인했는지 알 길이 없다.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캡처김 여사와 한동훈 위원장 간의 문자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고발사주 사건에서 두 사람은 3백건이 넘는 문자를 주고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그 내용을 모를 뿐이다. 이같은 근거는 지난 1월 5번의 문자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졌냐는 의문을 던진다. 공개된 1월 25일을 마지막으로 추가 문자가 없을 것으로 판단되지만, 한동훈 전 위원장이 법무부 장관 시절을 포함해 내각에 있을 때 수많은 문자가 더 있을 것으로 추정하는 것은 합리적 의심이다.
작년 말 비대위원장으로 취임하고 가장 많이 기억되는 그의 발언은 '동료시민 여러분'이라는 말과 함께 "공적 소통, 사적 소통"이라는 언어이다. 동료시민도 서먹했지만 '공적, 사적'이라는 말을 왜 그렇게 자주 언급하는지 헤아리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번에 공개된 일부 문자를 보고 그 언어가 가진 함의를 알게 되었다. 그의 '공적, 사적' 언어는 국민을 향한 언어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 언어는 돌이켜보면 김건희 여사를 향한 한 전 위원장의 부르짖음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제발 '간여하지 말라'는 공개적 항변 말이다.
그러므로 두 사람 간에는 수많은 문자가 존재할 것이라고 강력히 의심한다. 다음의 문제는 그러한 문자가 '사적인 것이냐'의 물음일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은 2022년 1월 공개된 유튜브 <서울의소리>의 '김건희 여사 7시간 통화'에 담겨있다. 당시 김 여사는 대통령 후보의 부인이었다. MBC와 한 유튜브 방송이 신청한 방영금지 가처분 신청에서 당시 재판부는 포괄적인 방송을 허락했다. 재판부는 "김씨 가족의 개인적인 사생활과 관련된 발언은 공개해선 안 된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김씨는 윤석열 후보의 배우자로서 언론을 통해 국민적 관심을 받고 있는 공적 인물"이라며 "김씨의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한 견해와 언론·권력관은 유권자들이 각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이를 참고해 투표권을 행사하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전제했다. 이 판결문을 토대로 볼 때 김 여사가 보낸 모든 문자는 거의 전 영역에서 '공적'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지금은 대통령의 영부인인데 일러 무삼하랴.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당권 주자인 한동훈 후보가 4일 인천 남동체육관에서 열린 한국자유총연맹 창립 제70주년 기념식에서 강석호 한국자유총연맹 총재의 기념사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윤석열 대통령과 한 전 위원장 간의 권력다툼은 세상이 다 아는 바이다. 그 권력투쟁에 대한 인식은 당원이냐 아니냐에 따라 크게 엇갈릴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문자이다. 여사와 한 전 위원장은 엄연히 공인이다. 두 사람의 문자는 5개를 포함해서 모두 공개돼야 한다. 예를들면 궁중암투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사적인 것이 아니고 공적인 행위에 해당하는 것이다. 일면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한 그들의 견해가 녹아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동훈 후보는 말로만 국민들에게 '공적, 사적'을 구분하지 말고 김여사와 관련된 문자를 전부 공개할 것을 촉구한다. 때마침 한 후보측은 "김여사가 보낸 문자메시지에 대해 한 후보가 답하지 않은 사례는 그게 전부가 아니다"라고 시인했다. 한 후보도 "나는 당시 사과가 필요하다는 뜻을 대통령실에 전달했고, 그에 따라 큰 피해를 입었다'고 광주에서 주장했다. 그러면서 "답을 했다면 국정농단"이라고 말했다. 그 국정농단의 실체를 밝혀야 할 의무가 한동훈 후보에게 있다고 국민들은 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