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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간 대기업 기소 단 한 건…무력화된 '중처법'

편집자 주

고용노동부의 산업재해 현황 분석 자료를 보면 2013~2022년 이른 아침 출근한 노동자들 가운데 2~3명은 끝내 귀가하지 못했다. 산업현장에서의 죽음을 멈추자는 취지로 2년 6개월 전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 무력화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경영자들이 안전에 대한 투자보다 '자기 보전'에 대한 지출에 집중한 탓이다. 그들 뒤에는 이른바 '법기술자'들의 조력이 있었다. CBS노컷뉴스는 중처법의 현실과 개선점을 짚어본다.

[법기술자에 짓밟힌 중처법①]
중처법 재판행, 대기업들은 피했다
"비싼 변호사 써야 처벌 안 받아"
중견·중소기업 대표 90% '집행유예'
전관 등판에 유족 합의, 증언 코치까지
"법기술 공식에 중처법 무력화 됐다"

화성시 서신면 리튬전지 공장인 아리셀에서 박순관 에스코넥 대표가 23명의 사망자를 낸 사고가 발생한 것에 대해 고개숙여 사과하고 공식 사과문을 낭독하고 있다. 화성=박종민 기자화성시 서신면 리튬전지 공장인 아리셀에서 박순관 에스코넥 대표가 23명의 사망자를 낸 사고가 발생한 것에 대해 고개숙여 사과하고 공식 사과문을 낭독하고 있다. 화성=박종민 기자
▶ 글 싣는 순서
2.5년간 대기업 기소 단 한 건…무력화된 '중처법'
(계속)
지난 6월 24일 경기 화성시 1차전지 제조업체인 아리셀에서 발생한 화재 참사는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이 시행된 이래 발생한 최악의 산업재해다. 한국인 5명을 비롯해 중국인 17명, 라오스인 1명 등 모두 23명이 목숨을 잃었다.
 
회사 측은 참사 직후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인단을 꾸렸다. 삼성전자와 삼성SDI의 1차 협력업체인 에스코넥의 자회사가 국내 최대 로펌으로 변호인단을 꾸리자 중처법 처벌을 피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아리셀은 "유족 보상에 집중하려는 것으로, 법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는 없다"고 해명했지만, 변호인들은 경찰과 고용노동부 수사 전반에 참여하고 있다. 부실 정황이 드러난 안전관리에 대한 책임보다 '대표 지키기'에만 몰두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기소까지 몇 년이 걸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는다.
 

중처법 재판행, 사망자 다수여도 '대기업'은 피했다

31일 고용노동부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강득구(더불어민주당·안양만안) 국회의원실에 제출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현황(올해 3월말 기준)' 자료를 보면 2022년 1월 27일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 이 법이 적용된 사건은 543건에 이른다. 이 가운데 50인 이상 사업장은 510건, 50인 미만 사업장은 33건이었다.
 
중처법은 일종의 과실법이다. 즉 법률이 정한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고 판단될 때 적용하는 범죄다. 산업안전보건법이 정한 의무를 지키지 않은 사업장에서 산업재해로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거나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2명 이상이 발생할 경우,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 3명 이상 발생하면 적용된다.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다. 해당 법인에도 50억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특히 하청업체를 실질적으로 지배·관리·운영하는 원청업체에 대해 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처벌 강도를 보면 수위가 높은 법인 것 같지만 현실에서는 그대로 적용된 적이 거의 없다. 중처법 '1호 수사대상'이었던 '삼표 양주채석장 사망사건'은 아직 1심 결과도 나오지 않았다.
 
이 사건은 중처법 시행 사흘 만인 2022년 1월29일 경기 양주 골재채취장 토사가 붕괴돼 노동자 3명이 숨진 사건이다. 사건 발생 1년 3개월 만인 지난해 4월 첫 기소됐고, 1년 뒤인 올해 4월에서야 첫 재판이 열렸다.
 
중처법 최다 위반 업체인 DL이앤씨는 아직 단 한건도 기소되지 않았다. 아파트 브랜드 'e편한세상'으로 유명한 DL이앤씨는 옛 대림산업이 물적분할한 건설부문 기업이다. DL이앤씨의 중처법 위반 사례는 올해 3월말 기준 7건이다. 모두 노동자 1명 이상이 숨진 산업재해였다.
 
DL그룹(옛 대림그룹)과 한화그룹이 합작해 만든 석유화학업체 여천NCC 폭발사고는 검찰이 경영책임자를 기소하지 않았다. 이 사건은 2022년 2월11일 오전 9시26분쯤 전남 여수 여천NCC 3공장에서 열교환기 테스트 도중 폭발사고가 발생해 협력업체 노동자와 작업감독자 등 4명이 숨지고 4명이 다친 사건이다. 당시 사건을 수사한 고용노동부는 '기소의견'을 냈지만 검찰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은 여천NCC 대표이사가 중처법이 요구하는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지켰고, 사고와의 인과 관계를 찾을 수 없다며 불기소했다. 고용부 근로감독관은 검찰로부터 수사 지휘를 받기 때문에 이들이 낸 기소의견을 검찰이 뒤집는 경우는 이례적이다.
 
아리셀 참사 이전까지 가장 많은 희생자(7명)를 낸 중대재해로 꼽혔던 현대백화점 그룹 현대프리미엄아울렛 대전점 화재의 경우, 유통업계 첫 중처법 처벌 사례가 될지 관심이 모아졌지만 2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지점장과 팀장 등만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현대백화점 사장에 대한 기소 여부가 여태 결정되지 않은 데다, 그룹의 실질적 오너인 정지선 회장은 대표이사를 겸하고 있지 않아 입건되지 않았다.
 
노무사 출신 김남석(법무법인 태원) 변호사는 "중처법 시행을 앞두고 대형 로펌들이 공룡 기업들을 상대로 컨설팅을 해주면서 안전관리 책임자를 두거나 인증제 형태의 재해예방대책을 적용해 처벌을 피하는 방법들을 조언했다"며 "그런 전략들이 통한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비싼 변호사 써야 처벌 면하나…중소기업 대표 90% '집행유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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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에 넘겨진 중처법 사건은 중소업체들에게 집중됐다. 그마저도 최저 형량 수준의 최종 판결이 나온 1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집행유예로 실형을 면했다.
 
CBS노컷뉴스는 법 시행 이후 1심 이상 선고가 나온 중처법 사건 17건의 판결문과 법원 사건정보를 전수조사했다. 그 결과 15건은 1심에서 징역 6개월~1년 안팎 수준의 집행유예에 법인 벌금 5천만 원~1억 원 정도의 판결을 받았다.
 
재판에 넘겨진 상당수 업체들은 대형 로펌이나 노동 당국 등에서 활동해온 초호화 변호인단을 선임해 수사부터 재판에 이르기까지 치밀하게 대응했다.
 
실제 2022년 3월 신축 공사장에서 리프트 균형추에 하청 노동자(중국인)가 끼어 사망한 사건에서, 원청인 성무건설의 A대표는 부장판사 출신 2명과 부장검사 출신 1명 등 전관으로 구성된 변호인단을 선임했다. 변호인들 모두 사건을 맡은 부산지법, 부산지검 출신들이었다. 담당판사보다 사법연수원 기수는 10기수가량 차이 나는 베테랑들이었다. 재판부는 사건 발생 1년 10개월 만에 중처법 법정형 하한선의 절반에 그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16명의 독성화학물 집단중독으로 1호 중처법 기소 사례가 된 두성산업 B대표와 회사 관계자 등은 검찰 고위직 출신 5명 등 14명으로 구성된 대규모 변호인단에게 사건을 의뢰했다. 법원은 B대표에게 사건 발생 1년 9개월여 만에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그동안 하청업체 사망사고와 관련해 책임을 묻지 않았던 원청 대표가 재판에 넘겨진 첫 사례인 LDS산업개발 C대표도 판검사 출신 변호인들이 설립한 법무법인에 변론을 맡겼다. 재판기일연기 신청이 3차례나 이뤄지면서, 공판 기간만 1년 4개월 걸린 끝에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원청의 매출 규모가 하도급 업체보다 적어 중처법을 원청에만 적용하는 게 다소 형평에 맞지 않다는 이유 등으로 실형을 피했다.
 
전관 외에 노동분야 전문 율사를 투입한 사례도 있다. 2022년 3월 골판지 제조공장에서 작업 중 노동자가 설비 회전축에 끼여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중처법 위반 혐의로 사건 발생 후 1년 6개월이 지나서야 기소된 삼성포장 D대표다. 십수 년간 노동사건을 전문적으로 변론해온 법무법인을 선임했는데, 대표 변호사는 현직 고용노동부(지방청) 소속 인사·징계 위원이다. 3개월의 비교적 짧은 공판을 거쳐 징역 1년 2개월, 집행유예 2년의 1심 판결을 받아냈다. 2004년 6월 끼임 사망사고에 이어 4차례나 유사한 사고가 반복됐는데도 변론기일 단 1차례 만으로 실형을 면한 것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변호인단이 왜소한 업체는 1심에서 실형을 받았다. 2022년 3월 철강제조 공장 하청 노동자가 떨어진 방열판에 부딪혀 사망한 사건으로 기소된 한국제강 E대표는 징역 1년, 법인 벌금 1억 원의 실형을 받은 뒤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중처법 1호 실형 사례다. E대표가 선임한 변호인은 검사 출신의 개인 사설 변호인 1명이 전부로, 반성과 숨진 노동자 과실, 유족 합의는 여느 중처법 사건 재판에서의 '유리한 사정'과 같았지만 안전조치의무 위반 벌금형 전력 등으로 실형을 면치 못했다.
 

전관·피해자 합의·증언 코치…법기술 공식에 중처법 무력화

중처법 기능이 작동되지 않고 있는 배경에는 대형 로펌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법기술자들'의 행적이 깔려 있다. 그들은 주로 사법연수원 기수가 높은 판검사 출신 변호인들로, 화려한 이력의 변호인단이 변론에 나서면 재판부를 압박하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일반적 인식이다.
 
중처법 사건 피해자들을 변론해 온 신하나(민변 노동위원장,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김앤장 같은 대형 로펌은 턴키방식으로 종합 계약을 하고, 아주 방대한 의견서를 제출해 경찰, 노동부의 수사를 지연시킨다"며 "참고인인 회사 직원들이 조사받을 때도 따라붙어 발언 범위와 내용 등에 대해 집요하게 코치하고 관여하는데 회사 대표를 살리려고 진실에 대한 수사를 방해하는 행위로 인식된다"고 말했다.
 
막강한 변호인단이 중처법 실형 판결을 막아내는 전략은 일정한 패턴을 보인다. 중처법 사건들의 1심 재판 판결문 내 공통된 '유리한 정상'은 △유족과의 원만한 합의 △피해자 측의 처벌불원서 제출 △재발방지책 마련 △범행 인정 △노동자에게 일부 과실 등이다. 과거 비슷한 처벌 이력이 있다는 '불리한 정상'에도 대부분 판결은 집행유예에 그쳤다.
 
강득구 의원은 "대기업은 막강한 경제력으로 대형 로펌을 고용해 온갖 '법꾸라지' 작전을 벌이고, 재판부는 법리상 어쩔 수 없다며 솜방망이 처벌로 끝내는 관행이 굳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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