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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적인 檢+관대한 法…중처법, 대형로펌에는 '잭팟'

편집자 주

고용노동부의 산업재해 현황 분석 자료를 보면 2013~2022년 이른 아침 출근한 노동자들 가운데 2~3명은 끝내 귀가하지 못했다. 산업현장에서의 죽음을 멈추자는 취지로 2년 6개월 전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 무력화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경영자들이 안전에 대한 투자보다 '자기 보전'에 대한 지출에 집중한 탓이다. 그들 뒤에는 이른바 '법기술자'들의 조력이 있었다. CBS노컷뉴스는 중처법의 현실과 개선점을 짚어본다.

[법기술자에 짓밟힌 중처법②]
대형로펌, 전관 영입으로 수사기관·법원 압박
국내 10대 로펌, 중처법 기소사건 절반 이상 수임
"노동자 과로사에 골프경기 걸음 수와 비교"…선 넘는 변론도
"합의하자" 유족 압박…민사소송은 보상 적어 거짓정보도
대검 "중처법 구형량은 2년 6개월 이상"…실제 적용 '0'건
"중대재해 재판부의 낮은 노동현장 이해도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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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싣는 순서
①2.5년간 대기업 기소 단 한 건…무력화된 '중처법'
②소극적인 檢+관대한 法…중처법, 대형로펌에는 '잭팟'
(계속)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 2년여 동안 530여건 사건이 발생했지만 재판을 통해 실형을 선고받은 건은 단 2건에 불과했다.
 
1일 CBS노컷뉴스가 강득구(더불어민주당·안양 만안) 국회의원실을 통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중처법 위반 현황(올해 3월말 기준)과 재판 진행 상황을 종합 분석한 결과, 총 사건수는 543건이고 이 가운데 재판으로 이어진 건 40건이었다.
 
기소된 40건 가운데 1심 선고가 나온 건 17건이고, 이 가운데 1심에서 업체 대표에게 실형이 내려진 건 단 2건이었다. 중처법 위반 전체 사건(543건) 가운데 단 7%(40건)가 재판으로 넘겨졌고, 업체 대표의 실형이 선고된 건 0.5%(2건)에 불과했던 셈이다.
 
1명 이상이 사망한 산업재해가 1달에 20건가량 발생했는데 기소는 1.5건에 머물렀다. 중대산업재해 발생 건수에 비해 재판으로 넘겨지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더구나 대기업은 중처법이 여전히 다루지 못하는 '철옹성'으로 인식되는 분위기다. 지금까지 기소된 중처법 사건 중 '그룹 단위'의 대기업 관련 사건은 단 1건이다. 중처법 '1호 수사대상'이었던 '삼표 양주채석장 사망사건'이 이에 해당된다.
 
이 사건은 중처법 시행 사흘 만인 2022년 1월29일 경기 양주 골재채취장 토사가 붕괴돼 노동자 3명이 숨진 사건이다.
 
검찰은 이 사건이 삼표산업 내 사업장에서 발생했지만 삼표산업 대표이사가 아닌 삼표그룹 정도원 회장을 기소했다. 삼표산업 대표이사는 정 회장을 보좌한 업무 수행자 중 한 명일 뿐이고 실제 경영책임자는 정 회장이라는 게 검찰의 판단이었다.
 
결국 사건 발생 1년 3개월 만인 지난해 4월 기소가 이뤄졌고, 1년 뒤인 올해 4월에서야 첫 재판이 열렸다. 피고인이 그룹총수로 확대되면서 재판은 더욱 지연됐다. 사건 발생 900여일이 지났지만 결과는 오리무중이다.
 
중처법 최다 위반 업체인 DL이앤씨는 아직 단 한건도 기소되지 않았다. DL이앤씨는 옛 대림산업이 물적분할한 건설부문 기업이다. DL이앤씨에서는 최근까지 모두 8건의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해 9명이 숨졌다.
 
DL이앤씨의 중대산업재해는 나날이 늘고 있지만 오히려 이 기업은 올해 국토교통부가 전국 7만3천여개 건설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건설업체 시공능력평가에서 삼성물산, 현대건설, 대우건설, 현대엔지니어링에 이어 '국내 5대 건설업체'로 올라섰다.
 
에쓰오일의 경우 2022년 5월 19일 울산 온산공장에서 폭발사고로 1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해 검찰이 관련자 13명이 산업안전보건법·화학물질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했지만 대표이사와 안전경영책임자는 무혐의 처분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선고 결과. 출처 각 법원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선고 결과. 출처 각 법원

대형로펌, 전관 영입으로 수사기관·법원 압박


법조계 관계자들은 중처법 관련 사건 재판이 늦게 제기되고 실제 처벌 수위도 높지 않은 요인으로 대형로펌들을 중심으로 한 '법기술자'들의 중처법 대응 준비와 검찰의 소극적 구형, 법원의 노동감수성 부족 등을 꼽았다.
 
노무사 출신 김남석(법무법인 태원) 변호사는 "중처법 시행을 앞두고 대형 로펌들이 공룡 기업들을 상대로 컨설팅을 해주면서 안전관리 책임자를 두거나 인증제 형태의 재해예방대책을 적용해 처벌을 피하는 방법들을 조언했다"며 "그런 전략들이 통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로펌들의 중처법 핵심 대응 전략은 전관 영입이다. 사법연수원 기수가 높은 판검사 출신 변호인들을 영입해 변론에 나서면 재판부를 압박하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상식이다.
 
이주희(법무법인 다산) 변호사는 "화려한 이력의 변호인들이 피고 측에 서고 사회적 관심이 커지면 담당판사도 형량을 정하는 데 있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형사사건에서 늘 있었던 전략이 중처법에도 등장한 것으로 대형 로펌들이 준비한 여러 시나리오 중 하나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법조인뿐만 아니라 고용노동부와 경찰 등 관련 기관 출신 인사들도 전담팀에 배치해 중처법 수사 단계 때부터 체계적으로 관계 당국의 소통 채널을 구축해 변호인단에 힘을 실어준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전언이다. 이 단계에서부터 대표의 혐의를 벗기거나 형량을 최소화하기 위한 기초작업이 이뤄지면서, 사건 수사와 기소 절차는 지연되기 일쑤다.
 

국내 10대 로펌, 중처법 기소사건 절반 이상 수임


기업들도 이러한 대형로펌들의 중처법 대응에 기대는 모습이다. 지금까지 기소된 40여건 가운데 김앤장·광장·태평양·율촌·세종·화우·지평·바른·대륙아주·와이케이 등 국내 10위 법무법인(2023년 기준)이 수임한 사건은 절반을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가장 적극적으로 뛰어든 로펌은 6건을 수임한 법무법인 율촌이었다. 이어 법무법인 화우가 4건, 김앤장·법무법인 세종이 각각 3건을 수임했다.
 
대형로펌의 중간급 변호사들의 수임료가 시간당 60만원~100만원대로 알려져 있다. 이를 기준으로 중처법 사건을 수임할 경우 받을 수 있는 수임료는 대략 수억원이 보장된다. 성공보수까지 더하면 십수 억 원도 가능하다고 법조계는 보고 있다.
 
중처법 사건 피해자들을 변론해 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신하나(법무법인 덕수) 노동위원장은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대형 로펌들은 해당 기업과 턴키방식으로 계약을 한 뒤 아주 방대한 의견서를 제출해 경찰과 고용노동부의 수사를 더디게 만든다"며 "참고인인 회사 직원들이 조사받을 때도 따라붙어 발언 범위와 내용 등에 대해 집요하게 코치하고 관여하는 데 회사 대표를 살리려고 진실에 대한 수사를 방해하는 행위로 인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자 과로사에 골프경기 걸음 수와 비교…선 넘는 변론도


대표를 변호하는 과정에서 선을 넘는 변론이 나오기도 한다. 노동자가 과로로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걸음 수를 골프경기 중 걷는 횟수와 비교하는가 하면 변호사가 직접 과로 체험을 하며 사측을 대변하는 사례도 나왔다.
 
신 변호사는 "억울하게 산재 입증을 받지 못한 노동자, 약자를 대변하기는커녕 자본과 기업 편에 서서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하는 생각이 생각이 들었다"며 "같은 변호사로서 자괴감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합의하자" 유족 압박…"민사소송은 보상 적다" 거짓 정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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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관 영입이 수사기관과 법원을 압박하고 관련 정보들을 얻는 수단이라면, 산업재해피해 유족들과의 합의는 형량을 낮추는 수단이다. 대형로펌들이 중처법 실형 판결을 막아내는 전략을 보면 일정한 패턴을 보인다.
 
중처법 사건들의 1심 재판 판결문 내 공통된 '유리한 정상'은 △유족과의 원만한 합의 △피해자 측의 처벌불원서 제출 △재발방지책 마련 △범행 인정 △노동자의 일부 과실 등이다. 과거 비슷한 처벌 이력이 있다는 '불리한 정상'에도 대부분 판결은 집행유예에 그쳤다.
 
신 변호사는 "형량 감경을 위한 대표적인 요소가 피해자, 유족의 처벌불원서이기 때문에 변호사나 노무사를 통한 합의 압박이 가해진다"며 "사람을 바꿔가며 끈질기게 연락하고 민사소송으로는 보상액이 적다는 거짓 정보를 흘리면서 합의를 유도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신 변호사는 "정신적으로 힘든 유족들은 자포자기 심정으로 합의를 결심하는데, 합의서에 도장 찍으러 가보면 처벌불원서를 슬그머니 내놓는다"고 덧붙였다.
 

대검 "중처법 구형량은 2년 6개월 이상"…실제 적용 '0'건


검찰의 구형량이 낮은 것도 중처법 처벌 양형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지목된다. 앞서 2022년 3월 대검찰청은 중처법 시행 이전에 적용했던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사망사고에 대한 대법원의 기본 양형이 징역 1년~2년6개월인 걸 감안해 이보다 2배 높인 기준을 중처법에 적용해 구형하겠다고 밝혔다.
 
주요 가중인자로 △유사 사고재발 빈도와 규모 △중대성 △구호조치 미흡 등을 포함해 사고 재발빈도가 높고 사고 규모가 클수록 구형을 높이기로 했다. 반대로 감경인자로는 △사고발생 경위 △합의 및 피해 회복 등을 포함했다. 피해자와의 합의 또는 피해 회복을 얼마나 빨리 했느냐를 고려하겠다는 것이다.
 
이 기준을 과거 사건에 적용하면 검찰이 징역 7년형을 구형하고 법원이 징역 3년을 선고했던 2020년 '이천물류창고 화재사건(38명 사망)'의 경우, 시공사 책임자에 대해 징역 10~12년을 선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실제 1심이 선고된 중처법 사건 17건의 구형은 모두 징역 1~2년에 머물렀다. 대검찰청이 중처법 사건 구형 기준으로 설정한 2년 6개월~4년의 최저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대검의 중처법 구형 기준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중대재해 재판부의 낮은 노동현장 이해도 문제"


국회가 산업계 중대재해에 대한 경각심을 끌어올리기 위해 중처법을 도입한 의도에 대해 사법부의 공감대가 부족하다는 문제점도 제기된다.
 
중처법 사건 판결문들을 보면 재판부의 판시 근거에 중처법 도입의 핵심 취지와 연관된 '경영 책임자로서의 엄벌 필요성'에 대한 언급은 등장하지 않았다. 중처법 적용 재판임에도 법원이 여전히 해당 사건들을 과거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과 비슷한 수준으로 다룬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강득구 의원은 "중대재해 사건을 맡은 재판부가 노동현장을 잘 몰라서 사용자 측 주장에 더 귀를 기울이는 경향이 있다"며 "중대재해를 다루는 판사들에게 노동관계법 교육과정을 제공하거나 재판시 노동전문가의 견해를 듣는 등의 제도개선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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