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후 인천 서구 청라동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 현장에서 합동 감식을 마친 경찰이 화재가 발생한 전기차를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최근 인천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 사고는 불에 취약한 전기차의 위험성을 여실히 보여줬다. 전기차 1대의 폭발로 주차된 차량 140여대가 불에 타거나 그을렸고, 5개동 480여가구의 전기와 수도가 끊겼다.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폭발 당시 위력에 비춰 사고 차량이나 주변에 사람이 있었다면 자칫 큰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대형재난 수준의 사고가 일어나면서 자동차 업계는 물론 사회 전반의 불안은 커지고 있다. 전기차 보급에 속도가 붙고 있는 시점이라 더욱 그렇다. 일각에서는 이번 화재를 계기로 전기차 주차장의 지상화 등 사고 발생시 피해 확산 방지에 목소리를 내지만, 전문가들은 화재 자체를 사전에 예방하는 보다 실질적인 대비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진단한다.
멀쩡히 주차했는데…59시간 만에 폭발
6일 경찰 등에 따르면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전날 인천 청라 전기차 화재 사고 현장에서 합동감식을 벌였다. 합동감식은 애초 8일로 예정돼 있었지만 화재 원인을 신속히 규명하고자 일정을 사흘 앞당겼다. 이번 화재로 주민 300여명이 현재 인근 학교 체육관 등에서 때 아닌 이재민 생활을 하고 있는 만큼 빠른 피해 복구가 절실한 상황이다.
화재는 지난 1일 오전 6시 10분쯤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서 발생했다. 불이 시작한 곳은 벤츠 EQE 350 전기차다. 주차된 상태에서 흰 연기가 뿜어져 나오더니 갑자기 큰 불기둥이 치솟으며 폭발했다. 소방당국이 323명의 인력과 펌프 차량 등 장비 80대를 현장에 동원했지만, 불길은 8시간 20분 동안이나 타오르며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고서야 멈췄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화재가 발생한 벤츠 전기차 EQE 350에 탑재된 배터리셀은 파라시스 제품으로 확인됐다. EQE 350에는 파라시스뿐만 아니라 중국 CATL의 배터리셀도 사용되는데, 해당 차량에는 파라시스 제품이 들어갔다. 탑재된 제품은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로, 정확한 모델명은 알려지지 않았다.
사고를 본 많은 이들이 충격받은 지점은 달리는 상태가 아닌 가만히 주차된 차량에서 큰 폭발이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지금껏 전기차 화재는 충전 중에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충전을 하지 않은데다 운전자가 차량을 주차한 시점도 화재 발생 사흘 전인 지난달 29일이었다. 멀쩡히 주차된 차량이 59시간 만에 갑자기 폭발한 것이다.
전기차 화재 급증…업계는 노심초사
연합뉴스전기차 보급 속도가 빨라지면서 화재 사고도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소방청 통계를 보면 지난 2018년 3건에 불과하던 전기차 화재는 △2019년 7건 △2020년 11건 △2021년 24건 △2022년 43건 등으로 늘다가 지난해에는 72건으로 급증했다. 단순 수치로만 5년새 24배다. 내연기관차의 화재도 적지 않지만, 증가율 측면에서는 전기차 화재가 압도적이다.
자동차 업계는 조마조마하다. 가뜩이나 전기차 시장이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을 맞으면서 주춤한데 이번 화재 사고가 또 다른 악재로 작용하는 건 아닌지 긴장하면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하반기 들어 전기차 대중화와 시장 활력에 시동을 걸려던 완성차 업체들에게 인천 전기차 화재 사고가 완전히 찬물을 끼얹었다"고 말했다.
현재 현대자동차는 '캐스퍼 일렉트릭'으로, 기아는 'EV3'로 하반기 신차 효과를 노리고 있다. 제너럴모터스(GM) 한국사업장도 올 하반기에 중형 전기 SUV '이쿼녹스 EV'를 출시한다. BMW는 순수 전기 SAC '올 뉴 iX2'를 선보이고, 벤츠는 메르세데스 마이바흐 최초의 전기 SUV '디 올 뉴 메르세데스 마이바흐 EQS SUV'를 최근 내놨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내연기관차와 달리 전기차 화재는 빈도수가 적어도 일반인들의 인식에 강하게 각인되는 경향이 짙다"며 "아직 화재 원인이 정확하게 나오지는 않았지만, 이번 사고로 전기차 공포가 커질 건 뻔하다"고 내다봤다.
전기차 주차, 지상으로 옮기면 해결되나
전기차는 배터리가 연쇄적으로 폭발하는 열폭주 특성상 한번 불이 나면 진화가 쉽지 않다. 전기차에 탑재되는 리튬이온배터리는 불이 붙으면 순식간에 온도가 1000도까지 치솟는다. 여기에 불길을 키우는 산소와 가연성 가스마저 배출된다. 인천 전기차 화재 당시 소방대원들이 차량 하부 배터리에 집중적으로 물을 뿌렸지만 8시간 넘게 화재가 지속된 이유다.
특히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화재는 피해를 막기가 더욱 어렵다. 전기차 화재는 분말 소화기 대신 차량을 통째로 담그는 이동형 소화수조 등 대형 장비를 동원해야 하는데 지하주차장에는 이같은 장비 반입이 여의치 않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이번 화재를 계기로 전기차 충전 시설을 지상으로 올려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지만, 실효성은 떨어진다는 지적이 대다수다. 어린이 보호와 보행권 확보 등을 이유로 2000년대 중반 이후 지어진 아파트 대부분이 지상주차장을 갖추지 않고 있을 뿐더러 전기차 운전자가 늘어나는 마당에 모든 전기차의 지상 주차·충전을 강제하기도 어렵다.
화재 예방 장비와 배터리 관리가 핵심
연합뉴스전문가들은 결국 현재 단계에서는 전기차 화재를 예방하는 안전 장비의 보급을 확대하고 주기적인 차량 점검으로 사전에 사고를 막는 조치가 현실적이라고 진단한다. 그중 하나가 과충전 방지 기능이다. 급속충전기는 보통 80% 수준에서 배터리 충전이 중단되는 기능이 있지만, 완속충전기는 100%까지 충전돼 과충전과 이로 인한 화재 위험성이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에 설치된 완속충전기는 약 27만대다. 이에 정부는 올해 800억원의 예산을 배정해 완속충전기에 과충전 방지 기능을 탑재하면 1대당 40만원의 보조금을 추가 지급하고 있다. 과충전 방지에 필요한 전력선통신 모뎀의 시장 가격이 40만원대임을 고려하면 사업자는 큰 비용 부담 없이 화재예방형 완속충전기를 설치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운전자의 주기적인 배터리 관리다. 전기차 배터리는 수백개의 배터리 셀로 구성되는데, 셀 사이 전압차가 균일하게 유지되지 않으면 특정 셀 하나에 과부하가 걸리기 쉬워 화재의 위험성을 키운다. 또 배터리의 양극재와 음극재를 분리하는 분리막이 손상되면 두극이 서로 만나면서 과도한 전류가 흐르고 열이 발생해 역시나 화재로 이어질 수 있다.
이같은 위험을 줄이는 방안으로 전문가들은 '셀 밸런싱'이 필수라고 입을 모은다. 한달에 한번 정도 배터리 충전량을 20% 이하로 떨어뜨린 다음 완속충전기로 100%가 될 때까지 충전하는 작업을 말한다.
김성태 한국전기차사용자협회 회장은 "운전자들이 주기적으로 타이어 공기압을 체크하듯이 전기차 배터리도 주기적인 셀 밸런싱이 필요하다"며 "샐 밸런싱 작업을 하면 셀 사이 균형이 맞춰지면서 에너지 밀도를 유지할 수 있고, 특정 셀로 인한 과열과 화재도 예방할 수 있다. 최소 1~2개월에 한번은 셀 밸런싱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