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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투사 후손 前 독립기념관장 "선열들 무덤 뛰쳐나올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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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투사 후손 前 독립기념관장 "선열들 무덤 뛰쳐나올 것"

    [이준식 제11대 독립기념관장 인터뷰]

    기관 설립 취지에 어긋난 역사 인식 비판
    金의 '국가 부존재' 해명에 정면 재반박
    신임 관장 자격, 전문성 등에 의문 제기
    "주권 강탈 후 국가 지키려 '독립운동'"
    "일본 국적이었다면 '독립' 개념 불성립"
    "독립운동으로 나라 '재건'은 헌법 가치"
    "역사 역주행, 선조들 무덤 뛰쳐나올 것"

    이준식(왼쪽) 전 독립기념관장과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이 전 관장 제공 및 류영주 기자이준식(왼쪽) 전 독립기념관장과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이 전 관장 제공 및 류영주 기자
    "일본의 식민지배 합리화에 대한 '분노'로 만들어진 게 독립기념관입니다. 나라가 존재하지 않았다며 광복의 일반적 의미조차 수용하지 않는 자를 어떻게 관장에 임명할 수가 있는지…"
     
    최근 '뉴라이트' 인사 논란에 휩싸인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의 해명 기자회견이 열린 지난 12일, 이준식(68) 전 독립기념관장(11대)은 김 관장의 주장을 재반박하며 말문을 열었다. 이 전 관장은 지청천(외조부)과 지복영(모친) 등 독립유공자의 후손이다.
     
    먼저 이 전 관장은 '일제시대에 나라가 없었다'는 김 관장의 역사적 인식을 정조준했다. 식민지의 국권을 인정하지 않는 친일 논리를 받아들인 것으로 풀이된다는 취지다.
     
    당시 선조들은 국권이 아닌 '주권'을 강제로 빼앗긴 상황에서 조국을 일본으로부터 온전히 독립시키기 위해 싸웠던 것으로, 이를 연구하고 넋을 계승해야 할 기관장으로서 '국가의 부재'를 전제로 삼는 것 자체가 논리적이지 않다는 게 이 전 관장의 견해다.
     
    "독립기념관은 1987년 8월 15일, 일본이 식민지배 역사를 합리화하는 교과서 등을 편찬한 데 대응해 우리 국민들의 분노가 (성금으로) 응축돼 만들어졌습니다. 식민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떤 희생이 있었는지 역사를 직시하는 게 핵심이에요. 이런 기관의 대표자가 일본의 역사 인식에 동조하는 언동으로 논란의 중심에 선 겁니다.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순 없죠."
     
    김 관장의 지속적인 해명에도 독립기념관장으로서의 자격과 자질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 앞선 기자회견과 언론인터뷰에서 김 관장은 "(제가) 독립운동을 폄훼했거나, 식민지배를 동조하는 뉴라이트라는 비판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도 '일제시대의 국적은 일본', '건국은 1948년 정부 수립으로 완성' 등의 기존 입장을 유지하며 "사퇴는 없다"고 일축했다.
     
    김 관장은 취임 일성으로 "억울하게 친일 인사로 매도되는 분들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며 친일인명사전 오류 재검증 발언을 해 광복회와 여러 독립운동 단체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그간 독립기념관장은 안중근 의사의 조카이자 한국광복군에 몸담았던 안춘생 초대 관장을 시작으로, 독립운동가와 독립유공자의 후손, 또는 관련 연구를 해온 학자가 맡아 왔다.
     
    지난 2020년 8월 이준식 당시 독립기념관장이 CBS 라디오 인터뷰에 출연한 모습. 유튜브 화면 캡처지난 2020년 8월 이준식 당시 독립기념관장이 CBS 라디오 인터뷰에 출연한 모습. 유튜브 화면 캡처
    이 전 관장은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독립운동가들은 나라가 '계속 존재'한다는 신념으로 투쟁했는데, 신임 관장의 발언들을 보면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며 "그렇다면 독립운동은 '반국가' 활동이라는 말이냐"고 따졌다.
     
    이어 "나라가 존재하지 않고 일본과 통합된 국가였다고 여기면 독립이라는 개념이 성립될 수 없다"며 "이는 제헌헌법을 통해서도 명확하게 재해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새로운 나라가 아닌 자주적인 국가로 다시 세우는 '민주독립국가 재건(再建)'이라는 표현이 제헌헌법에 명시돼, 김 관장의 역사적 시각과는 정면 배치된다는 해석이다.
     
    그는 "일제 때 나라가 없었다는 건 어불성설이고, 그런 말을 하는 자는 독립을 논할 자격이 없다"며 "주권을 빼앗겼을 뿐 나라는 늘 존재했다"고 힘줘 말했다.
     

    자격·전문성에 물음표…"金도 尹도 역사적 역주행"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 연합뉴스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 연합뉴스
    특히 임명 직후 김 관장의 발언 내용을 가리켜 '역사를 뒤집어엎는 행위'라고 직격했다.
     
    이 전 관장은 "독립운동의 결과로 광복을 이뤄냈다는 게 일반적인 우리 사회의 통념인데, 김 관장은 이와 상반되게 독립운동 가치를 저하시키는 편향된 관념을 보였다"며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독립과 친일의 가치를 뒤집으려는 사람 아닌가 싶다"고 의아해했다.
     
    독립기념관을 이끌 수장으로서의 전문성에도 의문을 던졌다. 독립운동사에 정통했거나 보편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학술적 성과는 낸 적이 있었느냐는 물음이다.
     
    그는 "김 관장은 독립운동사를 전공했거나 이 분야에서 이름이 알려진 인물도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며 "어느 날 갑자기 독립운동사를 재해석할 수 있는 권위자처럼 등장했다. 국가건립 시점에 대한 이견으로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정체성의 연결성을 흐리게 만드는 등 상당수 강의와 글은 역사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수용하기 힘든 내용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가 임명을 강행한 데 대해서도 '뒤집힌 인사'라고 평가절하했다.
     
    이 전 관장은 "취임하자마자 친일파의 억울함에 관한 공식발언부터 하며 빈축을 샀다"며 "김 관장 본인이 역사의 물결을 뒤집었고, 윤 정부의 인사도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현 정권 들어 역사적 이념 논란이 반복되는 것에 관해서는 의도 여부와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일제 식민지를 합리화하는 이른바 '현대판 친일 식민사관'을 낳게 된다고 경고했다. "정부가 '우린 지배당한 적 없다'는 자기주문을 외며 과거를 지우고 싶어 하는 것 같다"며 "강제병합이었던 불운한 역사를 합법적인 역사처럼 만들려는 친일 사관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우려다.
     
    윤 정부는 지난해 육군사관학교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의 외부 이전을 추진하는가 하면, 최근에는 조선인 강제동원 문구가 빠진 사도광산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동의하며 역사·외교적 편향성 논란에 직면해 있다.
     

    "독립·광복 가치 절하에 분노…제2의 독립운동해야 하나"

    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장이 해명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모습. 류영주 기자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장이 해명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모습. 류영주 기자
    이처럼 독립 역사를 거스르는 것은 전임자이자 독립유공자 집안에서 자란 이 전 관장에게 더욱 뼈아픈 현실이다. 그는 광복을 향한 희생의 역사를 돌이키며 끝내 분을 참지 못했다.
     
    이 전 관장은 "참담하다. 지하에 계신 선열들께서 통곡하다 못해 무덤을 뚫고 뛰쳐나올 것만 같다"며 "'우리가 이런 꼴을 보려고 목숨 바쳐 독립운동을 했느냐'고 분노할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한 "'대한민국은 독립운동가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세워진 것으로 해석돼야 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부정하는 것은 헌법과 국가를 부정하는 것인데, 그런 인식을 가진 세력이 창궐하고 있어 안타깝다"며 "100년 전 주권을 되찾기 위해 모든 걸 바친 선조들의 정신을 다시 살려야 할 때가 됐다"고 '제2의 독립운동'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사태 해결을 위한 김 관장의 결단을 촉구했다. "대통령실은 자신들의 역사관을 실현할 사람이라고 봐서 내려 보냈기 때문에 직접 경질할 가능성은 낮다"며 "본인(김 관장)이 관장직의 의미를 깨닫고 스스로 물러나는 게 최선책"이라는 요구다.
     
    이와 함께 이 전 관장은 "독립기념관장뿐만 아니라 국사편찬위원회, 동북아역사재단, 한국학중앙연구원 등 다른 역사 기관장에 김 관장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인물들이 꿰차고 있다"며 "전반적인 문제제기와 재검토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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