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재 법무부 장관이 1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2024년 광복절 특별사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가 다섯 번째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드루킹 댓글 조작'의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복권됐을 뿐 아니라 여론 조작과 선거 개입에 관여했던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고위 공직자들이 무더기로 사면·복권됐다.
법무부는 광복절을 이틀 앞둔 지난 13일 정치인과 공직자, 경제인 등 1219명에 대한 특별사면과 복권 등을 단행했다.
정부는 특사 배경 중 하나로 '통합과 화합'을 꼽았다. 박성재 법무부 장관은 "국정 수행 과정에서의 잘못으로 처벌받았지만, 장기간 공직자로서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한 주요 공직자와 여야 정치인 등을 사면해 통합과 화합의 기회를 마련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여론 조작부터 국정농단까지 사면 단행…'통합' 사면?
정부의 설명에도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여론 조작이나 국정농단 관련 사건으로 유죄가 확정된 이들이 대거 사면 명단에 이름을 올려 통합과는 거리가 멀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는 범죄의 경중과 경위 등을 고려해 전직 주요 공직자 55명을 사면했다는 입장이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대표적으로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의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남은 형량을 면제받고 복권됐다. 그는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 예산으로 민간인 댓글 부대를 운영하는 등 재직 시절 각종 정치 공작을 벌인 혐의를 받았다. 원 전 원장은 징역 14년 2개월이 확정됐다가 감형받고 지난해 출소했다.
윤 대통령은 검사 시절 국정원 댓글 사건의 수사팀장을 맡아 원 전 원장을 수사했었다. 윤 대통령 입장에서는 수사와 기소 대상이던 인물을 직접 사면하고 복권해 준 셈이 됐다.
이명박 정부에서 댓글 여론 공작에 관여한 혐의로 유죄가 확정된 조현오 전 경찰청장도 복권 대상자에 올랐다. 조 전 청장은 경찰을 동원해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등에 대해 정부에 우호적인 글을 쓰도록 했다는 직권남용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확정받았고, 수감 중이던 지난해 7월 가석방됐다.
조 전 청장의 지시로 댓글 여론 공작에 관여한 혐의로 유죄가 확정됐던 경찰청 소속 황성찬 전 보안국장, 김성근 전 보안국장, 정철수 전 대변인 등도 사면 대상이 됐다.
박근혜 정부 시절 총선에 개입한 혐의를 받는 강신명 전 경찰청장과 김상운 전 경찰청 정보국장, 박기호 전 경찰청 정보심의관, 정창배 전 치안비서관실 선임행정관 등 전직 고위 경찰들도 형 선고의 효력 소멸과 더불어 복권됐다.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1년 2개월이 확정된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복권됐다. 그는 미결수 신분으로 구속 기간 형기를 모두 채웠다. 조 전 장관은 보수성향 단체를 불법 지원한 '화이트리스트' 사건으로는 2020년 징역형 집행유예를 확정받고 2년 뒤 사면 복권된 바 있다.
'화이트리스트' 사건으로 복역한 현기환 전 정무수석, 대기업에 거액의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출연금을 압박한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뒤 만기 출소한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도 복권됐다.
尹이 수사했던 인물도 '셀프 사면' 논란
앞서 윤 대통령은 2022년 8.15 광복절 특사를 시작으로, 그해 연말 '신년 특사', 지난해 8.15 광복절 특사 그리고 올해 2월 설 연휴를 앞두고 특사를 단행했다. 그동안의 사면에서 대부분 이명박·박근혜 정부 인사들이 대거 사면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부 출범 이후 이뤄진 첫 번째 사면에서는 경제회복에 방점을 두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경제인들이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그해 연말 단행된 신년 특사에는 정치인, 고위 공직자들이 대거 포함됐다.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성태 전 국민의힘 의원,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국정농단에 연루됐던 안봉근·이재만·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 등이 사면됐다.
당시 사면을 두고도 국정농단 특검의 수사팀장으로 활약했던 윤 대통령이 자신이 수사한 피고인들을 스스로 사면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 전 대통령이 기소됐을 당시 윤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장이기도 했다.
올해 설을 앞두고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의 김기춘 전 실장과 '국군 사이버사 댓글 공작 사건'의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이 사면 받았다. 당시 두 사람 모두 파기환송심 유죄 선고 이후 재상고를 포기해 형이 확정된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사면을 받아 '사전 교감' 논란이 일기도 했다.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연합뉴스한편, 이번 사면 대상에는 김경수 전 경남지사도 포함됐다. 김 전 지사는 2017년 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문재인 전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이른바 '드루킹 댓글조작'에 가담한 혐의로 2021년 7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이듬해 12월 27일 정부의 '신년 특사'에서 5개월여의 잔여 형기 집행을 면제받고 출소했지만, 복권되지는 않았다.
피선거권을 회복한 김 전 지사는 2026년 지방선거와 2027년 대선에 출마할 수 있게 됐다. 김 전 지사의 복권 여부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영향력이 막강한 민주당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법무부는 "그동안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여론 왜곡 관련자들에 대해 여야 구분 없이 사면을 실시함으로써 정치적 갈등 상황을 일단락하고 국익을 위해 통합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여론조작 및 국정농단 사범들과 김 전 지사 사면을 함께 단행해 균형을 맞추려 했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법무부 송강 검찰국장은 "이번 사면에서 댓글 조작 사건 관련자 다수가 사면·복권 대상자인 점과 범행 경위 등도 고려했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