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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구 잠근' 아리셀, 정규직에만 지급된 출입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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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상구 잠근' 아리셀, 정규직에만 지급된 출입 카드

    대형 화재 현장에선 탈출 흔적 발견되지만
    아리셀 현장은 전무…"안전 교육 없었기 때문"
    아리셀 비상구 일부는 잠금 장치
    정규직은 ID카드·지문으로 해제 가능
    비정규직은 카드 없고, 비상구도 몰랐다

    일차전지 업체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 현장. 화성=박종민 기자일차전지 업체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 현장. 화성=박종민 기자
    23명이 숨진 경기 화성 리튬전지 업체 아리셀 화재 참사가 발생한 배경에는 무리한 제조공정이나 불량품 양품화뿐 아니라 안전관리를 방치한 문제가 자리 잡고 있었다.

    평소 안전교육이나 대피로 안내는 없었고, 일부 비상구는 '정규직'에게만 제공되는 ID카드를 통해서만 출입이 가능했다. 결국 화재 현장에서 작업자들은 제대로 된 대처도 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평소 안전교육 됐다면…" 골든타임 37초 놓쳤다

    아리셀 모회사 에코넥스 박순관 대표가 25일 경기 화성 일차전지 업체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 현장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화성=박종민 기자아리셀 모회사 에코넥스 박순관 대표가 25일 경기 화성 일차전지 업체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 현장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화성=박종민 기자
    24일 경찰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참사가 발생한 지난 6월 24일 아리셀 공장 3동 2층에서는 43명이 근무하고 있었다. 오전 10시 30분 3초가 되자 보관중이던 리튬 전지 더미에서 연기와 함께 화재가 시작됐다.

    작업자들은 초기 진화를 시도했으나 효과가 없자 탈출을 시도했다. 경찰이 내부 CCTV로 확인한 일부 작업자들의 탈출 시간은 최초 발화 이후 37초 뒤인 오전 10시 30분 40초다. 이어 불과 4초 뒤에는 검은 연기가 공장을 뒤덮는다.

    즉 골든타임은 37초였던 것인데, 이 사이에 아리셀 관계자 누구도 큰 소리로 대피로를 알려준 사람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팀은 아리셀이 직원들에게 평소 화재대응이나 대피로 등을 교육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대형 화재 사고 현장에서는 탈출하려는 시도나 흔적이 발견돼야 하는데, 아리셀 공장에서는 이런 흔적이 발견되지 않은 점도 안전교육의 부재를 방증한다. 근무자들 역시 경찰 조사에서 리튬전지의 화재 위험성 등을 알지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근무자들은 리튬제조 공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화재의 위험성을 알지 못했고, 소방교육이나 안전교육 역시 전혀 없었다"라며 "골든타임인 37초 동안 누군가 탈출 안내를 했다면 더 큰 희생은 막을 수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잠긴 비상구', 비정규직은 카드 없어 못나왔다

    경기 화성 아리셀 공장 3동 2층 도면. 경기남부경찰청 제공경기 화성 아리셀 공장 3동 2층 도면. 경기남부경찰청 제공
    아리셀 측은 안전시설 관리 역시 미흡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화재가 발생한 2층 작업장에서 밖으로 나가려면 3개의 출입문을 통과해야 한다. 이 동선에는 보안문제로 잠금 장치가 설치된 출입문이 있다.

    문제는 정규직 직원에게는 잠금 장치를 해제할 수 있는 ID카드나 지문등록이 제공됐지만, 비정규직에게는 제공되지 않았다. 비정규직 직원이 불길을 피해 비상구로 달려갔더라도 빠져나가지 못하는 구조인 것이다.

    이번 아리셀 참사 희생자 23명 중 정규직은 3명, 비정규직은 20명이었다. 비정규직 중에도 탈출한 직원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지문으로 잠금 장치를 해제하고 출입문을 연 정규직 직원을 따라나간 덕분에 건물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관계 법령에 따라 비상구의 위치와 존재는 모두에게 알려야 한다"며 "직급의 차이에 따라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이에 따라서 비상구 사용 여부를 가른다면 그것은 비상구가 아닌 것"이라고 말했다.


    납품 맞추려 비숙련자 투입…불량품 양품화로 화재 발생

    김종민 경기남부경찰청 아리셀 화재 사고 수사본부장이 23일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김종민 경기남부경찰청 아리셀 화재 사고 수사본부장이 23일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수사팀은 아리셀이 정해진 납품을 맞추기 위해 급하게 비숙련자를 공정에 투입하고, 그로 인해 불량품이 쌓이면서 화재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아리셀은 올해 1월 방위사업청과 34억원 상당의 리튬전지 납품계약을 체결했다. 2월분까지는 정상적으로 납품했으나, 4월분 제품이 국방기술품질원 품질검사에서 미달판정을 받으며 납품이 중단됐다.

    아리셀이 미달판정을 받은 사유는 '시료 바꿔치기'였다. 2021년부터 전지를 군납해온 아리셀은 국방기술품질원이 미리 선정해 봉인해놓은 '샘플 시료전지'를 별도로 제작한 '수검용 전지'로 몰래 바꿔치기를 했다가 적발됐다.

    이런 문제로 납품이 중단되면서 올해 5월부터는 매일 70만원씩 지체상금이 부과됐다. 6월분을 납품해야 하는 상황이 오자 아리셀 측은 매일 5천개를 생산한다는 목표로 무리하게 제조공정을 가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아리셀 측은 인력공급업체인 메이셀로부터 근로자 53명을 신규 공급받았다. 하지만 충분한 교육 없이 주요 제조공정에 투입하다 보니 불량품이 늘어났다. 3~4월 평균 2.2%였던 불량률은 신규 인력이 투입된 이후인 5월에는 3.3%, 6월에는 6.5%로 상승했다.

    공정 과정에서 배터리 케이스가 찌그러지거나 실구멍이 생기는 등 새로운 유형의 불량품도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지난 6월 24일 완제품 판정을 앞두고 있던 리튬 전지에서 화재가 발생하면서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경기남부경찰청 화성 화재 수사본부 및 고용노동부 경기지청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및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박순관 대표와 박중언 운영총괄본부장 및 안전보건관리 담당자, 인력공급업체 메이셀 경영자 등 4명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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