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더불어민주당 등 야5당이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던 '제3자(대법원장) 추천' 방식의 채 상병 특검법을 선제적으로 공동 발의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에 한 대표는 "입장 변화는 없다"라며 자체적으로 특검법을 추진할 것이며, 이를 위해 당내 의견을 수렴 중이란 입장을 재차 밝혔다. 하지만 한 대표가 시간을 끌면서 동력 자체가 약해지고 있고, 당내에서는 특검 회의론을 넘어 '불가론'까지 언급되고 있다.
野, '제3자 추천' 특검법 발의로 한동훈 압박↑
3일 민주당·조국혁신당·진보당·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은 국회 의안과에 '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채 상병 특검법)을 제출했다. 이들은 "야5당에 무소속 김종민 의원까지 함께 발의한 것은 반드시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결단과 양보의 개념"이라고 밝혔다.
이번 특검법은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제안했던 '대법원장 추천' 방식을 택했다. 대법원장이 특검 후보 4명을 추천하면, 야당이 2명을 선택하는 식이다. 만약 대법원장이 추천한 후보가 모두 부적절하다고 판단될 경우 야당이 다시 대법원장에 추천을 요구할 수 있는 '재추천 요구권'도 담겼다. 한 대표가 제시한 방안을 넣어 대여 압박 수위를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한 대표가 요구하고 이재명 대표도 수용하겠다고 했던 '제보 공작 의혹'은 수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민주당 김용민 원내수석부대표는 관련 질문에 "관련 사건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사건도 수사할 수 있는 내용이 이미 포함돼 있다"며 "제보 공작을 포함시키려면 국민의힘 측에서 발의하면 된다"고 답했다.
야권은 4일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지난달 8일 3번째로 제출했던 특검법을 이번 특검법과 병합 심리해 처리할 계획이다. 김 원내수석부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도 참여해 한 대표가 제안했던 내용을 논의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합의점을 찾아낼 수 있길 바란다"며 "절충안 또는 위원회 대안들이 나올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원내대표단은 즉각 반발했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앞서 두 번이나 채 상병 특검법안을 발의한 것은 정쟁용으로 대통령 탄핵을 '빌드업'하기 위한 음모"라며 "수사 기관 결과 발표 뒤에 국민들 의혹이 해소되지 않는다고 판단될 때 특검을 검토한다는 것이 당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조지연 원내대변인 또한 논평을 통해 "이 사건은 이미 공수처에서 수사 중에 있다. 국민의힘은 기존 수사 결과가 미진하거나 의혹이 해소되지 않았을 경우 특검을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라며 "민주당이 또 다시 특검법을 발의하는 것은 여당을 향한 정치공세이자 탄핵 명분을 쌓기 위한 정쟁용"이라고 비판했다.
韓 "입장 변화 없다"…'의견 수렴' 구실로 시간 끌수록 동력↓
연합뉴스반면 한 대표는 이날 경북 구미에서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의 특검법 발의에 대해 "내용을 봤는데 별 내용 없더라"라며 "제 입장은 바뀐 게 없다"고 말했다. 사실상 해당 안은 수용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한 대표의 기존 입장은 자체 특검법 발의를 위해 내부 의견 수렴을 진행 중이고, 민주당이 제시한 일정에 맞출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한 대표의 측근인 장동혁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MBC 라디오에서 "한 대표는 (특검법을) 발의한다는 것"이라며 "다만 당내 논의와 의원 설득 과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신지호 전략기획부총장 또한 "의원들 10명을 모아 발의하는 건 의미가 없지 않나"라며 "당 대표가 이야기 한 것이니 당연히 당론 발의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두고 한 대표가 '내부 논의가 우선'이라는 논리로 민주당의 압박을 피하면서 최대한 시간을 끌고 있다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공수처 수사 결과가 미진할 경우 자연스레 특검 발의의 명분이 생기는 데다가, 시간이 더 흘러 당내 장악력도 커질 수 있다는 기대가 깔려 있다.
반면 시간을 끄는 사이 한 대표의 동력 자체가 약화되고 있다는 반론도 동시에 제기된다. 공수처 수사 결과가 연내 나오기 어려운 만큼 내년 상황을 봐야 하는데, 한 대표의 리더십이 내년까지 이어지기 어렵다는 비관론이 깔려 있다.
與 내부 '특검 회의론' 넘어 '불가론'도
당 3역 중 하나이자 한 대표가 직접 임명한 지도부의 입에서 마저 '특검 회의론'이 공공연하게 언급되는 실정이다. 김상훈 정책위의장은 이날 YTN 라디오에 출연해 "제3자 특검법 이야기를 하더라도 입법화하는 과정은 별개"라며 "특검법이 우리 당내 동의를 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특검 불가론'까지 부상하고 있다. 김 의장은 "채상병 같은 순직자가 앞으로 발생하지 않게 하는 대책 마련에 더 치중할 필요가 있다"며 "그게 반드시 특검이어야 되는가는 우리가 반문해 볼 필요가 있다"고 운을 띄웠다.
실제 여당 의원들 사이에선 상설 특검 성격의 공수처를 만들어 놓고 별도로 특검을 더 실시하는 것은 옥상옥이라는 비판이 줄기차게 나오고 있다. 한 여당 초선 의원은 "특검 자체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재선 의원은 "만약 특검을 하겠다면 공수처 폐지도 묶어서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야권이 총 192석인 점을 감안하면 여당에서 8표만 이탈해도 대통령의 거부권을 무력화 할 수 있다. 공개 찬성표를 던졌던 안철수 의원을 제외하면 7명만 추가로 찬성하면 통과된다. 더군다나 거부권 행사로 인한 재표결은 '무기명'으로 이뤄진다. 직전 특검법 재투표의 경우 찬성 194표, 반대 104표로 부결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