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텔레그램 등 외국계 SNS(사회관계망서비스)가 '딥페이크'와 같은 디지털 성범죄의 온상이 됐지만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는 탓에 가해자 추적이 어렵다는 점이 수사의 난점으로 꼽히고 있다.
전문가들은 딥페이크 범죄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만큼 이들 SNS에 대한 규제 및 처벌이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과 함께 입법적 보완도 서둘러야 한다고 말한다.
'해외 서버'로 수사 난항…"SNS 책임 강화해야"
최근 텔레그램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에 딥페이크 영상물을 삭제했다고 밝히며 사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방심위는 지난 3일 최근 딥페이크 성범죄 영상물 사태와 관련해 "텔레그램 측이 사과의 뜻을 밝히고 방심위와 신뢰관계 구축을 희망해왔다"며 "지난 1일 긴급 삭제 요청한 디지털 성범죄 영상물(25건)을 텔레그램이 모두 삭제했다"고 밝혔다. 텔레그램이 방심위 요청에 답신한 건 처음 있는 일이다.
그간 수사 협조 요청에 소극적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 행보지만 텔레그램 내에서 디지털 성범죄가 끊이지 않아 국민적 우려가 극심한 만큼 텔레그램 등 SNS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텔레그램은 지난 2020년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N번방 사건'을 비롯해 '딥페이크 성범죄'까지 디지털 성범죄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정부와 수사기관이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밝힌 후인 지난달 29일까지도 텔레그램에서 서울, 경기, 부산, 대전 등 지역별로 나눠진 이른바 '지인능욕방'이 계속해 운영된 점이 CBS노컷뉴스 취재결과 확인되기도 했다. 지인능욕이란 지인 여성의 얼굴 사진을 포함해 실명과 전화번호, SNS 계정 등 인적사항을 올리면 딥페이크 프로그램을 통해 성 착취물을 만드는 행위를 말한다.
지난 4일에는 텔레그램 상에 '○○ 능욕2' 라는 이름의 새로운 지인능욕방이 생성됐다. 568명의 이용자가 모인 해당 채널 운영자는 "이름/나이/지역/SNS 주소/사진들을 주는 게 필수"라고 홍보했다.
전문가들은 텔레그램 등 외국계 SNS 측의 적극적 협조가 없으면 수사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한 디지털포렌식 업체 관계자는 "텔레그램에서 운영하는 대화 채널은 검색으로는 발견되기 힘들다"며 "음지에서 운영되는 '다크웹'에 기반을 두는 경우가 많아서 애초에 찾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크웹은 특정 프로그램이나 브라우저를 사용해야만 접속할 수 있는 웹으로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서버, 접속자 등을 찾을 수 없다.
이어서 "이미 딥페이크 성 착취물이 유포됐으나 그 채널이 삭제된 경우는 텔레그램 사이트에서 서버 포렌식을 해줘야 증거 채집이 가능한 상황"이라고 짚었다.
딥페이크 성범죄 수사 경험이 있는 한 경찰은 "디지털 성범죄는 퍼지는 속도도 빠르지만 올렸던 게시물과 계정을 삭제하는 속도도 빨라 일당들이 수사기관이 쫓고 있다는 냄새를 맡으면 자취를 감추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빠르게 수사가 이뤄지려면 텔레그램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와 수사당국이 엄정 대응 방침을 밝힌 후에도 딥페이크 성범죄가 계속 확산되고 있는 만큼 텔레그램에 대한 더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단 지적도 나온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곽대경 교수는 "가해자들 사이에서 텔레그램을 이용하면 신원이 밝혀지지 않는다는 공식이 만연할 정도로 텔레그램이 디지털 성범죄가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이 되고 있다"며 "독일은 2017년 '네트워크 집행법'을 제정해 텔레그램과 같은 플랫폼 사업자의 감시 책임을 키웠는데 우리나라도 플랫폼 사업자들의 책임을 강화할 수 있는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반포 안 하면 처벌 어렵다…"경찰 위장수사 허용 범위 넓혀야"
현행법에 명시된 처벌 규정을 다듬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의2에 따르면 딥페이크 성 착취물을 편집, 합성, 가공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영리 목적으로 반포한 경우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진다.
하지만 범죄가 성립되려면 '반포 등을 할 목적'이라는 단서가 붙는다. 또한 딥페이크 성 착취물을 내려받거나 시청하는 행위 역시 처벌할 수 있는 명확한 근거 조항이 없는 상황이다.
디지털 성범죄 수사 경험이 있는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유포가 목적이 아니라면 (딥페이크 성 착취물을) 제작해서 가지고 있기만 해서는 처벌할 수가 없다"며 "실제로 디지털 성범죄 피의자 중에 '유포할 생각은 없었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이 신분을 감춘 채 사이버 공간에 접근해 성범죄를 수사하는 위장수사(신분비공개수사)의 허용 범위를 성인 대상 범죄로도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현행법상 위장수사는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 수사에만 허용돼 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장다혜 연구위원은 "위장수사 허용 범위 확대에 대한 부분은 해외에서도 추진되고 있다"며 "최근 형사 정책 관련 연구에서도 지속적으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만큼 위장수사 허용 범위가 성인으로 확대돼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