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이미지 제공아동복지법 제17조(금지행위)
|
누구든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 5.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행위 |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 행위'를 금지하는 아동복지법이 정서적 학대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히 규정하고 있지 않아 논란이다. 모호한 법 조항 탓에, 정당한 훈육 및 교육을 했음에도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고발을 당해 법정에 서는 교사들이 있지만,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기도 한다.
정작 무죄를 선고받아도, 다시 교직에 복귀하거나 소송 과정에서 겪었던 상처를 쉽게 회복하기는 요원하다. 일각에서 정서적 아동 학대' 관련 법 조항을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서적 학대'로 법정 섰지만…결국 '무죄' 받은 교사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2-3부(조은아·곽정한·강희석 부장판사)는 지난달 21일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20대 유치원 교사 A씨에게 1심에 이어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코로나19 유행이 한창이던 2022년 6월부터 7월까지 자신이 담임을 맡았던 4세 아동 26명 중 B군을 학대한 혐의를 받았다.
B군이 점심시간에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다른 아동들에게 장난을 치거나 식사를 방해한다는 이유로, 19회에 걸쳐 B군의 책상을 분리해 B군이 홀로 밥을 먹게 하는 등 지속적인 차별행위를 하는 등 정서적 학대를 했다는 혐의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B군의 활발한 움직임을 고려하면 A씨의 위와 같은 조치가 상식을 벗어난 지나친 조치였다고 볼만한 특별한 사정을 찾을 수 없다"고 봤다.
그러면서 "A씨가 취한 방법이 B군의 식사 지도에 있어서 최선의 방법은 아니었을 수도 있으나, 아동에 대한 지도는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되는 지나칠 정도의 방임 또는 지나칠 정도의 폭력이나 가혹행위에 이르지 않는 범위 내에서 보육자의 판단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정서적 아동 학대가 아니라고 봤다.
스마트이미지 제공이후 검사가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 또한 "A씨가 약 26명의 원아를 담당하는 교사로서 코로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마스크 착용이 어려운 식사 시간대에 위와 같은 분리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판단한 것에 특별한 문제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고 항소를 기각했다.
그러면서 "A씨에게 B군에 대한 지도 및 훈육의 정도를 벗어나 어떠한 정신적 폭력이나 가혹행위를 하고자 할 의도가 있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며 "A씨의 이러한 행위가 B군에 대한 정신적 폭력이나 가혹행위로서 B군의 정신건강 또는 복지를 해치거나 정신건강의 정상적인 발달을 저해할 정도에 이른다고 보기도 어렵다"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결국 양측이 상고하지 않아 A씨의 무죄 판결은 확정됐다. 하지만 수사단계에서 직위해제된 A씨가 복귀를 할 수 있을지도, 2년여 간의 소송 과정에서 겪은 상처가 아물지도 미지수인 상황이다.
'정서적 학대' 혐의로 기소됐다가 무죄를 선고받은 교사의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울산지법 형사항소2부(김종혁 부장판사)도 수업 시간에 떠드는 초등학생 제자를 교실 앞으로 불러내 야단을 치는 등 정서적 학대 혐의로 기소된 교사 C씨에게 1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교사의 의무는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것에 한정되지 않고, 적정한 지도와 훈계를 하는 것을 포함한다"며 "학생이 감정적으로 상처를 받게 될 수 있으나, 이를 통해 교육제도가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전문가들 "'정서적 아동 학대' 조항 구체화할 필요 있어"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서적 학대' 기준의 모호성에 대한 논란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앞서 웹툰작가 주호민씨의 발달장애 자녀에 대한 정서적 아동학대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특수교사 D씨는 지난 5월 수원지법 항소심 재판부에 아동복지법 17조 '정서적 학대'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서를 제출했다.
지난 2월 웹툰 작가 주호민씨의 자녀를 정서적 학대한 혐의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특수교사 D씨와 특수교사노조 관계자 등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D씨 측은 정서적 아동학대의 규정이 모호하기 때문에 죄에 따른 적절한 형벌을 적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아직 결론이 나지는 않았지만, D씨의 주장처럼 '정서적 학대' 조항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여론도 우세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앞선 사례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정서적 학대' 조항을 구체적으로 손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A씨의 변호인 또한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학부모가 불만이 있으면 정서적 학대로 주장할 수 있게끔 '정서적 학대' 조항이 너무 불명확하게, 추상적으로 돼 있다"며 "좀 더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정서적 학대의 전형적인 행위의 예시들을 법에 아예 네, 다섯 가지 명시해야 한다"며 "그리고 '다만 그것이 교육상 불가피하다고 판단되는 경우는 제외한다'는 제외 사유도 명시를 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법무부 여성아동인권과장을 지낸 김영주 변호사도 "학대의 개념이 점점 더 넓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체벌이 금지된 것도 사실 얼마 되지 않는데, 거기에 더해 정서적 학대까지도 학대의 범주에 들어간 지가 얼마 되지 않으니까 이제 사회가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라고 정서적 학대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법률사무소 율다함 신수경 변호사 또한 "아주 구체적으로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최소한 이런저런 것들이 정서적 학대 행위라는 예시를 넣어서 법안을 구체화 시켜보자는 논의는 일각에서 있다"고 밝혔다.
다만 신 변호사는 "정서적 학대 행위가 구체화될 경우, 피해자 입장에서는 신고의 문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법률의 명확성과 죄형법정주의를 우선하는 경우에는 피해자 보호가 취약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법안의 특성을 조금 고려를 하긴 해야 한다"고 우려를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