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물고기 제공 톨스토이는 금수저로 태어났고 글재주와 건강도 타고나서 남이 부러워하는 인생을 살았다. 그는 또한 평생 인생과 인간에 대해 고민하고 사회적 불평등과 약자에 대한 연민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가정에서는 실패했다. 그는 복을 많이 받은 사람이었으나 행복한 인간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책 '톨스토이의 가출'은 소설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의 작가이자 당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문학가, 사상가로 꼽히는 러시아의 레프 톨스토이(1828~1910)이의 삶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그의 인생 여정에서 화려하지만 않았던 그림자를 드러낸다.
이달 초 세상에 나온 '톨스토이의 가족'(이정식 지음 | 황금물고기)의 소개글 중 일부분이다.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여행과 인문을 융합한 교양서적의 일종이지만 저자의 이력과 그의 현재 상황이 수많은 대중서의 하나로 치부하고 지나치려는 이들의 발길을 잡기에 충분하다.
저자 이정식은 1979년 CBS에 입사해 워싱턴 특파원과 정치부장, 해설위원장, 한국방송협회 부회장 등을 거쳐 최초의 직원 출신 사장으로 6년을 재직했다. 기자로서 출발은 CBS였지만 전두환 군부 독재 시절 악명 높은 언론통폐합 일환으로 보도기능이 박탈된 CBS를 떠나 KBS로 적을 옮겨야 했다.
하지만 1987년 6월 민주화 운동과 궤를 같이하는 CBS 보도기능 정상화 이후 따뜻했던 KBS를 떠나 CBS에 원대복귀해 보도국을 개척했다. CBS 퇴임 이후에도 뉴스1 사장, 서울문화사 부회장을 지내며 언론계 경력을 이어갔다.
그는 언론인이자 작가다. 저자는 그동안 시베리아와 러시아 등 북방을 꾸준히 여행하며 '시베리아 문학기행', '러시아 문학기행1 도스토옙스키 두 번 죽다', '러시아 문학기행2 도스토옙스키, 죽음의 집에서 살아나다' 등 다수의 여행기를 썼다.
그는 음악적 재능을 완전히 피우지 못하고 타계한 채동선 등을 조명한 '가곡의 탄생'의 저자이자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가곡무대에도 섰던 음악애호가이기도 하다.
청장년 시절과 60대 중년기(?)을 열정적으로 살아왔던 작가 이정식은 4년 이상 암투병 중이다. 더 이상 항암 치료를 계속할 방법이 없다는 의사의 최후 통보도 받은 상태다. '톨스토이의 가출'은 생사를 넘나드는 말기 암 투병 중에 진통제로 고통을 완화시키며 한줄 한줄 써내려간 투병기이기도 하다.
저자는 톨스토이의 흔적들을 보기 위해 러시아를 여러 차례 방문했다. 톨스토이가 태어난 야스나야 폴랴나 영지는 물론, 그가 숨을 거둔 아스타포보 역장 관사도 찾아갔다. 관사는 톨스토이 박물관이 되어 있었고, 지역의 이름도 아스타포보에서 레프 톨스토이로 바뀌었다.
톨스토이는 부인과의 오랜 불화 끝에 82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몰래 가출을 감행한다. 그리고 기차 여행에서 얻은 폐렴으로 인해 가출 열흘 만에 모스크바 남쪽의 조그만 아스타포보 간이역에서 생을 마쳤다. 부인 소피야가 아스타포보로 남편을 찾아갔으나 환자가 흥분할 것을 우려한 측근과 막내딸이 접근을 막았다. 48년을 함께 산 부부는 끝내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한 채 영원한 이별을 한 셈이다.
톨스토이는 행복의 조건으로 건강, 재력, 양심에 거리낌이 없을 것 등을 이야기하지만, 저자는 톨스토이의 사례를 통해 부부간의 사랑이 다른 모든 행복의 조건들을 초월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 책 속에 함께 들어있는 파스테르나크, 루소, 위고, 솔제니친은 모두 톨스토이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거나 관련이 있는 작가들이다. 톨스토이의 작품에 드러난 루소의 사상, 그리고 루소의 모순에 가득찬 생애에 대해서도 현대의 시각으로 흥미롭게 조명한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그동안 정리해 둔 원고들을 이 한 권에 다 싣지는 못했다. 시간과 건강이 허락한다면 두 번째 문학 에세이도 낼 수 있기를 바란다"며 언제나 첫번째 독자였던 부인에게 감사를 표했지만 후기에서는 "이 책이 마지막이 아니기를 희망하지만 그럴 수도 있기 때문에…"라고 항암기를 간략히 덧붙였다. 그의 희망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