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을 풍자하는 연극을 준비하다가 정부로부터 내용 수정을 요구받은 연출가에게 국가가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50단독 최미영 판사는 최근 연출가 A씨가 국가와 국립극단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고들이 원고에게 2500만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재판부는 2013년 9월 문화체육관광부가 청와대에 보고한 '국립극단 기획공연 관련 현안 보고'라는 문서 내용이 주된 근거로 보고, 정부가 예술감독을 통해 A씨에게 붉은 줄을 그은 대본을 전달한 것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 문서에 따르면 정부는 이미 다른 정치풍자극에 대해 예술감독을 통해 연출가에게 결말을 수정하게 하고 정치적 풍자를 완화하도록 지도했다"며 "다른 연극에 대해서도 유사한 조처를 할 의사와 능력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연극 대본 검열과 수정 요구는 헌법이 보장하는 예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건전한 비판을 담은 창작활동을 직접 제약한다"며 "법치주의 국가의 예술에 대한 중립성에 관한 문화예술계의 신뢰가 훼손됐다"고 지적했다.
앞서 윤 전 대변인은 2013년 5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수행하다가 여성 인턴 성추행 의혹으로 경질됐다.
A씨는 그해 9월 이 사건을 풍자하는 연극의 국립극단 공연을 앞두고 극단 사무국장에게서 봉투를 건네받았다. 극단 예술감독이 '이게 뭔지도 모르고 보고 싶지도 않지만 A씨에게 전달하라'는 말과 함께 봉투를 줬다는 것이 사무국장의 설명이었다.
봉투 안에는 곳곳에 빨간 줄이 그어진 A씨의 연극 대본이 있었는데, 특정 대사를 삭제하거나 수정하라는 취지였다.
A씨는 사건이 발생한 지 9년 만인 2022년 10월 "당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대본을 사전에 검열한 후 예술감독을 통해 내용을 수정하라고 지시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며 소송을 냈고, 법원은 결국 A씨 손을 들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