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수 경남지사와 박형준 부산시장. 경남도청 제공 부산·경남 행정통합이 이번에는 주민의 마음을 얻어 순항할 수 있을까? 내년 상반기에 있을 주민 찬반 여론조사가 통합의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부산·경남 행정통합은 민선 7기 때 나온, 이른바 부울경 메가시티라고 불리는 '부울경 특별연합'의 대안으로 추진됐다.
부울경 특별연합은 2022년 4월 문재인 정부로부터 승인을 받은, 초광역 협력 선도모델의 '국내 1호 특별지자체'라는 배지를 달 뻔했지만, 무산됐다.
국민의힘이 압승한 2022년 6월 지방선거 이후 민선 8기 시작과 함께 부울경 단체장들이 '실익이 없는 옥상옥'이라며 2023년 1월 출범 예정이었던 부울경 특별연합을 파기하고, 그 흔적을 모두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이후 특별연합 파기를 주도했던 박완수 경남지사는 부울경 행정통합으로 선회했지만, 울산의 불참으로 부산과의 통합을 먼저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지난해 5~6월 두 시도 주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반대 의견(45.6%)이 찬성(35.6%)보다 높은 데다 '행정통합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의견이 69.4%에 달했기 때문이다. 박 지사가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조금 당황스러웠다"고 말할 정도였다.
제2의 수도권으로 부상하려던 부울경 특별연합을 건너뛰고 행정통합으로 직행하려던 박 지사의 계획에 제동이 걸린 셈이다.
특별연합보다 나은 '실익'을 찾아 원래 한뿌리인 부산·경남을 2026년까지 '한 배'에 태우려던 박 지사의 꿈이 통합의 주체인 주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서 당시 성급하게, 무리하게 추진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당시 박 지사는 "도민의 여론이 긍정적이면 그때부터 통합 구조나 특별법, 위상 등 통합에 대한 과정을 도민에게 알리려고 생각했는데 그게 거꾸로 됐고, 잘못됐다"고 실패를 시인했다.
박완수 경남지사. 경남도청 제공 그런 경남도와 부산시가 지지부진하던 행정통합 논의의 불을 다시 지폈다. 대한민국 '경제수도'를 목표로, 이번에는 통합 지방정부의 구체적인 모델까지 제시했고, 실패한 사례를 토대로 주민이 우선인 '상향식 통합'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불을 제대로 지피겠다는 각오다.
박완수 경남지사와 박형준 부산시장이 8일 발표한 통합 구상안은 '계층제' 방식의 두 가지다.
경남도와 부산시를 폐지하고 새로운 통합 지방정부를 만드는 '2계층제'와 경남도와 부산시를 그대로 두고 최상위 지방정부인 '준주'를 신설하는 '3계층제'다. 준주를 신설한다면 집행기관과 의회는 별도로 구성한다.
두 개의 안 모두 기초자치단체와 사무, 그리고 광역의원 선거구 획정을 현행 방식대로 유지한다.
박 지사와 박 시장이 지난 6월 행정통합안을 마련한 뒤 내년 상반기에 여론조사를 거쳐 주민 의사를 재확인하겠다는 공동선언문의 기조는 그대로 가져간다.
부산·경남 행정 통합을 추진할 핵심 기구인 공론화위원회가 논의와 여론 수렴 등을 거쳐 최적의 통합안을 제시하겠지만, 정부로부터 독립된 완전한 자치권, '분권형 광역통합 지방정부'가 기본 토대다.
통합 구상안에는 그 권한과 위상이 구체적으로 담겼다.
자치행정·입법권, 자치재정·조세권, 경제·산업 육성권, 국토이용·관리권, 교육·치안·복지권 등 5대 분야에 20대 주요 특례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법률 세부 사항을 시행령·시행규칙과 같은 행정입법이 아닌 조례로 규정토록 전면 위임하고, 조직‧정원 운용의 자율성 확립, 특별지방행정기관 사무와 재정의 완전한 이관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국세 이양을 위한 지방세 신설과 지방소비세와 소득세 조정, 통합에 따른 재정 인센티브로 광역통합교부금 신설 필요성도 언급했고, 지역 산업 발전과 개발에 필요한 권한도 제시했다.
각종 세제 혜택과 규제 특례 확보를 위해 투자진흥지구, 경제자유구역과 같은 각종 경제특구 지정 권한 이양, 지역 개발에 걸림돌이 되는 개발제한구역 해제 권한과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승인권 이양 등도 담겼다.
박 지사는 최근 강원도에서 열린 '제8회 중앙지방협력회의'에서 행정통합을 염두에 둔 지방자치단체의 자치 입법 자율성 확대를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그는 "법률 세부사항을 시행령이나 시행규칙 같은 행정 입법으로 규정하고 있어 조례 제정권의 제약이 많은 게 사실"이라며 "대통령령으로 세부사항을 규정하게 된 부분들을 조례로 제정토록 전면 위임해 실질적인 자치입법권 확립을 도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경남 행정통합 공론화위원회 출범. 경남도청 제공 부산·경남 지역 전문가 30명으로 구성된 공론화위원회는 통합 구상안을 보완해 최종안을 도출하고 시도민의 의견을 모은다.
시도민의 의견이 중요한 만큼 통합을 언제까지 하겠다는 시점은 못을 박지 않았다. 인근 대구·경북은 2026년 7월 1일 출범을 목표로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내년 상반기 주민의 마음을 묻는 여론조사가 통합의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시도민의 통합 찬성 의견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면 통합 특별법 제정 등 통합 출범 시점이 구체화되고 속도가 붙게 된다.
그러나 찬반 여론이 비슷하거나 반대가 많다면 또다시 통합 동력은 잃게 되고, 행정력 낭비 등 논란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되더라도 완전한 통합으로 이어지기까지 험로가 예상된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은 필수다. 다른 나라 연방제의 주 정부와 같은 권한을 정부로부터 과감하게 이양받아야 하고, 그 통합의 추진 주체에 정부가 포함돼 통합 실효성을 확보해야 한다. 통합의 성패는 주민 뜻 다음으로 특별법을 통한 실질적인 권한 이양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남도청 제공
지난 2010년 마산·창원·진해의 '통합 창원시' 사례에서 보듯 주민 참여 없는 일방적 '하향식' 추진이 지금까지도 그 후유증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볼 때 주민투표, 의회 승인 등 주민 의견 수렴 절차를 제대로 거쳐야 한다. 정치인이 주도하는 일방적인 정치 논리는 배제해야 한다.
명칭과 청사 위치, 의회 구성뿐만 아니라 정치권은 물론 공무원 등 경남과 부산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한 통합 절차도 풀어야 할 숙제다.
그대로 유지한다는 시군구 간 인구·위상 차이의 역할·권한 등도 재정립해야 한다. 통합 논의 과정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법적·물리적 통합을 넘어선 '화학적 통합'도 중요하다.
박 지사는 "단순한 통합은 의미가 없으며, 통합의 청사진과 내용을 정확하게 도민과 시민에게 제시하고 시도민이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경남과 부산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이어 "경남과 부산을 완전한 자치권을 가진 우리나라 경제수도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시도민의 의사를 반영한 상향식 통합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