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에 다시 당선됐다. 대통령 선거와 동시에 치러진 하원과 상원선거에서도 공화당은 모두 과반 의석을 차지할 것이 유력하다. 다음 의회 선거가 있기 전까지 최소한 2년 동안은 확실한 트럼프의 시대다.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민주당의 카멀라 해리스 후보를 큰 차이로 꺾고 47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임기는 미국 수정헌법 20조에 따라 취임일인 1월 20일 정오부터 시작된다. 연합뉴스
각국 지도자들은 서둘러 트럼프 당선인에게 전화를 걸어 축하 인사를 했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스티머 영국 총리, 윤석열 대통령, 이시바 일본 총리 등등. 우리가 알고 있는 주요 국가의 원수들 대부분이 '당선인' 트럼프와의 첫 통화를 위해 줄을 서야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현지 시각 지난 7일 NBC 방송과의 첫 인터뷰에서 각국 지도자 약 70명과 통화를 했다고 말했다. 승리가 확실해지고 나서 하루 동안 대략 1시간에 두세 명씩 각국 정상들로부터 축하 전화를 받은 셈이다. 이스라엘은 네타냐후 총리가 트럼프 당선인에게 가장 먼저 전화를 건 사람 중 한 명이라고 홍보하기도 했다. 네타냐후는 아마도 트럼프의 재선을 가장 진심으로 환영한 지도자일 것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9월 25일 미국 뉴욕에서 유엔 총회 연설을 한 데 이어, 27일에는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만났다.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는 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면서 "푸틴에 압력을 가해달라고"고 촉구했다. 트럼프 당시 후보는 젤렌스키에게 "지옥을 겪었고, 끔찍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홈페이지 캡처하지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쳤던 트럼프의 복귀를 걱정어린 눈빛으로 지켜보는 나라가 더 많을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은 본인과 조국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서게 됐다. 트럼프는 선거 과정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축소하겠다고 말해왔다. 취임 즉시 러-우 전쟁을 끝내겠다는 공언까지 했다. 미국이 지원을 끊으면 전쟁은 끝난다.
문제는 휴전이 곧 평화는 아니라는 점이다. 러시아는 현재 우크라이나의 영토 20%를 점령하고 있다. 이대로 종전될 경우 이 땅은 푸틴에게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푸틴의 승리를 눈앞에 왔다. 젤렌스키는 이번에 푸틴에게 승리를 안겨주면 또다시 침공할 것이라며 걱정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인의 77%도 점령당한 땅을 러시아에 넘겨주는 방식의 협상에는 반대하고 있다.(키이우국제사회학연구소 KIIS, 2024년 8월1일 발표) 트럼프 당선인과의 첫 통화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의 강력하고 흔들리지 않는 리더십은 세계와 정의로운 평화에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무기를 계속 지원해달라는 절박한 호소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은 과거에 '나토(NATO)를 탈퇴하겠다'는 발언까지 한 적이 있다. 미국이 빠지면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의 선진국들은 스스로 무기를 생산해 러시아에 맞서야 한다. 마이클 프로먼 미국 외교협회(CFR) 회장은 트럼프의 당선 확정 이후 "유럽의 동료들은 완전히 패닉상태에 빠졌다 (I have found that colleagues in Europe are in full panic)"고 말했다.
당황한 것은 유럽뿐만이 아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트럼프 당선인과의 첫 통화를 단 5분밖에 하지 못해서 구설수에 올랐다. 통역 시간을 빼고 나면 간단한 인사 몇 마디만 나눌 수 있는 시간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과는 12분을 통화했으니 일본 언론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기민한 대미 외교로 유명한 일본도 트럼프의 재등장에 바짝 신경을 쓰고 있다. 미국 공화당의 2024년 정강 정책에는 동맹을 강화하겠다는 목표가 들어가 있다. 하지만 트럼프의 동맹 강화는 지원보다는 분담을 통한 방식이다.
지난 2018년 12월 1일,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만나 정상회담과 만찬을 했다. 당시 중국 외교부는 회담이 성공적이라는 데 양국 정상이 동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 미중 양국은 무역 갈등에 이어 전략 경쟁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번 대선 과정에서 모든 중국산 수입품에 60%의 관세를 물릴 것이라고 공언했다.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캡처시진핑 주석은 트럼프 당선인과의 축하 전화에서 "미국과 중국이 협력을 하면 서로 이익이고 대결을 하면 서로 손해"라고 말했다. 듣기에 따라 협조 요청일 수도 있고 낮은 수준의 충고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시 주석은 "상호 존중의 원칙을 견지하고 차이점을 적절히 관리하자"는 말도 했다. 축하 인사보다는 걱정과 불안의 표현으로 들린다.
선거 운동 과정에서 트럼프 당선인은 모든 중국산 제품에 대해 60%의 관세를 물리겠다고 공언했다. 전자, 철강, 제약 등 핵심 분야에서 중국에 대한 의존을 완전히 없앨 것이라고도 밝혔다. 이대로 실행이 된다면 중국 경제의 회복은 다시 몇 년이 더 늦춰질 수도 있다.
공화당의 정강 정책에는 미군을 세계 최강의 군대로 만들겠다는 약속도 들어있다. 강해진 중국군을 제압하기 위해 미국이 군비 지출을 더 늘릴 것이라는 공약이다. 그렇다고 시진핑 주석이 이른바 '중국몽' 실현이라는 패권 야심을 스스로 접을 것으로 예상하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바이든 행정부 때와 비교해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은 이른바 '가드레일' 없이 더 치열해질 가능성이 있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이 고조되면 한국의 안보와 평화의 길은 더 좁아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트럼프 1기 때와 달리 지금은 러시아가 북한과 동맹 관계를 맺고 있어 함수가 복잡해졌다. 북한으로부터 병력과 포탄을 지원받은 러시아는 이미 사사건건 북한을 편들고 있다.
만약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 후 김정은 위원장과 다시 만난다면 좋은 소식이 될 것이다. 강대강으로 맞서고 있는 남북한에도 대화의 돌파구를 찾을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반도 정세는 지난 2018년 첫 북미 정상회담 때와는 다르다.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사실상 완성했고 폐기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당시 평양을 오가며 미국과 북한의 정상회담을 적극 중재했던 한국 정부는 지금 북한과 적대적 대치를 하고 있다. 미국이 모든 중국산 제품에 60%의 관세를 물리면 한국의 대중 수출도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트럼프 2.0은 한국에도 격랑이다.
미국의 영향력 있는 싱크탱크인 외교협회(CFR, Council on Foreign Relations)의 마이클 프로먼(Michael Froman) 회장은 지난 8일 구독자들에게 보낸 뉴스레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당선이 동맹과 우방들을 요동치게 만들 것이 분명"하고, 특히 "서방의 관리들은 트럼프가 어떤 길을 갈지 숨을 죽이며 지켜보고 있다"고 진단했다. 연합뉴스트럼프의 당선은 미국인들의 선택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미국에만 그치지 않고 전세계에 큰 파장을 몰고오고 있다. 더구나 미국 유권자들의 주요 관심은 대외 정책이 아니라 국내 문제라는 점은 굉장한 아이러니다. 트럼프는 미국의 국내 경제와 국경 대책 등에서 해리스보다 높은 지지를 받았다. 우리는 지금 미국인들의 장바구니 물가와 이민자 문제가 남의 일이 아닌 세상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