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연합뉴스 갈라진 좌우, 첨예한 정치·사회적 갈등을 겪던 미국이 2036년 둘로 분리된다. 가장 진보하다는 미국식 민주주의를 꽃 피우고 자유와 민주, 인권을 앞세우며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나라, 가장 부강한 나라로 전성기를 구가해온 미국이 내부의 극단적 대립으로 무너져 내리며 두 나라로 갈라진 것이다.
아일랜드계 미국인 작가 더글라스 케네디의 신작 장편소설 '원더풀랜드'(원제 Flyover)의 줄거리다. 이 소설에 대한 해외 평단의 평가는 사뭇 진지하다. 영국 더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인들이 실제하는 사실에 상상력을 더한 미국 내전에 대한 이야기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평했고, 아이리쉬 타임스는 "조지 오웰의 '1984'를 현대적으로 재해석 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1984'는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이 1949년 쓴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근미래인 1984년 '빅브라더'라는 독재 권력이 지배하는 가상의 전체주의 독재국가 오세아니아에서 감시와 통제에 반대하는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가 겪는 사건을 다룬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원더풀랜드'에 등장하는 미국은 행정부의 독선과 미국 사회의 화합을 저해하는 인종 문제, 종교 갈등, 젠더 문제, 노사 갈등, 실업 문제, 이민 문제 등으로 대결 정치가 심화되고 서로는 파트너보다 적대 세력으로 규정하며 대결 양상으로 흐른다. 결국 국민에게 폭넓은 자유와 행복, 복지 증진을 추구하는 연방공화국은 미연방에서 탈퇴해 독자적인 국가 설립을 추진하고, 청교도적 신권정치를 표방하는 극단적 보수 우파 성향의 공화국연맹은 기독교 원리주의 국가로 회귀한다.
케네디의 소설은 2021년 1월 6일 트럼프 대선 패배에 불복해 지지자들이 조 바이든 당선인의 대통령 인준을 막기 위해 국회의사당을 무력으로 점거했다가 결국 진압된 사건에서 단순히 상상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계는 2기 트럼프 행정부의 더욱 강경한 신고립주의와 충동적 개입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지만 미국 내부에서는 극단적 사회 분열과 적대적 대결 구도가 격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밝은세상·서해문집 제공2021년 1월 6일 트럼프 대선 패배에 불복한 지지자들이 미국 국회의사당에 난입했다. 연합뉴스 미국매체 애틀랜틱 상근기자 팀 엘버타가 쓴 '나라 권력 영광'(비아토르)은 미국 정치에 부활한 복음주의와 극우 정치가 손잡고 권력을 장악해 가는 과정과 이로 인한 사회적 파장, 정치적 혼란을 심도 있게 분석한 책이다.
이미 미국 정치에서 복음주의가 신앙 그 이상의 강력한 정치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고 진단한 엘버타는 트럼프의 등장이 그 결과물로서 나타났다고 지적한다. 트럼프의 인종차별적 발언이나 성 추문에도 불구하고 백인 복음주의자들이 매파 정치 세력을 지지하고 트럼프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쓰이는 현상이 결과적으로 미국 민주주의의 위험성을 말해준다고 강조한다.
앨버타는 복음주의의 핵심 기관인 리버티대학교를 비롯해 미국 곳곳의 열린 교회 모임, 정치 유세, 연례 총회, 각종 콘퍼런스 등을 찾아다니며 그 안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거래와 종교적 타협의 실체를 고발한다. 복음주의 지도자들과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인사들을 인터뷰하며 이들의 의도와 정치적 전략을 들여다 본다.
복음주의와 극우 정치의 결합이 단순한 미국의 문제가 아닌, 글로벌한 현상으로 나타나며 정치적 신념과 종교적 가치는 어떻게 충돌하고 타협하는지를 보여준다.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에 대한 지지는 종교와 정치의 위험한 결합이 어떻게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키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다.
역사학자이자 미국 현대사 전문가인 토마 스네가로프와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 원장 로맹 위레는 공저 '병든 민주주의, 미국은 왜 위태로운가'(서해문집)에서 오늘의 미국과 흔들리는민주주의의 위기를 설명하며 입법·사법·행정 삼권 분립이라는 견제와 균형 시스템 기반 위에 연방정부와 주정부 권한의 엄격한 분리, 소수의 유권자가 정치 지도자를 뽑는 복잡한 선거제도 등 미국의 건국과 제도, 사회적 특성, 정치적 사건을 통해 오늘날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러온 원인을 분석한다.
'원더풀월드'의 미국 분리주의는 실제한다. 트럼프와 공화당에 대립각을 세우는 캘리포니아주, 민주당에 반기를 드는 텍사스주에서 대선 등 주요한 선거나 정치적 노선에서 극명한 차이를 드러낼 때마다 시민과 정치권에서 실제 분리·독립 주장이나 투표 운동이 벌어진 전례가 있다. 미국의 대표적 내전인 남북전쟁의 이면이나 정치적 상황과도 흡사하다.
비아토르·아마존 캡처연합뉴스'병든 민주주의, 미국은 왜 위태로운가'는 1787년 '건국의 아버지'들이 가졌던 구상부터 베트남 전쟁 시대, 9.11 테러, 2021년 1월 의사당 난입 사건 등 미국을 관통하는 미국식 민주주의의 기원과 발전, 위기의 복잡한 순간들을 톺아가며 미국의 민주주의가 왜 이토록 불안정한지, 이 것이 미치는 세계적 파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인포그래픽과 함께 상세하게 그려낸다.
풍부한 자료와 문헌을 인포그래픽을 더해 미국과 미국인들의 심성에 대한 심오한 이해를 돕는다. 공화국 초기 및 보편주의를 잘 보여주는 존 위스럽의 '언덕 위의 도시'(1630), 고립주의 노선을 대변하는 찰스 린드버그의 디모인 연설(1941), 인종 분리 정책에 제동을 건 역사적인 재판·판결문(1954), 2021년 1월 6일 의사당 난입 사건을 조장하는 도널드 트럼프의 워싱턴 연설문 등 정치사적 격변기의 미국을 이해할 수 있는 생생한 자료들을 수록했다.
작가 더글라스 케네디는 한 인터뷰에서 역사학자 릭 펄스타인(Rick Perlstein)의 저서 '닉슨랜드'(2008)를 읽어보기를 추천했다. 리처드 닉슨이 인종 폭동, 베트남 전쟁, 성 해방 운동 등 민감한 이슈를 백인 중산층 유권자들에게 어필해 1968년 대선에서 승리한 과정을 다룬 책이다.
1960년대와 70년대는 미국의 정치적 격동기였다. 1965년 캘리포니아주에서 흑인에 대한 경찰의 과잉 단속으로 촉발된 '와츠 폭동'으로 미국 사회는 혼란했고 극심하게 분열했다. 1964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배리 골드워터가 민주당 후보 린든 존슨에게 참패하며 보수주의자들이 정치권에서 본격적으로 밀려나기 시작한 때였다. 이 책은 1965년부터 1972년 사이의 주요 정치·사회적 사건을 조작해 오늘날 미국의 정치·사회적적 분열을 뿌리내리게 한 정치인 리차드 닉슨을 조명한다.
닉슨은 한 연설에서 "동부와 서부 해안 지역의 '말하지 않는 다수'(silent majority : 중산층)의 (백인) 엘리트들이 미국을 지배하는 진짜 민주주의자들"이라고 말했다. 효과는 컸다. 그는 대선가도를 달렸다.
케네디는 "그 발언의 이면에는 인종 차별, 동성애 혐오, 여성 혐오 등을 의미하는 서브텍스트(Subtext)가 숨어 있었다"며 "분열은 이미 50여 년 전에 시작됐다"고 꼬집었다.
한국 사회도 최근 정치와 종교의 결합으로 인한 정치·사회적 갈등 심화, 계급화와 차별, 극우 정치 역시 표면화 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사회적 분열과 극단적 대결을 도구화는 오늘날의 미국 현상이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