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신예은. 엔피오엔터테인먼트 제공tvN 토일드라마 '정년이'의 라이벌이자 정교하게 노력하는 국극 인재 허영서는 어쩌면 배우 신예은을 닮았다. 글로벌 흥행한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의 학폭 가해자 연진의 아역으로 등장해 제대로 눈도장을 찍고, 어느덧 주연급 배우로 성장해 김태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모두 좋은 운 때를 타고 이뤄진 결과물은 아니다. 그 속에는 치열하게 노력하는 신예은의 '피, 땀, 눈물'이 있었다. 언제나 간절한 허영서에게 많은 이들이 공감한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대본부터 저는 영서가 제일 좋았어요. 노력으로 만든 실력이란 점에서요. 제가 확신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있었지만 시청자 분들이 확신을 줘서 너무 감사했어요. 세상에 있는 허영서는 매번 비교를 당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자존감이 너무 낮아서 내 재능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아무리 노력해도 목표치가 보이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다. 또 내가 이 직업을 사랑하는지 모르는 사람일 수도 있다. 영서가 다 느껴봤을 생각들인데 세상 사람들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신예은은 '정년이'를 철없어도 자기 직업을 너무 사랑하고 원하는 청년들의 성장담이라고 봤다. 순간적으로 판단력이 흐려지는 시행착오를 모두 포함해 꿈을 이뤄나가는 과정 그 자체를 그리고 있다. 타고난 소리 천재로 '국극'에 미쳐 있는 정년이 역의 배우 김태리와 극 중에서는 대결 구도를 세웠지만 실제로는 많은 것을 배웠다.
"태리 언니는 제가 항상 이야기하는 건데 너무 훌륭한 배우예요. 배우가 이거구나, 알게 해주는 사람이고 이미 충분히 너무 잘된 선배지만 잘될 수밖에 없는 사람인 거 같아요. 너무 열심히 하고, 너무 노력하고, 저도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항상 들어요. 국극 '쌍탑전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태리 언니를 보면 저게 배우란 직업의 매력이구나, 저 직업을 내가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배우로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더라고요."
배우 신예은. 엔피오엔터테인먼트 제공신예은은 허영서의 고충에 공감을 느끼고 있다. 대본만 해도 그렇다. '비슷해서 닮았다고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대본을 허영서처럼 분석에 분석을 거듭하는 편이었다고. 논리에 강한 'T' 성향이 강해서 그래왔지만 점점 공감이 중요한 일을 해나가면서 바뀌어 가고 있다.
"영서처럼 대본을 분석하는 편이었거든요. 그런데 라디오 DJ를 1년 정도 했어요. 많은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공감 해주고, 조언도 해주면서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적응하는 순간들이 오더라고요. 처음에는 어떻게 대답할 지 모를 정도로 어려웠지만요. 그렇게 대본 보는 방식도 달라졌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공감하는 F 성향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거 같아요. T 성향이라고 해서 연기에 방해가 되는 건 아니에요. 어떤 감독님 말씀이 이성에 감성을 한 스푼, 두 스푼 입히면 그게 더 빠르다고 하더라고요. 요즘엔 대본을 보면 내가 분석하고 생각하는 인물이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닐 수도 있으니까, 다른 관점을 많이 생각해봐요. 그러면 대본 보는 폭이 넓어지더라고요."
안양예고에 성균관 대학교 입학까지, 신예은은 치열한 입시 연기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모범생이라기보다는 입시가 체질적으로 잘 맞았다는 전언이다. '정년이' 국극 공연 준비가 너무 힘들 때면 마치 입시 학원을 다닌다고 생각하면서 집을 나섰다. 그러면 '당연히 받아들이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스스로 가혹하게 몰아 붙였던 그 시절을 지나 이제 신예은은 자기 자신을 올곧게 인정하기로 했다.
"공연 준비가 힘들 때마다 입시 중이라고 최면을 걸었어요. 그러면 당연히 받아들이니까 덜 힘들었고, 입시하고 온다고 하니까 예고 다니던 시절로 돌아간 거 같더라고요. 힘들어도 거기가 하나의 숨 돌릴 수 있는 공간이었어요. 전 입시가 그래도 좋았어요. 데뷔 전에는 칭찬을 들어도 스스로 '더 잘할 수 있는데?'라고 채찍질을 했던 기억이 나요. 누군가의 칭찬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늘 부족하게만 생각하는 거죠. 지금은 달라요.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고, 칭찬해주고, 스스로를 사랑하고,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줬어요."
그만큼 '정년이'의 허영서가 되는 과정은 지난한 고통이 따랐다. 가장 말썽은 목소리였다. 목이 심하게 상하는 바람에 소리는 물론 대사까지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신예은은 끝까지 허영서를 완성해 자신의 모든 노력을 펼쳐내는데 성공했다.
"저만 힘들었다고 할 수는 없죠. 다만 목이 너무 약해서 목소리가 제대로 나온 적이 없었어요. 병원도 많이 다녔고,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게 목상태였거든요. 매일 목에 손수건을 두르고, 목캔디를 종류별로 다 사보고 그랬어요. 소리만 못하면 그건 괜찮을 수도 있는데 연기까지 방해가 되니까 너무 슬펐어요. 말을 못하는 게 이렇게 불편하다는 걸 이번에 느꼈어요. 방송을 보니까 그제야 제가 해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이렇게 멋진 걸 했구나' 싶으니까 자랑스러웠어요."
배우 신예은. 엔피오엔터테인먼트 제공여러 아쉬움을 뒤로 하고 결과만 놓고 보면 '정년이'는 시청률 16.5%(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를 넘기면서 성공했다. 그러나 신예은에게 중요한 것은 '결과'보다 '과정'이다. 오은영 박사가 시험을 망친 아들에게 '나중에 기억에 남는 건 네가 열심히 한 노력'이라고 한 것처럼 후회 없이 순간에 매진할 뿐이다.
"저는 결과보다 과정이에요. 후회 없이 열심히 최선을 다하면 결과는 따라올 거라고 생각해요. 이 순간에 결과가 오지 않더라도 저는 성장해 있지 않을까요? 보이는 숫자가 아니더라도요. 전에는 몰랐는데 노력한 시간이 있으니까 알아주는 것 같아서 뿌듯해요. 숫자에 제 감정이 오르내리고 할 것 같지는 않아요."
신예은을 움직이는 가장 큰 원동력은 바로 팬이다. 처음에는 팬들이 왜 타인인 내 일에 뿌듯해 하는지 궁금증이 들기도 했다. 지금은 팬들의 마음을 알기에 어딜 가도 '신예은 좋아한다'고 떳떳이 말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신예은의 성장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그 사람들의 자랑이 되고 싶어요. 떳떳하고, 자신 있게 '신예은 좋아한다'고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요. 당신들에게 꼭 그런 자랑스러운 배우가 되겠다고 생각해요. 더 열심히 해야겠단 마음도 먹고요. 이번에 '정년이'를 거치면서 다양한 인물에 대한 겁이 없어졌어요. 어떤 직업이든 다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웃음) 너무 어렵고, 준비할 시간이 많아도 전 노력할 수 있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니까 잘 할 거라는 확신이 생겨요. 앞으로는 몸도 마음도 진심으로 건강하고 편안한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제 주변도 그게 제일 어려운 거 같고, 저도 잘 되지 않아서 그렇게 되려고 노력 중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