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영신 작가가 하비상 수상작인 '엄마들'과 대표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김민수 기자 "지금의 한국 웹툰 만화 자체 경쟁력으로는 만화계의 칸 영화제로 불리는 앙굴렘국제만화와 같은 국제 무대에 서는 일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해요."
만화가 마영신 작가는 최근 미국, 일본과 함께 세계 3대 만화 콘텐츠 시장으로 꼽히는 프랑스와 유럽에서 국내 웹툰 플랫폼들의 가시적 성과가 미흡한 이유를 우리 출판만화, 그래픽노블 장르가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마 작가는 '만화계의 칸 영화제'로 불리는 유럽 최대 만화 페스티벌 앙굴렘국제만화축제에서 꾸준히 후보작이 거명되는 만화가다. 올해 공식경쟁 부문 후보작에 올랐다. 앞서 2020년 금숙 작가의 '풀' 이후 두 번째로 만화계 오스카 '하비상'을 수상한 한국인 마영신 작가('엄마들'·2021)는 해외에서 더 주목 받는 작가다. 역설적으로 국내에서 그의 작품이 인기 웹툰이 되기 어려운 이유다.
하비상 수상 이후 국내 웹툰 업계와 출판 업계도 마 작가를 주목했지만 한국 시장에서 여전히 생소한 그래픽노블과 작가주의 독립만화가 제대로 설 자리는 없었다. 오히려 인간 군상을 찰 지게 드러내는 그의 작품성과 디지털 작업이 아닌 직접 펜 터치로 그리는 인간적인 묘사에 매료된 해외 출판사들의 러브콜로 이어졌다. 그의 만화는 해외에서 더 잘 팔린다. 그가 독립만화 작가 활동을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마 작가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오징어게임'과 같은 K-드라마의 성공,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등은 20년 이상 쌓아온 외국어 번역출간 시스템과 지속적인 양성 토대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만화도 마찬가지다. 웹툰으로는 만화인들의 선망인 앙굴렘국제만화축제 수상은 불가능하다. 작품성 있는 작가를 계속해서 100명 200명 양성하고 해외번역 출간도 지속하면 문학 작가들 처럼 해외 번역상도 타고 결국 앙굴렘 대상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외에서는 만화를 예술의 영역으로 평가한다. 일본이나 한국 만화의 오락적인 측면이 강조된 상업적 측면도 있지만 만화의 태동에는 인간의 삶과 철학적인 주제가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만화 환경이 웹툰의 성장으로 시장 가치면에서 견고해진 것 같지만 오히려 다양성 부족의 균열점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 중견 만화인들의 한결같은 우려다.
그는 "바보들이 권력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웹툰 플랫폼들이 만화에 대한 본질적 이해나 전문성이 부족한 상태에서 상업적 성장에만 몰입한 나머지 작가와 만화 시장을 또 다시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마영신 작가의 원작 '엄마들'의 드라마 제작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카카오웹툰 연재작인 '러브 스트리밍'과 '아티스트' 역시 영상화 논의가 진행 중이다. 또한 '엄마들', '아티스트' 영어판 출간에 이어 작품 '호도'가 세 번째 해외 출간을 앞두고 있다.
'엄마들', '아티스트', '남동공단' 등 문제적 작품들로 세계의 주목을 받는 마영신 작가를 노컷뉴스 [만화인]이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마영신 작가의 대표작 '엄마들'과 국내외에서 큰 인기를 누리며 우리만화상을 수상한 '아티스트'마영신 최애 작품은 3가지 내면 담아낸 '아티스트'
▶'엄마들'로 만화계의 오스카라 불리는 하비상을 수상했다. 이후 달라진 것이 있나. = 별로 없는 것 같다. '엄마들' 작품이 곧 드라마로 제작될 예정인데 그러면 좀 달라질 지 모르겠다. 해외 출판 시장을 여러 차례 보고 경험하면서 웹툰도 장르의 파이를 키우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리보기 등 결제 수익 외에 영상화가 된다면 형편은 좀 더 낫지만 웹툰의 수익모델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인기 노블코믹스 '나 혼자만의 레벨업' 단행본이 프랑스에서 엄청나게 팔려나갔다. 프랑스는 장르 만화가 많기도 하고 웹툰과 같은 온라인 결제 방식은 선호하지 않는다. 책, 단행본을 사 보는 문화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데 한국 웹툰 플랫폼들이 철수 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국내의 경우 인기 웹툰도 단행본으로 나오면 잘 팔리지 않는다.= 독립만화 기준으로 평균 판매량이 500권 안팎이다. 탑 인기 작품을 제외하면 1000권도 넘기기 힘든 게 요즘 출판 시장의 현실이다. 그런데 한국 드라마는 너무 인기가 많아서 해외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인구가 늘고 있다. 프랑스 행사에도 가보면 프랑스 팬들이 너도 나도 한국어로 대화를 해올 정도다. 드라마의 인기가 한국 콘텐츠를 소비하게 만들고 있다. 만화도 마찬가지다. 웹툰으로는 만화인들의 선망인 앙굴렘국제만화축제 수상은 불가능하다. 작품성 있는 작가를 계속해서 100명 200명 양성하고 해외번역 출간도 지원하면 문학 작가들처럼 해외 번역상도 타고 결국 앙굴렘 대상도 탈 수 있게 될 것이다.
'손맛'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영신 작가는 디지털 홍수 속에서도 여전히 펜을 고집한다. 김민수 기자▶웹툰이 아닌 만화책으로 해외 시장을 공략하자는 말인가= 한국 문학인들이 맨부커상을 수상하고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책을 안 보는 한국 시장에서 신기하지 않나. 수상작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좋은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들다. 한국문학번역원이 십 수년 간 번역을 지원하고 훌륭한 작품 발굴과 해외 진출을 지속하면서 오랜 지원과 투자를 통해 가능한 일이었다. 만화도 마찬가지다. 해외 진출이 가능하도록 번역을 지원하고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발굴해야 한다. 한국 시장에서는 아직 생소하지만 해외에서는 만화를 그래픽노블로 출판의 큰 범주에 포함시킨다. 그래서 만화상은 물론 문학상에 포함되기도 한다. 스웨덴 한림원이 미국의 가수 밥 딜런을 201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고, 2018년 맨부커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 만화가 닉 드르나소가 후보에 오르며 화제를 모았다. 세상 밖은 이미 만화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고 있다. 한국은 아직 멀었지만.
▶한국 웹툰의 해외 진출에 한계점이 있다는 말로 들린다.= 네이버나 카카오 웹툰에 인기 작품 순위를 보면 지나친 장르 획일화 문제도 꼽을 수 있지만 디지털 과잉에 대한 사람들의 반발 심리가 활자 매체 회귀로 나타나고 있다. 이태원에 3층 공간으로 구성된 큰 만화방이 있다. 가서 보면 휴대폰을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만화책만 본다.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거다. 웹툰·만화도 기획단계서부터 해외 시장을 노리고 시작해야 한다. 해외 공모전이나 앙굴렘 등에 출품하거나 해외 출판사에 직접 제안해보고 만화잡지도 직접 만들어보면서 감각을 키워야 한다. 당장의 상업적 성과는 적겠지만 눈에 띄어 출판되고 상도 수상하면 자신의 만화책을 보는 해외 독자까지 확장할 수 있게 된다.
▶웹툰 방향성에 변화가 필요한 것 같다.= 예전에 메이저 플랫폼에서 마영신 레이블을 직접 만들어보라는 제안을 한 적이 있다. 다양성을 가진 웹툰 작가들을 발굴하는 것이었는데, 실제 레이블 '즐겨찾기'를 만들어 애정을 갖고 많은 작가들을 발굴해 데뷔시켰다. 하지만 지원도 한계가 있고 온전히 저만의 책임과 일이 되면서 그만두게 됐다. 결국 실패한 것이다. 다양성 만화 지원 같은 지원사업도 있어 그나마 기회가 있는데, 나의 경우에는 더 이상 신청하지는 않는다. 더 많은 작가들에게 기회가 돌아갔으면 해서다.
만화 '아티스트'는 국내외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LP판 OST 제작은 물론 세계 3대 아트페어인 프리즈(FRIEZE)의 '프리즈 위크 서울 2024' 메인 화보를 장식했다. 김민수 기자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보나= 대부분의 웹툰 플랫폼에 서비스직 직장인만 있지 진짜 만화 전문가가 없다. 전문성이 결여되어 있다. '오타쿠 가두리 양식장'처럼 장사에만 모든 관심이 가 있다 보니 만화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원피스' '드래곤볼' 같은 만화만 팔 건가. 해외에서 주목하는 그래픽노블 장르도 키울 수 있는 데 말이다. 플랫폼마다 웹툰PD라고 있지만 만화에 대한 프로 의식이나 전문 역량이 부족하다. 사실 만화가에게 만화에 대한 조언을 해줘야 하는 사람들이다. 일본의 만화 편집자들처럼 만화가보다 훨씬 더 많이 알아야 하고 문화적인 이해나 상업적 조언도 가능한 진짜 편집자가 만화가에게는 필요하다. 만화의 본질보다 다른 업무에 시간을 많이 할애해야 하는 기업 구조의 탓도 있을 것이다.
▶신규 작품 활동이 뜸해진 것 같다.= 상반기에 중단편 플랫폼 쇼츠에 락밴드를 소재로 한 '(락)이' 연재 이후 신규 작품 활동은 잠시 쉬고 있다. 꾸준히 만화를 작은 책으로 만들거나 해외 출판사들과 출간 논의도 하는데, 사실 새롭게 기획 중인 작품의 그림 작가가 건강 문제로 쉬게 되면서 잠시 진행을 보류했다. 얼마 전부터는 개인적인 건강 문제가 있다가 회복 되서 휴식 겸 작품 활동을 멈춘 상태다. 대신 어떻게 하면 하고 싶은 작품 활동을 자유롭게 지속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을 다듬고 있다.
▶작품 소재나 구상은 어떻게 기획하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나의 이야기나 나의 정체성을 담아낼 때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나 경험, 에피소드를 듣다 보면 작품을 풀어내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항상 기록해두고 정리해서 필요할 때마다 적절하게 사용한다.
마영신 작가 캐리커처. 마 작가를 가장 닮은 '아티스트' 캐릭터인 예술계의 마당발이자 암호화폐 투자자 겸 화가인 곽경수. 작가 제공▶내년 나올 예정인 신작 정보 좀 귀띔 해달라.
= '진심으로' 라는 24화 중단편 작품인데 영화감독인 주인공과 피아노 치던 친구가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풀어가는 서로의 진심에 대한 이야기다. 현재 콘티는 준비됐고, 그림 작가가 건강을 회복해서 돌아오면 곧바로 진행할 예정이다. '러브 스트리밍'으로 데뷔한 권다희 작가가 그림을 맡았다. 내년 즈음 독자분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끝으로 마영신 작품 중 가장 최고의 작품을 꼽으라면?= '아티스트'를 꼽을 것 같다. 실제 내가 경험하고 생각한 내용들이다. 캐릭터 3명이 모두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거기에 내가 겪은 수 많은 사람들의 캐릭터가 이 이야기 안에 들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