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군·경찰과 대치하던 시민들이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되자 환호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 선포된 비상계엄령에 국회로 급하게 달려온 시민들은 밤새 현장을 떠나지 않고 지켰다. 시민들과 국회 보좌진이 무장 계엄군을 막아서는 가운데 새벽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자 현장에 있던 시민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윤석열을 체포하라"고 외쳤다.
시민들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직후인 3일 밤부터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인근으로 모여들더니 4일 새벽엔 그 숫자가 수천명으로 불어났다. 시민들은 '비상계엄 중단하라'고 적힌 종이를 건네받아 "비상계엄을 철폐하라"고 연신 외쳤다.
경찰과 시민들은 국회 정문 출입문을 사이에 두고 3일 밤 11시 20분쯤부터 대치를 이어갔다. 일부 시민들은 "국민이 국회를 들어가는데 왜 막냐"며 "법적 근거가 있냐"고 소리쳤다. 정문이 닫히려하자 한쪽에선 진압방패를 들고 있는 경찰을 향해 "비상 계엄령이 말이 되냐"고 몸을 던지면서 사고로 이어질 뻔한 위험한 상황도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시민 이숙향(59)씨는 "집에 있다가 소식을 듣고 바로 택시를 타고 국회로 왔다"고 말했다. 시민 이지운(50)씨는 "너무 뜬금없이 선포된 계엄령이라서 놀랐다"며 "예전에 국회에서도 계엄령 관련한 얘기가 나왔는데 실제로 현실화 돼서 (대통령이) 무식한 건지 너무 깜짝 놀랐다"고 혀를 내둘렀다.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기 전 기관총으로 무장한 계엄군이 헬기 등을 타고 도착해 국회 본관 진입을 시도했다. 하지만 국회 관계자와 시민들의 저항에 가로막혔다. 국회 관계자들은 사무용 의자, 책상 등 집기류를 출입문 곳곳에 쌓아 버텨 출입을 통제했다.
급기야 계엄군은 국민의힘 당대표 비서실 등이 위치한 국회 본관 우측 창문을 깨고 강제로 들어와 본회의장 접근을 시도했다. 이에 국회의원 보좌진들과 관게자들은 통로 출입문을 굳게 막고 소화기를 동원하며 필사적으로 저항하며 본회의장을 사수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밤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약 2시간 35분 만에 국회 본회의에서 계엄 해제 결의안이 가결된 가운데 4일 오전 국회 본관에 계엄군을 막기 위해 쌓아 놓은 의자 등 집기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황진환 기자
오전 1시쯤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의원 190명 전원 찬성으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자 국회 앞을 지키던 시민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터뜨렸다. 한 남성은 "그래도 옛날이랑 시대가 바뀌긴 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시민들은 대통령이 국가 혼란을 야기했다며 "윤석열을 체포하라"는 구호를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줄기차게 외쳤다.
시민들은 결의안 통과 이후에도 국회 앞을 떠나지 못했다. 또 다른 남성은 "우리가 국회를 지켜야한다. 대통령이 계엄 해제 선포하기 전까지는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며 연신 구호를 외쳤다. 시민 이숙향씨도 "(계엄군이) 언제 다시 쳐들어올지 모르고 (의원들도) 다들 안 떠나고 있는 것 같으니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주말마다 서울 도심에서 열리는 정권 퇴진 집회가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국회 밖을 지키던 시민 일부는 "이제 진짜 탄핵해야 한다. 절대 봐줄 수 없다"며 소리치기도 했다. 직장인 박서희(31)씨는 "(비상계엄령 선포가) 신호탄이 돼서 쐐기를 박은 것 같다"고 말했다.
새벽 4시25분쯤 윤 대통령은 생중계 담화에서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가 있어 계엄 사무에 투입된 군을 철수시켰다"고 말했고, 정부는 4시30분 국무회의를 열어 '계엄 해제안'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자정께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민들이 계엄 해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