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군 환영하는 시리아 주민들. 연합뉴스중동의 '화약고' 중 하나였던 시리아 내전이 8일(현지시간) 13년 만에 반군의 승리로 사실상 막을 내리면서 국제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53년간 대를 이어 시리아를 철권 통치해온 아사드 일가 독재 정권을 지지하며 이를 발판으로 중동 내 영향력을 유지해온 러시아와 이란이 큰 타격을 받게 됐다.
이날 이슬람 무장세력 하야트타흐리트알샴(HTS)을 주축으로 한 시리아 반군은 수도 다마스쿠스에 입성하고 승리를 선언했다.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은 해외로 도피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외부와 연락이 끊긴 상태다.
외세 개입과 내부 이해관계가 얽히며 장기간 시리아를 파탄으로 몰고간 내전은 최근 시리아에 깊숙이 개입해온 러시아와 이란의 영향력이 급격히 약해지면서 반군의 승리로 마무리된 것으로 풀이된다.
중동 시아파 이슬람교 세력의 맹주인 이란과 헤즈볼라는 시아파인 알아사드 정권을 지원해왔다.
그러나 이란의 '저항의 축' 대리 세력 중 가장 강력하다는 평가를 받던 헤즈볼라는 이스라엘군에 지휘부가 몰살당하고 군사자산이 초토화되며 조직이 쪼그라들었다. 이란도 가자 전쟁 국면에서 공습을 주고받으며 큰 타격을 입었다.
러시아도 지난 2022년 시작한 우크라이나 침공 3년째 북한에서 미사일과 병력을 지원받을 정도로 소모전에 발목을 잡히며 시리아로 눈을 돌릴만한 여유가 없는 상태다.
HTS가 이끄는 반군이 지난달 27일 전면적인 공세에 나선 시점과 트럼프 당선인이 집권 2기를 준비하는 시기와 맞아떨어졌다는 것도 주목되는 점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집권 1기 때부터 이란에 적대적이었고 쿠르드족 민병대 등 시리아 내 친미 성향의 반군을 지원하며 정부군 시설 폭격도 직접 명령한 적이 있다.
반군 승리로 일단 러시아와 이란이 충격을 받게 될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로이터 통신은 "아사드 정권의 극적인 붕괴는 중동에 지진과 같은 순간"이라며 "역내 심장부에서 핵심 동맹을 잃은 러시아와 이란에 큰 타격을 입혔다"고 해석했다.
시리아 반군의 군사행동이 정부 장악에 그칠지, 혹은 주변국으로 확산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일각에서는 알아사드 정권을 지원해온 헤즈볼라의 근거지인 레바논 등지가 다음 목표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이 경우 중동 혼란이 가중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스라엘군이 이날 "시리아 내부 상황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완충지대 방어에 필요한 여러 지점에 군대를 배치했다"고 밝힌 것도 이런 전망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아랍 언론 알자지라는 이스라엘군이 시리아 국경지에 진출한 것이 50여년 만에 처음이라고 했다.
로이터통신은 이슬람주의 그룹이 시리아를 통치할 가능성은 우려를 자아낼 것으로 보인다면서 반군의 수도 장악 등 사태 전개의 속도가 여러 아랍 국가들을 놀라게 했고, 새로운 파고의 지역 불안정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리아 새 정부의 주도권을 누가 잡을지도 관건이다.
반군에는 민주주의 세력, 쿠르드족 민병대,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 등 뿌리가 다른 여러 정파가 뒤섞여 있다. 이번 공세를 이끈 HTS는 과거 알카에다 연계 조직으로 출발했으며 '이슬람 국가 건설'을 목표로 내걸고 있다.
미국은 그간 반군 조직 중 쿠르드족 민병대 시리아민주군(SDF)을 지원해왔지만, 내전 종식 결과로 시리아에 다시금 미국과 불편한 세력이 정권을 잡게 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 현지 언론들은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과거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에 저항하도록 키웠던 이슬람주의 탈레반이 미국의 안보 위협으로 돌아온 일을 현재 시리아 상황과 연계해 상기시키기도 했다.
이런 맥락에서 트럼프 당선인도 전날 "시리아가 엉망이지만 우리의 우방은 아니며 미국은 시리아와 관련해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며 "이건 우리의 싸움이 아니다. 그대로 둬라. 개입하지 말라"고 주장하며 거리를 둔 것으로 풀이된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반군 승리를 두고 "시리아에서의 놀라운 일들을 면밀히 주시 중"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행정부 교체 과정에서 시리아 정세를 살피며 접근법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시리아 내 극단주의와 테러리즘은 여전히 걱정거리라는 우려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반세기 넘게 이어져 온 아사드 일가의 독재가 무너진 데 대해 시리아 국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환영했다.
수년간 반군이 통치해 온 북서부 지역은 아사드 정권의 몰락에 축제 분위기에 휩싸인 동시에 그간 아사드 정권의 탄압에 희생당한 이들에 대한 애도도 이어졌다.
그간 아사드 정권의 본거지였다가 간밤에 통제권을 반군에 내준 수도 다마스쿠스에서는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일부 지지자들이 광장에 나와 막 진입한 반군을 환영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아사드 정권 탄압을 피해 해외로 이주한 시리아 교민들도 아사드 정권의 붕괴를 축하했다.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는 한 시리아 교민 단체가 시리아 국기를 들고 거리로 나와 아사드 정권 몰락을 축하하는 시위를 벌였다고 독일 DPA 통신이 보도했다.
독일에 살고 있는 시리아 출신 인권 변호사 미칼 샤마스는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이제 우리의 시리아를 함께 재건하자"고 적었다.
시리아 반군이 수도 다마스쿠스를 점령하기 직전 다마스쿠스를 떠난 것으로 알려진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행방은 아직도 묘연하다.
알아사드 대통령은 이날 항공기에 탑승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현재 그와 가족들의 소재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항공기 이동 경로가 갑자기 기록에서 사라졌다는 점에서 사망설이 제기되는 한편, 해외로 도피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그가 탄 항공기는 처음에는 알아사드의 세력이 강한 시리아 해안 지역으로 날아갔지만, 갑자기 유턴해 몇분간 반대 방향으로 가더니 지도에서 사라졌다. 시리아 해안엔 알아사드 대통령의 후원자인 러시아의 공군, 해군 기지가 있다.
무함마드 알잘리 시리아 총리는 알아사드 대통령과 마지막으로 연락한 것은 전날 밤으로, 당시 상황을 보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알아사드 대통령이 해외에 체류 중일 것이라는 의견들도 있다.
러시아 외무부는 알아사드 대통령이 시리아를 떠났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알아사드 대통령이 내전 당사자들과 협상 후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시리아를 떠나기로 했으며, 평화적으로 권력을 이양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말했다.
시리아 한 야당 정치위원은 타스통신에 알아사드 대통령이 여러 나라에 자신을 받아달라고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며, 아프리카로 갔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