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7특수임무단장 김현태 대령이 9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전쟁기념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중 고개를 숙이고 있다. 연합뉴스12.3 비상계엄 사태시 국회의사당 봉쇄‧진입 작전을 현장 지휘한 김현태 특수전사령부 707 특수임무단장은 9일 "부대원들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이용당한 가장 안타까운 피해자"라고 말했다.
김 단장은 이날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국민 여러분께 무거운 마음으로 깊이 사죄드린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국회 국방위에 출석해 제가 아는 모든 진실을 말씀 드리고 싶었으나 기회가 없는 듯하여 이 자리에 섰다"면서 기자회견도 상부 보고와 승인 없이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3일 국회 출동 경위에 대해 밤 10시 30분쯤 윤석열 대통령의 긴급담화 직후 곽종근 특전사령관으로부터 즉시 출동이 가능한지 묻는 연락을 받고 헬기 편으로 이동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김 단장의 설명에 따르면, 처음 부여받은 명령은 국회의사당 본청과 의원회관을 봉쇄해 의원들의 출입을 막는 것이었지만, 막상 현장에 도착해보니 건물 규모가 훨씬 커서 국회의사당 봉쇄에 주력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비상계엄을 선포한 직후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계엄군이 본청 계단으로 이동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이에 따라 김 단장은 보다 효율적인 봉쇄를 위해 건물 내부로부터 출입구를 통제하기로 하고 건물 진입을 지시했다. 그러나 유리창이 강화 필름이 부착돼 쉽게 깨지지 않았고, 지체된 끝에 김 단장을 비롯해 14~15명이 진입에 성공했다.
김 단장은 출동할 때부터 테이저건과 공포탄 등 비살상무기만 휴대했고 실탄은 보유하긴 했지만 작전 내내 따로 보관했다고 말했다.
그는 707 부대는 평시 훈련 중에도 긴급 상황에 대비해 총기와 실탄을 휴대한다고 밝혔다. 저격소총으로 무장한 707 대원이 목격된 것에 대해서는 어떠한 종류의 현장 출동이든 부여된 개인 임무별 무기를 지참하는 게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김현태 제707특수임무단장이 9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전쟁기념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중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그는 "사령관의 최종 지시도 있었고, 당연히 절대 공포탄, 테이저건 등 무기를 사용하면 안 되었기에 부대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힘으로 미는 것과 계엄사령부 지시로 건물을 봉쇄하는 것이니 비켜주시라고 얘기하는 것뿐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4일 새벽 0시 30분쯤 곽 사령관으로부터 "(의사당 내 본회의장으로) 들어가서 (의원들을) 끌어낼 수 있겠느냐 하고 전화오고, 지금 국회의원들 모이고 있는데 150명 되면 안 된다 이런 뉘앙스로 말하는" 것을 듣고, 진입 자체도 어렵다고 회신하자 "알았다"는 식의 답신이 돌아왔다고 증언했다.
그는 다만 비상계엄이 선포된 3일 낮 시간대부터 다소 이상기류는 감지됐다고 밝혔다. 이는 곽 사령관의 증언과는 결이 다른 내용이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연합뉴스그는 "사령관은 전혀 몰랐던 것 같은데 계속 뭔가 (테러) 위협에 대해서 (김용현) 전 장관이 얘기한 것 같다. '준비해라 준비해라' (하는 식으로)"면서 "그전에는 그냥 강조(하는) 식이었는데 당일은 뭔가 가능성이 높은 식으로 말을 하면서 나도 (너희들을) 안 불렀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곽 사령관) 본인께서 마음이 무거웠는지 저녁 식사를 같이 하자고 해서 저와 사령부 처장 등 7명 정도가 같이 부대회관에서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그런데 (사령관이) TV를 보라고 그러고, 곧 뭔가 발표될 것처럼 얘기했다"면서, 그럼에도 밤 10시가 넘어도 별 다른 소식이 없자 퇴근을 준비하던 중 국회 출동 명령이 하달됐다고 기억했다.
그는 다만, 연초부터 서울지역에 대한 동시다발 테러 등에 대한 혼란 상황을 가정해 훈련을 해왔고, 계엄 당일에도 오후 7시 50분쯤 비상소집훈련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707 부대가 출동 명령을 신속하게 따를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이유가 있었다.
김현태 제707특수임무단장이 9일 오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그는 상부의 작전 지시는 곽 사령관과 안보폰(보안폰)을 통해 하달 받았고, 나중에 파악한 바로는 김용현 전 장관의 지시를 거의 그대로 전달하는 식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작전 내내 거의 1분마다 전화를 받을 만큼 지시가 빈발했다고 했다.
육군사관학교(55기)를 졸업하고 군에 입문한 김 단장은 특수전 분야에서 잔뼈가 굵었다. 그는 "저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지휘관이다. 부대원들을 사지로 몰았다"며 "전투에서 이런 무능한 명령을 내렸다면 전원 사망했을 것"이라고 자책했다.
그러면서 "제발 제가 모든 죄를 짊어질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며 "단 한 사람의 부대원도 다치지 않도록 꼭 지켜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