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얼빈' 안중근 장군 역 배우 현빈. CJ ENM 제공※ 스포일러 주의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 한국 침략의 원흉이자 동양 평화의 파괴자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세 발의 총탄을 명중시킨 안중근 장군. 이후 러시아군에 끌려가며 안중근 장군은 코레아 우라!"(Corea Ura·대한 만세)를 연호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하얼빈 의거다.
한국 독립을 회복하고 동양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의열 투쟁에 앞장섰던 안중근을 두고 우리는 민족의 영웅이자 겨레의 등불이라 기억하고 있다. 이러한 존재감과 상징성이 갖는 무게감이 너무 컸기에 현빈은 처음에는 '하얼빈' 시나리오를 고사했다. 그러나 우민호 감독은 삼고초려했다.
이에에 현빈은 점점 안중근 장군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인물을 연기할 기회를 받을 배우가 얼마나 될 것인지, 이런 역할을 또 제안받을 기회가 올지 생각했다. 현빈은 "좋은 기회이고, 영광스러울 수 있다"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얼빈' 속 안중근 장군을 연기하게 됐다.
촬영이 끝난 후 메이킹 필름을 찍을 때, 그에게 소감을 물어왔다. 현빈은 "왈칵 쏟아졌던 것 같다"라고 회상했다. 아직 끝나지 않은 기분과 동시에 무언가 자신을 누르고 있던 걸 떨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처음 느꼈던 감정"이라고 했다. 현빈은 어떻게 중압감을 이겨내고 의사 안중근이자 인간 안중근을 연기해 나갔을까.
영화 '하얼빈' 스틸컷. CJ ENM 제공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인간 안중근
현빈은 인터뷰 내내 우리가 흔히 부르는 안중근 '의사'(義士)가 아니라 안중근 '장군'이라고 불렀다.
그는 "이분은 철저히 군인이었다고 생각한다. 재판에서도 군법으로 재판받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군인으로서 나라를 지키고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살아오셨던 거다. 그런 지점에서 장군이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화는 우리가 역사의 기록을 통해 알고 있는 하얼빈 의거 그 자체보다 의거를 행하기까지 과정과 그 과정에서 느꼈을 안중근 장군과 독립군의 고뇌, 두려움, 슬픔 등을 그려낸다.
현빈은 "안중근 장군과 독립군도 평범한 한 인간이었다. 그들은 결과를 알 수 없고, 한 치 앞도 모르는 험난한 상황 속에서 인간적으로 두렵거나 무서웠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안중근 장군의 경우는 자신의 위치에서 선택하고 결정하는 과정에서 판단 실수로 동지가 희생당했을 때 미안함과 죄책감도 있었을 것"이라며 "처음부터 이런 걸 영화로 표현하고, 관객이 생각할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는 목적이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현빈은 남아 있는 자료와 기록 등을 통해 안중근 장군의 발자취를 찾아보면서 그가 어떤 결정을 내리고, 행동하기까지 왜 그랬을지 상상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안중근의 내면으로 다가갔다.
영화 '하얼빈' 스틸컷. CJ ENM 제공 안중근의 외로움, 두려움 그리고 미안함
촬영하면서 한 걸음씩 안중근에게 다가가며 점점 '안중근 장군'이자 '인간 안중근'을 완성해 나갔다. 영하 40도의 강추위에 얼어붙은 홉스골 호수 위에서, 좁고 어두운 방 안에서, 교수대 위에서 현빈은 안중근이 되어 여러 감정을 맞닥뜨렸다. 그중 하나는 '외로움'이다.
"제가 생각했을 때는 호수에서도 그렇고, 안가에서도 그렇고, 동지들이 안중근 장군 옆에 늘 함께하고 있지만, 어느 부분은 계속 혼자 호수 위에 서 있는 것처럼 외로울 거라 생각했어요. 거사가 행해지기 전까지 우리 영화에서 안중근은 계속 실패한 사람이에요. 실패하고 좌절하고 무너지지만, 신념을 갖고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가는 분이죠." 현빈 역시 얼어붙은 호수 한복판에 서 있을 때 외롭고 무섭다는 감정을 느꼈다. 그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고, 저 끝에 뭐가 있을지 모르고…. 그런 게 온전히 느껴진 로케이션 작업이었다"라고 떠올렸다.
최재형이 마련해 준 안가의 좁고 어두운 방, 안중근이 한쪽 구석에 앉아 자책하고 두려워하는 장면이 있다. 하얼빈 의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동료들의 생사도 모른 채 홀로 안가로 돌아온 상황이었다.
영화 '하얼빈' 스틸컷. CJ ENM 제공원래 해당 장면은 안중근이 의자에 앉아 최재형과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현빈은 안중근이라면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행동했을지 떠올려 봤다. 세트장의 공기를 느끼고 싶어서 한동안 홀로 그곳에서 생각을 이어갔다.
"그런데 벽 모퉁이 옆에 조명이 안 비치는 공간이 눈에 들어오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안중근 장군이라면, 저렇게 아무도 나를 못 찾는 공간에 숨고 싶었을 거 같다는 마음이 들었죠. 그래서 최대한 웅크려서 작아진 안중근을 표현하기 좋겠다는 생각에 아이디어를 냈어요. 우리 영화에서 가장 나약한 안중근 장군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신이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동지들의 희생 속에 안중근은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 처단에 성공한다. 이후 1910년 3월 26일 여순감옥에서 순국한다. 교수대 위에 선 장면을 찍을 때, 현빈의 심경도 복잡해졌다. 그때 느낀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그는 "여러 과정에서 희생해야겠다고 결심은 했지만, 막상 그 순간이 되면 인간으로서 조금도 두렵지 않았을까 했을 때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두려움이 떨리는 숨소리나 눈빛으로 표현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두려움과 함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미안함'이었다. 그는 "죽음으로서 험난한 과정에서 빠지게 되는데, 그렇다면 남은 동지들이 남은 길을 더 힘들게 걸어가야 할 것에 대한 미안함"이었다고 했다.
영화 '하얼빈' 스틸컷. CJ ENM 제공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
연기로나마 현빈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안중근 장군의 여정 속 고뇌와 두려움, 죄책감을 함께 나누며 조금 더 깊이 그의 안팎을 들여다봤다. 그 길을 되돌아봤을 때 현빈에게 남은 것은 감사함이었다.
그는 "진짜 그게 가장 컸다. 나도 삶에 치여서 살다 보니 내 앞길만 보고 주변은 돌아보지 못하며 살았다"라며 "이번 작품을 통해서 감사함이란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고, 다시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그는 '하얼빈'을 통해 '내가 무언가에 이렇게 진심을 다 해 본 적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그는 "매 프로젝트 진심을 담아 최선을 다한다고 했다"라며 "그런데 제일 늦게 이 작품을 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실존 인물의 압박감에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어느 한 부분도 누가 안 되려고 진심을 다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런 게 나한테는 또 다른 영향을 분명 미쳤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빈은 '하얼빈'의 목적은 '여정'이라고 했다. "독립군의 험난한 여정이 밑거름되어 하얼빈 의거 후 35년이 지나 나라를 되찾았다는 이야기"야말로 '하얼빈'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라고 강조했다.
그는 "안중근 장군과 독립군의 걸었던 길은 끝난 게 아니다. 뒤에 남은 사람이 계속 한 발 한 발 걸어가야 한다"라며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라는 문구를 언급했다. '하얼빈' 해외 포스터에 새겨진 문구다. 특히 지금의 시국 속에서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많은 관객에게 위로와 응원이 될 거라고 했다.
"앞으로 어려운 상황이 당연히 없었으면 좋겠지만, 없으리란 보장도 없잖아요. 또 그런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이렇게 한 발 한 발 신념을 갖고 가면 더 나은 내일이 오지 않을까요. 여태까지 우리가 그래왔던 것처럼요."<영화 '하얼빈' 향한 여정에 나선 사람들 ②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