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이 10일 오후 서울 중구 인권위에서 열린 2차 전원위원회에서 안건을 심의하고 있다.이날 전원위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방어권 보장 등의 내용이 담긴 '계엄 선포로 야기된 국가의 위기 극복 대책 권고의 건'이 상정됐다. 류영주 기자국가인권위원회가 대통령 윤석열의 탄핵심판 방어권을 보장하라는 권고 안건을 10일 통과시켰다. '계엄선포로 야기된 국가적 위기 극복대책 권고의 건'으로 포장돼 있지만 헌정질서를 유린한 내란수괴를 옹호하는 내용이 본질이다.
가결된 안건은 '윤석열 방탄용'이라는 인권위 안팎의 거센 반발에 부닥쳐 지난달 상정이 무산됐었는데 이번엔 그동안 침묵하던 안창호 인권위원장이 수정안 통과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김용원 상임위원을 포함한 5명의 인권위원이 공동 발의한 안건은 '방어권 보장과 불구속 수사 권고'를 골자로 한다. 이들은 "비상계엄 선포는 고도의 정치적·군사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통치행위에 속한다"며 헌재가 계엄선포의 부당함 여부를 판단할 권한이 있는 지 근본적 의문이 든다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측 법률대리인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국가인권위원회가 헌법수호의 책무를 망각한 윤석열 대통령을 꾸짖기는커녕 내란피의자의 인권을 앞세운 것은 조직의 존재이유를 망각한 치명적인 일탈행위다. 인권위는 민주화와 인권개선을 바라는 국민들의 열망과 시민단체의 노력, 정부의 의지가 결합해 지난 2001년 설립된 독립 국가기관이다. 그런데 지금 보이는 행태는 내란피의자의 호위무사에 가깝다.
군을 동원해 민의의 전당을 짓밟은 행위보다 더한 국가폭력은 없다. 민주주의와 기본권을 침해한 국가폭력의 가해자가 수사와 체포과정에서부터 정당한 공권력 집행에 반기를 들고 사사건건 사법절차를 조롱하고 있는데 인권위의 눈에는 최고권력자의 방어권 보장만 보인단 말인가.
비상계엄으로 헌정질서를 뒤흔드는 것은 국민전체를 상대로 한 광범위한 인권침해에 해당한다. 인권위가 마치 강도의 인권은 중요하고 피해자의 인권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면 '가해자인권위원회'라는 오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전날 이른 아침부터 인권위 건물로 몰려가 안건처리에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의 출입을 통제하겠다며 홍위병인양 휘젓고 다녔다. 취재진의 사상을 검증하겠다면서 몰상식한 요구도 서슴지 않았다. 전원위원회 방청석에서는 일부 지지자들이 소리를 지르며 반대의견을 말하는 인권위원들을 겁박하기도 했다. 인권위 상임위원이 "헌재를 부수어 없애버려야 한다", "이 나라는 지금 극좌파 세상"이라는 선동적인 글을 올릴 정도면 혼란은 인권위가 자초했다.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버려지는 것처럼 이번 결의로 국가인권위원회는 사망선고를 받은거나 마찬가지다. 인권의 최후 보루여야 할 국가기관이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를 옹호하는 것도 모자라 헌법수호의 최후 보루인 헌재의 위상을 흔드는 일에 관여하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이 모든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흔들림없는 헌재의 탄핵심판과 함께 사법당국의 엄정한 법집행이 뒤따라야 한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극우세력이 헌법재판소 난동을 모의한 정황이 20건 포착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고 한다. 제2의 사법부 침탈 사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도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