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주 기자병아리뿐 아니라 종아리까지 감별하는 세상이다. 신뢰의 상징이었던 '뉴스'(News)마저 진짜니 가짜니 감별해야 하는 세상이 됐다.
지나친 '마이웨이'와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으로 '미국이 어쩌다 저렇게 됐나' 흉을 보더니, 이제는 다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따라하지 못해 안달 난 정당들이 됐다.
트럼프 전략의 핵심은 상대방을 향한 '아묻따(아무 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식' 공세다. 그 내용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전혀 상관 없다. 버락 오바마가 외국에서 태어났다는 허위 주장이 대표적인 예다. 하와이는 미국이 아닌가.
'아묻따식' 공세의 핵심은 '아니면 말고'가 아니다. 사실이 아닌 내용이어도 상당수 청자(聽者)가 사실이라고 받아들일 때까지 계속 반박하는 것이 핵심이다.
선거 국면마다 상대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은 차고 넘쳐왔다. 예전에는 그래도 공격을 받은 쪽에서 반박이 불가능한 해명을 하면, 공격한 쪽이 슬그머니 다른 공격 거리를 찾아 나서는 최소한의 양심(?)은 살아있었다.
그런데 12.3 내란사태 이후 '가짜뉴스 패턴'은 또 다른 국면을 맞았다. '진짜뉴스발굴단'이라는 이름의 국민의힘 산하 조직이 그 선봉에 섰다. 작명에 대한 품평은 굳이 하지 않겠다.
전도유망한 젊은 당직자들이 모여있는 곳이라고 했다. 민주당의 근거 박약한 자화자찬에 그럴싸한 반박을 한 경우도 없지 않다. 그런데도 우려가 끊이지 않는다. 고참 당직자에 따르면 "야심찬 친구들이라 '성과주의', '한건주의'에 매몰돼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잘 가르치면 훌륭한 인재가 될 친구들인데 브레이크가 없다"는 우려 섞인 말도 들린다. "신입 대변인의 데스킹(고참 기자들이 현장기자의 원고를 검토하는 것)만 거친다더라", "의원은 직인만 찍어준다더라"는 흉흉한 소문도 돈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사진공동취재단최근 '진짜뉴스발굴단'이 집중 공세를 퍼붓는 대상은 문형배 헌법재판소장(대행)이다. 당 지도부의 헌재 흔들기와 궤를 같이 한다.
당 대변인과 원내수석대변인 가리지 않고 문 대행의 정치 성향을 문제삼아왔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SNS에서 나눈 7번의 대화, 문 대행의 이념 성향이 드러난 SNS 글들을 문제삼았다.
문 대행 스스로 "우리법연구회 제일 왼쪽이 나"라고 밝혔던 것과 맞물려 헌재의 중립성 논란으로까지 번졌다. 당 지도부는 기다렸다는듯 "법치의 최후 보루인 헌재를 국민이 믿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헌재를 항의 방문하는 등, '헌재 흔들기'로 비춰질 만한 행보들을 거듭했다.
대다수 판사들은 이같은 정치권의 공세에 휘말릴까봐 스스로 정치 성향을 극도로 드러내지 않는다. 법조계에서 헌재 압박을 우려하면서도 "정치권에 공세 빌미를 준 측면도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조심스레 나오는 것 역시 이 같은 맥락에서다.
문제는 문 대행에 대한 정치권의 '묻지마 저격'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의힘 박민영 대변인은 지난 13일 논평에서 문 대행이 동문 온라인 카페에 올라온 미성년자 음란물 게시물에 댓글을 달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문 대행이 남겼다는 음란 댓글은 보수 성향 커뮤니티에서 소비된 합성물이었다는 사실이 곧이어 드러났다. 문 대행이 동문 카페에 댓글을 남긴 것은 사실이지만 음란물 게시글이 아닌 다른 글이었다.
결국 국민의힘은 해당 대목을 삭제했다. 대신 "(동문 카페에는) 미성년자 음란물까지 게시됐으며, 문 대행은 해당 커뮤니티를 300회 이상 방문, 댓글까지 작성할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해 왔다"는 내용이 추가된 수정본을 올렸다. 집권 여당이 공식 논평을 내면서 기초적인 팩트체크조차 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은근슬쩍 수정본을 올린 게 끝이 아니었다. 반박 논평이 올라왔다. 박 대변인은 "민주당과 일부 언론이 '문형배 재판관이 음란 게시물에 직접 댓글을 쓴 적은 없다' 반박하며 마치 '행번방' 논란 전체가 가짜뉴스라는듯 물타기를 시도하고 있다"며 "매우 지엽적이고 비본질적인 지적"이라고 주장했다.
동문 카페에 다량의 음란물이 올라왔고 문 대행이 300회 이상 접속했다는 이유에서다(참고로 문 대행은 '카페 해킹'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고, 경찰은 이 사건을 서울경찰청으로 이관해 수사하기로 했다).
그런데 지난 13일 논평의 핵심은 '특정 동문 카페에 음란물이 올라왔고, 문 대행이 그 카페에 접속을 했다는 것'이 아니라, 문 대행이 '음란물 게시물에 댓글을 달았다'는 것 아닌가. 그리고 그 논평의 핵심이 사실과 달랐던 것 아닌가.
일련의 헌재 흔들기 덕분일까.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응답자 중 헌재를 불신한다는 응답률은 지난 한달여 사이 64%에서 84%로 치솟았다. 전체 응답자 사이에서는 신뢰한다는 52%로 간신히 절반을 넘었다. 소기의 성과라면 성과일 것이다(2월 2주차 갤럽 여론조사).
박 대변인은 문제가 된 논평을 낸 다음날 "팩트, 사실관계 점검이 좀 부족했던 부분이 있었다면 당에서 국민께 사과드릴 부분"이라고 밝혔다.
문 대행이 뒤집어쓴 오명은 '뒷북 사과'에 쉽사리 지워지지 않을 터다. "오하이오주의 한 마을에서는 이민자들이 애완동물을 먹는다"는 트럼프의 한마디에 각종 폭탄 테러 위협이 이어졌던 것처럼 말이다.
성과주의적 조직이 자신의 성과를 부인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조직의 성패가 걸린 일이니까. 그러니 틀린 정보는 정정하는 것이 아니라 삭제하면 그만이라 생각할 수 있다.
다만 '진짜' 진짜뉴스 매체들은 오보가 확인되면 즉시 정정 보도를 한다. 잘못된 정보를 보도했다고 알리고 사과하는 것은 기본이고, 때로는 금전적 배상까지 한다. 이미 널리 퍼진 잘못된 정보를 뒤늦게 지우는 조직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앞서 인용한 조사는 이동통신 3사 제공 무선전화 가상번호 무작위 추출을 통한 전화 조사원 인터뷰로 진행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응답률은 16.1%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