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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팬들 숙원 이뤄줄 애니메이션 '퇴마록'[최영주의 영화관]

원작 팬들 숙원 이뤄줄 애니메이션 '퇴마록'[최영주의 영화관]

핵심요약

애니메이션 '퇴마록'(감독 김동철)

애니메이션 '퇴마록' 스틸컷. ㈜쇼박스 제공애니메이션 '퇴마록' 스틸컷. ㈜쇼박스 제공
때로 영화의 러닝타임은 영화관을 나선 후에도 이어집니다. 때로 영화는 영화관을 나서는 순간 비로소 시작합니다. '영화관'은 영화 속 여러 의미와 메시지를 톺아보고, 영화관을 나선 관객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 스포일러 주의
 
2025년 관객들을 만나게 될 애니메이션 '퇴마록'의 가장 큰 숙제는 아마 원작자와 원작 팬들의 기대를 만족시키는 것일 거다. 다행히 누적 판매 부수 1000만 부에 달하는 베스트셀러이자 지금까지도 '한국 오컬트 소설'의 시초로 평가받는 소설 <퇴마록>의 영상화라는 '독이 든 성배'를 받아 든 애니메이션 '퇴마록'이 성공적으로 첫걸음을 뗀 모양새다. 이에 아동/어린이 대상 애니메이션이 주류를 이뤘던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성인층을 타깃으로 성공을 거둘지 역시 주목된다.
 
수백 년간 은거하던 해동밀교의 145대 교주가 생명을 제물로 바쳐 절대 악(惡)의 힘을 얻기 위한 의식을 시작한다. 해동밀교의 다섯 호법들은 그를 막기 위해 힘을 보태줄 새로운 인물을 찾아 나서고, 파문당한 신부 박윤규(최한), 무공을 위해 밀교를 찾은 현암(남도형), 사건의 중심에 있는 예언의 아이 준후(정유정)가 합세해 거대한 악에 맞선다.
 
지난 1993년 하이텔 연재를 시작으로 첫선을 보인 오컬트 어반 판타지 소설 <퇴마록>(*참고: 이하 소설은 <>로, 애니메이션은 ''로 표기)은 2013년 기준 누적 판매량 1000만 부로, 국내에서 제일 많이 팔린 장르 소설이다. 그만큼 오래된 팬층이 두터운 작품이다.
 
이미 한 차례 영화화로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겼던 만큼, 다시금 영상화하는 것은 원작 팬들은 물론 30년이 지난 현재의 관객들 모두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부담과 책임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
 
애니메이션 '퇴마록' 스틸컷. ㈜쇼박스 제공애니메이션 '퇴마록' 스틸컷. ㈜쇼박스 제공
이러한 상황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한 '퇴마록'은 원작의 유산을 이으면서도 애니메이션만의 길을 걷겠다고 선언했고, 그 선언은 유의미한 방향으로 나아갔다. 여기에는 원작 작가가 크리에이터로 참여하면서 소설의 정체성을 지켰다는 점이 한몫한다.
 
원작자를 참여시켜 원작의 정체성을 지킨 '퇴마록'은 30여 년이 지난 세월은 물론 그동안 수많은 오컬트 장르물을 접한 관객들, 그리고 원작을 모르는 관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도 절충안을 찾아냈다. 바로 젊은 관객에게 익숙한 작화 스타일과 '오컬트 액션'의 부각이다.

우선 '퇴마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캐릭터 디자인이다. 1998년 개봉한 영화는 소설에 묘사된 캐릭터와 다른 이미지라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애니메이션 속 박 신부, 이현암, 장준후, 현승희 등 주요 4인방은 소설 속 묘사와 흡사하게 구현되며 이러한 불안을 불식시킨다.
 
실사가 아닌 애니메이션이기에 원작 속 다양한 초자연적인 힘을 구현하는 데 장애가 될 제약은 사라졌다. 원작은 무공과 기독교, 정확히는 구마와 동양의 도술, 힌두교 신화 등 동서양을 넘나드는 요소가 혼합된 복합적인 오컬트다. 그렇기에 애니메이션은 이러한 요소들을 살리는 데 있어서 최적화된 장르고, 과연 이를 어떤 식으로 보여줄 것인가가 '퇴마록'의 중요한 연출 포인트다.
 
애니메이션 '퇴마록' 스틸컷. ㈜쇼박스 제공애니메이션 '퇴마록' 스틸컷. ㈜쇼박스 제공
'퇴마록'이 선택한 건 4인방이 가진 초자연적인 능력에 색을 부여하고, 속성에 따라 조금씩 표현 양식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박신부의 '오오라', 현암의 '무공', 준후의 '인드라의 뇌전' 그리고 짧게나마 드러난 승희의 '애염명왕의 힘'이 각자의 색채를 지닌 채 큰 스케일로 표현된다. 실사라면 다소 과장된 방식이 애니메이션에서는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펼쳐진다. 즉 현실적인 감각이 강해 '어반 판타지'로 불렸던 소설과 달리 애니메이션은 조금 더 '판타지'적인 측면이 두드러진다.

또한 '퇴마록'은 단순히 오컬트 액션의 스펙터클함뿐 아니라 종교와 신비 등 동양과 서양의 분위기와 특색을 한 곳에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서구적인 분위기의 캐릭터와 동양적인 특색을 드러내는 탱화, 가장 서양적인 악마 아스타로트와 시바나 칼리 등을 떠오르게 하는 악신으로 변한 서 교주의 모습 등은 <퇴마록>이 가진 다양한 문화적 요소를 녹여내되 애니메이션만의 방식으로 재창작한 결과물이다.

시각적인 부분에서의 고민은 작화나 디자인에 그치지 않는다. 액션과 판타지적 요소가 강화된 '퇴마록'은 '오컬트 블록버스터'라는 장르를 표방한 만큼 액션 영화 혹은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다양한 샷과 앵글, 연출 효과를 활용해 시각적인 볼거리를 극대화한다. 악신으로 변한 서 교주와의 맞대결에서는 액션 영화의 단골 촬영 기법인 슬로우모션을 사용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애니메이션 '퇴마록' 스틸컷. ㈜쇼박스 제공애니메이션 '퇴마록' 스틸컷. ㈜쇼박스 제공
그러나 단순히 시각적인 측면만 화려하다고 팬들과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는 없다. 특히 '퇴마록'은 앞으로 펼쳐질 4인방의 첫 시작점인 만큼, 각 캐릭터를 소개하고 그들을 하나로 묶는 것이 이야기 전개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하늘이 불타던 날'을 애니메이션 프로젝트의 시작점으로 선택하면서, 각 캐릭터가 가진 트라우마와 아픔을 드러내고 비슷한 아픔을 겪은 이들이 서로의 아픔을 공감하고 힘을 합치는 과정을 엮어내는 게 중요했다.
 
그리고 이를 짧은 러닝타임 안에서 이러한 과정을 관객들에게 설득시키는 것이 관건이다. 이에 '퇴마록'은 클로즈업샷을 자주 활용한다. 각 인물이 지닌 슬픔과 분노 등의 감정을 드러내기 위해 캐릭터의 표정과 눈빛을 실사만큼이나 공을 들여 구현했고, 이를 클로즈업했다. 그렇기에 감정의 공명이 더 쉽게 이뤄진다.
 
캐릭터의 감정에 연결되기 쉬웠던 것은 성우들의 전문적인 목소리 연기의 공도 크다. 각 캐릭터의 성격과 특징을 잡아낸 성우들의 목소리 연기는 그 자체로 캐릭터에 녹아들며 몰입시킨다. 최한, 남도형, 정유정, 김연우 성우의 인장이 찍힌 네 명의 캐릭터는 이제 그들의 목소리로 관객들의 뇌리에 남게 될 것이다.
 
애니메이션 '퇴마록' 스틸컷. ㈜쇼박스 제공애니메이션 '퇴마록' 스틸컷. ㈜쇼박스 제공
이처럼 '퇴마록'은 원작의 유산과 현대적인 감성 사이에서 절충안을 찾아가며 성공적으로 프로젝트의 시작을 열었다. 그러나 원작을 아는 관객이라면 85분 안에 담긴 방대한 설정과 압축된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지만, 원작을 모르는 관객에게는 낯설고 어렵게 다가올 수 있다. 그렇기에 영화를 본 관객들이 '퇴마록'을 더 제대로 즐기고자 한다면 원작 소설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또 하나, 아쉬움 아닌 아쉬움은 후속편에 대한 기약 없는 기다림이다. 쿠키 영상에서 영화 초반 잠깐 자신의 능력을 펼치고 사라진 승희 캐릭터가 등장하며 후속편을 예고한다. '퇴마록'을 만족스럽게 본 관객이라면 쿠키 영상은 갈증처럼 남을 것이다. 그저 제작사에서 하루빨리 후속편을 내놓길 바랄 수밖에 없다.

그리고 '퇴마록'이 중요한 이유는 한 가지 더 있다. 그동안 국내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아동/어린이 관객을 타깃으로 제작되어 온 것과 달리 '퇴마록'은 '성인'을 타깃으로 한 작품이다. 미국과 일본 시장에 밀려났던 국산 애니메이션 산업이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지 '퇴마록'으로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퇴마록'과 제작사 로커스의 도전이 과연 합격점을 받고, 애니메이션 시장을 확장할 것인지 지켜보는 것 역시 이번 영화의 외적 관전 포인트다.
 
85분 상영, 2월 21일 개봉, 쿠키 1개 있음, 12세 이상 관람가.

애니메이션 '퇴마록' 메인 포스터. ㈜쇼박스 제공애니메이션 '퇴마록' 메인 포스터. ㈜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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