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스틸컷.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때로 영화의 러닝타임은 영화관을 나선 후에도 이어집니다. 때로 영화는 영화관을 나서는 순간 비로소 시작합니다. '영화관'은 영화 속 여러 의미와 메시지를 톺아보고, 영화관을 나선 관객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스포일러 주의
'괜찮다'는 말은 때로는 만병통치약 같기도 하고, 비타민 같기도 하다. 괜찮지 않을 때도 괜찮은 척해야 하고, 하기 싫은 걸 하면서도 괜찮은 척해야 하고, 슬프면서도 괜찮은 척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필요한 한마디는 '안 괜찮아도 괜찮다'라는 거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는 그런 영화다. 괜찮지 않을 때 괜찮냐고 묻고, 안 괜찮아도 괜찮다고 해주는 그런 작은 위로 말이다.
혼자서는 서툴지만 함께라서 괜찮은 이들이 서로의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감독 김혜영)는 한국 최초 제74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수정곰상 제너레이션 K플러스 작품상을 받은 작품이다. 김혜영 감독은 장편 영화 데뷔작으로 값진 수상의 영예를 품에 안았다.
영화의 포스터와 오프닝 타이틀을 살펴보면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다. 영ㅎ와는 물음표와 반점 그리고 느낌표의 순서대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영화의 주인공 인영(이레)은 공연을 앞둔 인영은 새 신발을 챙겨주지 않은 엄마(김지영)에게 서운함을 토로하며 짜증을 낸다. 그게 엄마와의 마지막 대화다. 엄마가 사고로 떠나고 홀로 남은 인영은 애써 밝고 씩씩하게 생활한다. 누군가 '괜찮아?'라고 물으면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야 한다는 듯이 말이다. 꿋꿋하게 일상을 살아가려는 인영의 앞은 생각 이상으로 녹록지 않다.
밀린 월세에 집주인은 집을 빼달라고 하고, 공무원들은 후견인이 없는 인영을 보호시설로 입소시키려고 하루가 멀다 하게 찾아오고, 예술단 친구들은 부모도 돈도 없이 지원을 받아 다니는 인영을 못마땅해한다. 그럼에도 인영은 웃고, 씩씩하고, 꿋꿋하다.
영화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스틸컷.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그런 인영은 괜찮지 않은 또 다른 삶을 사는 마녀 감독 설아(진서연)를 만나고, 서로의 외로웠던 부분을 채워주면서 가족으로 거듭난다. 처음엔 차갑고 완벽한 어른인 것 같던 설아는 인영을 만나며 자신을 압박했던 완벽함을 내려놓고 따뜻함을 찾아간다. 나이와 지위를 떠나 서로가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며 변화하는 것이다. 아이를 끌어주고 변화시키는 건 어른만이 아니다. 어른 또한 그런 아이를 통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어른도 여전히 성장 중이고,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고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 실수해도 괜찮았던 시기를 지나 성장을 마쳤지만, 어른들도 여전히 매일 매 순간 처음 만나는 일들로 가득하다. 그 과정에서 실수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해야 하는 건 아이나 어른이나 마찬가지다. 영화는 그런 부담 속에서 괜찮은 척 매일을 버텨내야 하는 어른들에게도 안 괜찮아도 괜찮다고, 우리는 지금도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다고 속삭인다.
인영이 괜찮지 않은 속에서도 위로를 받은 또 다른 어른은 손석구가 연기한 약사 동욱이다. 그는 인영에게 시답잖은 농담을 건네고 장난도 치고, 아기상어 비타민을 건네면서 말도 안 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일견 가벼워 보이는 동욱은 사실 속 깊은 어른이다. 인영이의 눈높이에서 인영이가 불편해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그만의 방식일 뿐이다. 어쩌면 그런 동욱이야말로 인영에게 필요했던 어른이자 우리에게도 필요하고, 또 닮고 싶은 어른의 모습일 것이다.
영화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스틸컷.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영화에서 삶의 질풍이 무섭게 소용돌이치는 건 인영뿐만이 아니다. 예술단의 센터 나리(정수빈)도 남들 앞에서 애써 괜찮은 척하는 인물이다. 엄마의 혹독한 통제 속에 나리는 점차 말라가지만, 결코 드러낼 수 없다. 그런 나리는 엄마도, 돈도, 아무것도 없으면서도 웃는 인영이 못마땅하다. 일종의 질투다. 자신과는 달리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워 보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애써 괜찮은 척 하루하루를 버텨가는 아이들에게 예술단 단원이란 지위를 부여한 것은 유의미하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웃는 얼굴로 무대에 서야 하는 아이들은 매일같이 군무를 연습한다. 무대 뒤에 어떤 치열함과 고뇌, 질투와 좌절이 있더라도 무대 위에서는 밝게 웃어야 한다. 그리고 '군무'라는 건 말 그대로 여러 사람이 무리를 지어 추는 춤이다. 결국 아이들의 질투와 회복, 성장과 화합을 보여주는 데 가장 적합한 설정이다.
아이들은 춤을 통해 싸우고 부정적인 감정을 주고받지만, 또 춤을 통해 화해하고 하나로 뭉친다. 괜찮지 않았던 아이들이 서로에게 각자의 방식으로 괜찮냐고 묻는다. 인영도 나리도 안 괜찮아도 괜찮다고 해야 했던 마음에서 벗어나 비로소 진정으로 '괜찮아!'를 외친다. 그렇게 아이들은 무대 위에서 웃어야 해서 웃는 게 아니라 진정 즐거운 마음에 웃으며 춤을 추게 된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는 이와 같은 아이와 어른의 성장과 변화뿐만 아니라 세대 문제도 짚어낸다. 영화에서 '춤'이라는 건 아이들 간 긴장을 만들고 화해와 화합으로 가는 과정과 성장을 보여주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세대 갈등을 풀어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예술단 센터 자리를 두고 나리는 엄마와 갈등하지만, 그 갈등을 푸는 것도 '춤'이다. 또 자신의 방식만 고집하던 설아는 인영을 통해 현대 음악(아이돌 음악)을 알게 되고, 그것이 마냥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 생각은 예술단 무대로 이어진다.
육고무 등 고전무용 레퍼토리에 인영을 통해 알게 된 음악으로 피날레를 장식한다. 전통과 현대,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가 어우러진 무대 위에서 아이들은 날아오르고, 설아와 나리 엄마 등 기성세대들은 그들을 향해 박수를 보낸다. 이처럼 하나로 모일 수 없을 것만 같던 것들이 어우러지는 순간들에 영화가 전하고자 했던 모든 메시지가 녹아있다.
영화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스틸컷.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사실 익숙한 내용이다. 그러나 이 익숙한 메시지를 잊고 사는 우리에게 영화는 다정하게 다시금 상기시켜 준다. 이레가 연기한 인영이라는 캐릭터가 안겨주는 귀여움, 중간중간 파고드는 말맛과 과도하지 않은 판타지 연출, 가벼움 속 묵직하게 마음을 건드는 대사까지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관객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든다.
이레는 전형적인 성장 드라마의 주인공 캐릭터를 식상하지 않게, 오히려 '귀엽다' '사랑스럽다'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연기했다. 이레가 연기했기에 인영이 완성됐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영화를 보는 내내 인영을 응원하게 한다. 청소년의 문턱을 넘어선 이레가 자신의 스펙트럼을 얼마나 확장해 나갈지 기다려지는 이유다.
정수빈 역시 압박으로 예민해진 무용단 센터 나리를 맡아 열연을 펼치며 그의 행보가 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지 입증했다. 진서연 역시 기존에 알고 있던 진서연과 우리가 몰랐던 진서연의 모습을 동시에 드러내며 또 다른 모습을 기대하게 만든다.
드라마 '멜로가 체질' '유니콘'을 통해 실력을 선보였던 김혜영 감독은 첫 장편 데뷔작에서 안정적인 연출력으로 관객들에게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라는 비타민을 선물했다. 어떻게 보면 가장 솔직하고 냉철하다고 할 수 있는 11~14세로 이뤄진 수정곰상 심사위원의 선택을 받은 이유가 바로 영화에 있다. 감독이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로 관객들의 선택을 받을지 궁금해진다.
102분 상영, 2월 26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영화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메인 포스터.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