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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와 폭력의 리듬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노컷 리뷰]

재즈와 폭력의 리듬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노컷 리뷰]

핵심요약

외화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감독 페르난도 트루에바, 하비에르 마리스칼)

외화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 스틸컷. 찬란 제공외화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 스틸컷. 찬란 제공
※ 스포일러 주의
 
세상에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늘 예술과 폭력이 공존했다. 한쪽에서 예술로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했다면 또 다른 쪽에서는 폭력과 억압으로 사람들을 통제한다.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는 상반된 두 세계가 만나는 지점에 선 피아노 연주자를 통해 보사노바의 리듬과 폭력의 잔혹함을 연주한다.
 
보사노바 황금기를 책으로 담으려던 기자 제프 해리스는 우연히 감미로운 피아노 연주를 듣고, 그 주인공 테노리우 주니오르에 매료된다. 하지만 30년 넘게 음악 활동을 멈춘 그의 삶은 미스터리로 가득했다. 제프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여러 음악가와 인터뷰를 거듭하며 숨겨진 진실을 파헤친다. 이를 통해 밝혀진 충격적인 사실은 테노리우 주니오르가 아르헨티나 투어 중 실종되었다는 것이다.
 
'치코와 리타'를 공동 연출한 스페인의 두 거장 페르난도 트루에바와 하비에르 마리스칼 감독이 이번엔 보사노바의 세계와 실종된 피아노 연주자의 미스터리를 뒤쫓는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로 돌아왔다. 치밀한 조사와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완성된 영화는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라고 부를 수 있다.
 
외화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 스틸컷. 찬란 제공외화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 스틸컷. 찬란 제공
1960년대 재즈 삼바의 시대를 풍미한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 한 명으로 인정받아 온 테노리우 주니오르를 중심으로 한 영화의 흐름은 보사노바(1950년대 말 삼바와 쿨 재즈가 결합해서 생긴 브라질 대중음악)를 닮았다. 느긋한 코드로 보사노바의 황금기를 조명하다가도 자연스럽게 테노리우 주니오르와 그의 실종 사건으로 시선을 집중시킨다.
 
그 사이 재즈 애니메이션이었던 영화는 군부 독재의 폭력이란 시대의 그림자로 변화한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영화에 깔리는 재즈의 선율은 미스터리 사이에서 음악 영화로서의 정체성을 증명한다. 그렇기에 이미 죽은 테노리우를 이야기하지만, 음악을 통해 테노리우는 영화 내내 살아서 움직인다.
 
테노리우 실종 사건의 전말을 추적하는 이야기가 촘촘하면서도 그 내용이 상세한 건 실제 페르난도 트루에바 감독이 1975년 이후 테노리우 주니오르 행보의 미스터리를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제작됐기 때문이다.
 
외화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 스틸컷. 찬란 제공외화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 스틸컷. 찬란 제공
트루에바 감독은 지난 2006년부터 2007년까지 총 2년에 걸쳐 약 150명을 인터뷰한 끝에 테노리우가 아르헨티나에서 실종됐으나 당시의 군부 독재 정권으로 인해 제대로 진상 규명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를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하면서 영화는 방대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사실성을 잃지 않되, 테노리우를 영화에서 살아 숨 쉬게 했다.
 
다큐멘터리에는 종종 재연 장면이 들어간다. 실사였다면 배우를 통해 재연으로 과거를 보여주거나 이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과거 자료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테노리우를 보여줬을 것이다. 그러나 애니메이션화되면서 재연의 제약이 사라지고, 자연스럽게 지금은 만날 수 없는 테노리우를 스크린에 되살렸다.
 
덕분에 실사는 아니지만, 실사 이상의 현실성과 현재성을 지니며 테노리우의 음악과 그의 실종을 마치 땅에 발붙인 것처럼 가까우면서도 테노리우를 살아있는 존재로 스크린에 존재하게 한다.
 
외화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 스틸컷. 찬란 제공외화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 스틸컷. 찬란 제공
이처럼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는 음악 영화이기도 하지만,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들'이 테노리우를 쏘게 된 과정을 추적하며 시대의 그림자를 현재에 소환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테노리우는 1976년 아르헨티나 투어 중 실종됐다. 테노리우가 실종된 시기는 1970~80년대 엄혹했던 우리나라의 군부 독재 시기를 닮았다.
 
1954년 파라과이에서 군부 세력의 쿠데타가 발생한 이후, 군사독재 광풍이 라틴 아메리카 전역을 뒤덮었다. 이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로 번져 각각 1964년과 1976년에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군사정권이 들어섰다. 그리고 아르헨티나 쿠데타가 완성되기 1년 전인 1975년, 칠레 피노체트 정권을 중심으로 물밑에서 '콘도르 작전'이라는 끔찍한 음모가 계획됐다.
 
미셀 고메스 감독이 영화로도 만든 '콘도르 작전'은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볼리비아, 파라과이, 우루과이 등 6개국의 군부 세력이 합동으로 세력을 조직하고 정보망을 공유해 '반공'이라는 명분으로 반체제 인사, 더 나아가 민간인을 탄압한 잔혹한 작전이다. 군부 세력은 좌파 지식인들을 납치, 구금, 살해, 암매장을 서슴지 않았다.
 
특히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 육군 총사령관 중심의 아르헨티나 군부 세력이 자행한 '더러운 전쟁'은 악명이 상당히 높아서, 1976년부터 1983년까지 납치·고문·테러로 희생 혹은 실종된 사람의 수가 최대 3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외화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 스틸컷. 찬란 제공외화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 스틸컷. 찬란 제공
엄혹한 시기,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는 군부 독재정권의 폭압 속에 자신의 재능을 미처 만개하지 못하고 '실종자'라는 이름으로 남게 됐다.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는 시대의 예술가이자 한 개인의 비극을 발굴해 파헤치고, 독재정권이 어떻게 한 시대를 폭력과 암흑으로 뒤덮었는지 실상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쥬라기 월드' 시리즈를 비롯해 '인디펜던스 데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토르: 라그나로크' '위키드' 등을 통해 우리에게도 익숙한 제프 골드블럼은 재즈 피아니스트로서도 활동하는 배우다. 재즈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그가 제프 해리스의 목소리 연기를 맡아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 속 재즈의 세계로 관객들을 보다 깊게 빠져들게 한다.
 
104분 상영, 1월 29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외화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 포스터. 찬란 제공외화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 포스터. 찬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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