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백수아파트'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때로 영화의 러닝타임은 영화관을 나선 후에도 이어집니다. 때로 영화는 영화관을 나서는 순간 비로소 시작합니다. '영화관'은 영화 속 여러 의미와 메시지를 톺아보고, 영화관을 나선 관객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스포일러 주의
진짜 무서운 사람은 동네 오지라퍼이며, 한가한 백수가 제일 무섭다고 한다. 영화 '백수아파트'는 오지라퍼 백수의 층간소음 범인 잡기 여정을 통해 왜 지금 세상에 '오지라퍼'가 필요한지 그 이유를 유쾌하고 다정한 코믹 추적극으로 증명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조카와 함께 동네의 모든 민원을 나서서 처리하는 오지라퍼 백수 거울(경수진)은 동생 두온(이지훈)과 다투고 반강제적으로 독립한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입주한 백세아파트에서의 첫날 밤 새벽 4시, 거울은 알 수 없는 소리에 잠을 설친 거울은 아파트 주민인 경석(고규필)과 지원(김주령), 샛별(최유정)을 만나게 된다. 그렇게 거울은 그들과 함께 6개월째 하루도 빠짐없이 쿵쿵거린다는 층간소음의 근원을 둘러싼 비밀을 파헤치게 된다.
우리는 직업이 없는 사람을 '백수'라 부른다. 주인공 거울이는 백수다. 그것도 '주제넘게 아무 일에나 쓸데없이 참견하다'라는 뜻을 가진 '오지랖 넓다'라는 관용구처럼 아무리 사소한 일이더라도 누군가가 불편해한다면 참지 않고 해결하기 위해 나서는 인물이다.
영화 '백수아파트'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그런 오지라퍼 '백수' 거울이가 '백세'아파트에 이사 가며 층간소음 범인을 잡는 이야기가 영화의 주된 줄거리다.
트레이닝복에 빨간 조끼를 입고 삼선슬리퍼를 끌고 다니며 여기저기 동네일에 참견하는 거울은 말 그대로 '오지라퍼 백수'고, 좋게 말하면 홍반장을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다. 흔히 '오지랖'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심지어 '백수'다. 역시나 부정적인 뉘앙스의 단어다. 백수와 오지랖이 결합한 거울이는 여러모로 강력한 존재다.
우리가 처음 만나는 거울이는 전형적인 백수의 모습이다. 누군가는 백수가 왜 저렇게 오지랖이 넓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는 거울이의 층간소음 범인 찾기 여정을 통해 왜 거울이가 추운 날씨에도 그런 옷차림으로 여기저기 오지랖을 부리며 다니는지 보여준다.
영화 '백수아파트'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층간소음 범인 찾기 과정은 거울이에게는 자신의 슬픔과 죄책감과 마주하고, 동생 두온과의 관계를 회복해 나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거울이 가진 슬픔과 죄책감의 근원은 영화 안에 조그맣게 단서들을 심어놓으면서 짐작하게 한다. 그 트라우마는 거울이가 더더욱 오지랖을 부리게 만든 배경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관심'이 우리의 일상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작은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거울이의 오지랖은 소동극의 형식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표면적인 것과 이면의 것들, 사전적 정의와 실질적으로 마주하는 정의 등 하나의 단어, 하나의 사건이 가진 이중적인 의미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백수아파트'의 가치 중 하나다.
표면적인 뜻 그대로 가볍게 층간소음 범인을 찾는 게 주목적인 것처럼 보인 영화는 거울이의 옷차림 이면에 깊은 슬픔과 죄책감이 담겼던 것처럼, 여러 가지 사회적 이슈와 그 이슈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거울과 두온의 관계 뒤에 숨겨진 그들의 마음을 마주하게 한다.
영화 '백수아파트'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층간소음, 재건축 비리, 어린이 통학버스 하차 의무화 모두 우리의 일상과 밀접한 이슈이자 사회적 약자와 관련된 이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표면적인 이슈, 사전적인 정의 뒤에는 복잡한 속내와 이해관계, 비리와 갈등이 있다. 보이는 것만으로 섣불리 판단해선 안 되는 일들도 있다.
결국 누구도 선뜻 앞장서서 나서기 힘든 일들, 한 발짝 더 나아가 들여다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영화는 이를 '오지랖'이라는 단어로 설명한다.
층간소음, 재건축 비리, 어린이 통학버스 하차 확인은 모두 조금의 관심에서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일들이다. 나 하나의 조그만 관심이 모여 '우리'의 관심으로 그 힘을 넓혀간다면, 누구도 불쾌하지 않고, 누구도 피해 보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 거울이가 먼저 나서서 아파트 주민들의 힘을 끌어내고, 문제를 해결하며 백세아파트 주민들이 아파트 이름처럼 오랜 시간 각자의 평안을 찾을 수 있도록 만든 것처럼 말이다.
극 중 거울이는 "누군가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우리 모두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이것이 영화가 거울이의 입을 빌려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다. 거울이와 마을 주민들의 오지랖이 만든 결과물이고, 그것이 각박한 우리 삶과 세상에 필요한 다정한 관심이자 필요한 참견일지 모른다.
영화 '백수아파트'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이처럼 '백수아파트' 주인공 거울이를 마주하며 우리는 백수, 오지랖, 층간소음, 재건축 등 우리가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단어와 이슈 이면의 것들을 다시 한번 바라보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주인공 거울이는 우리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거울'이 되어준다. 슈퍼맨처럼 정의의 빨간 조끼를 입고 머리를 질끈 묵은 채 행동에 나서는 거울이를 현실에서도 자주 만나고 싶다.
'백수아파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특별한 건 아니다. 어쩌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이자 가치다. 그러나 너무 잘 알기에 잊고 있던, 그리고 점자 잊히고 있는 가치를 개인과 사회와 엮어내며 잔잔하지만 귀엽게 그려내며 다시금 상기시킨다. 이루다 감독의 오지랖으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가치, 누군가 먼저 해주길 바라는 이야기가 스크린을 거쳐 잔잔하게 스며든다.
여기에 경수진, 이지훈, 고규필, 김주령, 최유정 등 배우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캐릭터를 열연으로 펼쳐내며 잔잔하지만 다정한 소동극에 푹 빠져들게 했다. 그들의 호연 덕분에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빛났고, 그로 인해 아깝지 않은 97분을 누릴 수 있었다.
97분 상영, 2월 26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영화 '백수아파트' 포스터.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