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유상증자는 대부분 개인투자자에게 달가운 소식이 아닙니다. 회사가 빚을 갚거나 새로운 투자를 하기 위해 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지분가치가 희석되기 때문이죠.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돼 회사가 성장하고 미래 이익이 늘어난다면 주주가치도 확대하기 때문에 유상증자가 꼭 '악재'만은 아닙니다.
하지만 불확실성이 가득한 환경 속에서 장기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보니 '환영'받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 현금‧부동산 등 자산과 영업이익 등 현금흐름을 활용하거나 회사채 발행 등 다른 조달 방법이 있는 회사가 왜 유상증자를 선택했는지 '의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죠.
답은 주가가 말해줍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20일 이사회를 열고 3조 6천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의했습니다. 국내 기업이 실시한 유상증자 중 역대 최대 규모인데요.
유상증자 계획은 이날 장 마감 이후 공개됐습니다. 이에 따라 다음날인 21일 주가는 전 거래일보다 13.02% 하락한 62만 8천원으로 떨어졌습니다.
앞서 삼성SDI는 지난 14일 이사회를 통해 2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의했습니다. 당일 개장 전 공시됐고, 주가는 전 거래일보다 6.18% 내린 19만 1400원으로 52주 신저가를 경신했습니다.
물론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삼성SDI에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점에서 시장의 이견은 없습니다.
그러나 '왜 유상증자인가'라는 물음표가 생깁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경우 지난해 영업이익 1조 7천억원, 영업현금흐름 1조 4천억원, 수주잔고 32조원 등 성장세를 기록 중입니다. 그런데 2030년까지 계획한 투자 규모는 연 1조원 수준이기 때문에 유상증자라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 아쉽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iM증권 변용진 연구원은 "회사 입장에서는 역대 최고 수준의 현재 주가가 증자하기에 최적의 조건이기 때문에 시장의 질책을 일부 감수하고서라도 높은 주가를 최대한 활용해 주주이익보다는 부채비율 최소화 및 이자비용 절감 등 회사의 이익을 더 우선시했다는 비판도 일견 피할 수 없어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따라 다올투자증권과 DS투자증권은 투자의견과 목표주가를 모두 '하향' 조정했고, 삼성증권은 목표주가를 높이면서도 투자의견을 한 단계 낮췄습니다.
삼성SDI에 대해서도 비슷한 지적이 나옵니다. 지난해 말 기준 장부가 9조 9천억원 수준인 삼성디스플레이 지분 15%를 보유했는데도 유상증자를 결정했기 때문이죠.
LS증권 정경희 연구원은 "이미 보유 중인 매각 가능한 자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자본 펀딩 방식을 취한 점은 주식 투자자 관점에서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고 평가했습니다.
DB금융투자 안회수 연구원은 "이번 증자 결정으로 부진한 주가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며 신주 발행가 확정에 따라 목표가 수정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습니다.
눈에 띄는 공통점은 또 있습니다.
지난해 현대차증권과 이수페타시스가 유상증자를 결정했을 때와 비슷한 분위기라는 점인데요. 당시 상법 개정안 처리를 앞두고 유상증자가 확대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전한 바 있습니다.
(참고기사 : 배달 온 치킨에 닭다리가 없다?…유상증자에 '부글부글'[계좌부활전])
지난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공교롭게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삼성SDI 모두 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13일 직후 유상증자를 선택했습니다.
상법 개정안의 핵심은 이사의 주의 의무를 기존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이고요. 상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주주가 반대하는 유상증자는 상당히 어려워질 전망입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런 상법 개정안을 적극 지지하고 있습니다. "자본시장 선진화와 관련해 모든 것을 걸고 험한 길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는 국민의힘에 "직을 걸고서라도 반대한다"고 날을 세웠고, 한국경제인협회에는 공개 토론을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금감원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삼성SDI의 유상증자 심사를 '신속'하게 처리할 방침입니다. 금감원이 주주가치 보호를 위해 지난달 도입한 중점심사 대상에 두 회사를 각각 1호와 2호로 선정했습니다. 이는 일주일 안에 집중적으로 심사하고 최소 1회 이상 회사와 대면 협의를 진행하는 제도입니다.
금감원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대해 "유상증자를 추진한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면서 "신속하게 자금을 조달하도록 최대한 역량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고요. 앞서 이 원장은 "삼성SDI의 투자 건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며 "최대한 신속히 투자자금 조달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증권신고서 심사를 처리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오는 6월 6일 임기가 끝나는 이 원장의 시선은 어디에 닿았을까요. "진심은 말이 아니라 발이 어디로 향하는지 봐야 한다"는 여의도 격언처럼, 투자자들은 이 원장의 말이 아니라 발을 바라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