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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이거밖에 안 되는 민주주의

류영주 기자류영주 기자
히틀러를 수상으로 임명한 당시 독일의 엘리트 보수진영은 그가 적임자였기 때문에 영입한 것이 아니었다. 탐탁치 않게 여기다 못해 정치에 대해 뭘 알겠냐며 히틀러를 무시했다. 그저 인기 있는 아웃사이더를 이용해 정치적 경쟁자들을 제거하는 데 써먹고자 했고, 나중에 얼마든지 그를 제어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결과는 우리가 아는대로다.

색깔이 쨍한 신제품을 좋아하는 건 시대와 국가, 민족을 가리지 않는 모양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기성 정치권은 썪었고, 기존 정치 기득권을 해체하다 못해 상대를 쓰러뜨리겠다고 공공연히 선언하는 정치권 밖 인물에 열광하는 경우가 잦다. 바다 건너 트럼프도 이 맥락 안에 있다. 그래서 히틀러만큼 사악하지는 않지만, 히틀러만큼 정치엘리트와 거리가 있던 사람(들)이 권력을 잡는 경우가 생긴다. 결과는 우리가 보는 대로다.

기존의 정치엘리트들은 충분히 제어 가능할 것으로 믿었던 신제품이 되레 당을 장악하고, 대중의 증오와 혐오를 강력한 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에 속수무책이다. 세계관이 달라도 상대를 정당한 정치적 경쟁자로 인식했던 과거는 사라지고, 상대를 그저 절멸의 대상으로 보고 끝장내자는 구호만 난무한 지 오래됐다. 최근 몇 주간 광화문의 특정 지역을 안전하게 지나기 위해 필요했던 건 확신에 찬 편향적 정치색, 그게 전부였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우리가 그토록 믿어 의심치 않았던 어떤 절대선, 민주주의라는 게 이토록 허약한 것이었나? 최대한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더 많은 민주주의, 그들이 지지하는 정치인들에게 힘을 실어주려고 했던 것이 극단적 당원을 양산하고 정치 양극화를 가져오는 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겨우 이런 꼴을 보자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심장을 걸고 민주주의를 지켰던 것인가.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데 중요한 건 분명 국민이지만 제도적 민주주의가 완성된 상태에서 즉각적이고 실질적으로 기능하는 것은 정당이다. 실제로 냉전이 끝난 뒤 민주주의의 붕괴는 대부분 군인이 아니라 선출된 지도자의 손에 이뤄졌다. 2기 트럼프의 미국과 탄핵 정국의 한국에서 예언서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저자들은, 정당이 일종의 '사회적 거름망', '민주주의의 문지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다시 돌아본다. 화합을 이끌어야 할 종교인들까지 나서 상대를 없애야 한다고 부르짖는 작금의 사태, 우리의 정당은 거름망과 문지기의 역할에 얼마나 충실했나? 수십 대의 차벽으로 둘러싸인 헌법재판소와 몇백 미터를 사이에 두고 서로에게 퍼붓는 증오는 어떤 결말을 맞을 것인가? 정치적 경쟁자를 향한 지저분한 대응에 편승해 거둔 승리는 얼마나 불명예스러운가? 그러고보니 '명예'라는 건, 과거의 단어가 됐다.

지금 조건만 보면 비관적 전망 외의 것을 상상하기 어렵다. 만약 승리한다고 해도 생채기 가득한 영광일 뿐. 다음 권력자는 핏발로 가득찬 눈동자들과 쓰레기 산에 오르더라도 상대를 짓밟아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를 물려받게 될 것이므로. 이대로라면 비극은 필연적으로 반복될 운명이다. 아, 운명을 거스르는 존재일 때 인간이 위대하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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