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연합뉴스12·3 비상계엄의 진상규명을 향해 달려온 내란특검이 내일(14일) 수사기간 종료를 앞두고 막바지에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을 재판에 넘겼다.
앞서 내란특검이 기소한 피고인들의 공소장엔 주연으로 등장한 적 없는 이름, '김건희'가 박 전 장관 공소장엔 비중 있게 나온다. 박성재와 윤석열·김건희는 '정치적 공동체'라며 박 전 장관 범행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배경사실로 넣었다.
박 전 장관은 대통령 부부를 위해 궂은일을 기꺼이 해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의 노력만으론 충분치 않았고, 윤 전 대통령은 결국 '비상한 조치'를 결단했다. 아래 박 전 장관 공소장에 다 드러나지 않은 '진상'은 약 보름 남은 김건희 특검 또는 여권이 추진하는 2차 종합 특검 수사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이하 중복되는 직함은 생략)
영부인에 수시로 독촉 메시지 받은 법무부 장관
김건희 씨. 사진공동취재단2024년 5월 5일 오후 2시쯤 김건희는 박성재에게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낸다. 이틀 전(5월 3일) 이원석 검찰총장이 '김건희 명품백 사건 전담수사팀 설치 지시'를 한 것에 대한 분석이 담긴 내용이었다.
| ▶ 2024.5.5. 14:04 '김건희→박성재' 텔레그램 메시지 |
[검찰 관련 상황 분석](보안요)- 특별수사팀 구성 지시는 서울중앙지검이나 대검 중간급 간부와도 상의 없이 지난 금요일 총장의 전격적 지시라고 함. 지난 겨울 서울중앙지검 김창진 1차장이 특별수사팀 구성이 필요하다고 보고를 했다는 부분이 사실인지 법무부 검찰국장 등을 통해서 확인 필요함.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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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저녁 7시 28분 김건희는 박성재에게 또 메시지를 보낸다. 김정숙·김혜경에 대한 수사 미진 이유와 대검에서 해당 수사를 막은 행위가 있었는지 의문 제기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에 대한 수사가 방치된 것에 대한 문제제기도 필요하다고 했다.
김건희가 명품백 수사팀 관련 메시지를 보내고 약 7시간 후인 밤 9시 50분 박성재는 법무부 검찰국 형사기획과장으로부터 '영부인 명품백 사건 등 수사 상황 보고'를 받는다. 총 3건의 고발 사건과 관련해 고발인들에 대한 조사 일정이 연기된 상황 등이 세세히 담겼다.
그로부터 약 일주일 후인 5월 13일 박성재는 사실상 '김건희 수사팀'을 해체하는 성격의 검찰 고위간부 인사를 단행했다. 송경호 당시 중앙지검장을 비롯해 김건희 메시지에서도 언급된 김창진 1차장검사와 고형곤 4차장검사가 교체됐다.
그러나 중앙지검장 등 교체만으로 영부인은 성에 차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당일 저녁 8시 36분 김건희는 박성재에게 텔레그램으로 전화를 걸었다. 3분 후인 8시 39분엔 "이원석 검찰총장 사표 고심… 내일 일정 모두 취소"라는 제목의 뉴스 기사 링크를 전송했다.
5월 14일 아침 이원석 총장은 출근길에 만난 기자들이 전날 검찰 인사에 대해 묻자 7초간 굳은 표정으로 침묵하다가 "더 말씀 드리지 않겠다"고 사실상 항의의 의사표시를 했다.
5월 15일 새벽 4시 1분, 김건희는 박성재에게 다시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낸다. 윤석열도 그날 아침 8시 44분에 박성재에게 동일한 메시지를 보낸다. 대통령 부부가 몇 시간 간격으로 보낸 메시지엔 검찰총장에게 물러나라고 했지만 '개겼다'는 속된 표현까지 등장한다.
앞서 특검은 박성재 텔레그램 포렌식 과정에서 그가 김건희를 '김안방'(안방마님으로 추정)으로 저장한 것을 확인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단독]박성재, 김건희 '김안방'으로 저장…특검 "尹·金·朴, 정치적 공동체" 세 사람이 일반적인 법무부 장관과 대통령 또는 영부인의 관계를 넘어 정치적 이해관계나 사적인 어려움에 대한 대응을 공유하는 밀접한 공동체 관계에 있었다는 게 특검의 판단이다.
| ▶ 2024.5.15. '김건희·윤석열→박성재' 텔레그램 메시지 |
검사장급 인사가 전광석화처럼 이루어졌고 역대급 이었다보니 말들이 엄청 많습니다. 인사 배경 관련 용산이 4월 말이나 5월 초에 총장의 업무실적, 능력, 자기정치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용퇴를 요구했으나, 총장이 거부하고 게기기로* 하면서,,, 갑자기 중앙사장**에게 영부인 명품백 사건 신속처리(5월) 등을 지시한 게 배경이 되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이하 생략) (*개기기로, **중앙지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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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고위 인사에 대한 여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5월 20일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명품가방 수수 의혹과 관련해 고발인인 백은종 서울의소리 대표를 소환해 조사했다. 백은종은 조사 전후 언론과 만나 김건희를 소환조사 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5월 24일 검찰 중간간부 인사를 위한 인사위원회가 열렸고, 29일 발표됐다. 항간의 우려와 달리 '김건희 수사팀' 부서장들이 유임되자 언론에서는 "앞선 '방탄인사' 논란과 잡음을 해소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인사 발표 다음 날인 5월 30일 오전 10시 25분 김주현 대통령실 민정수석은 박성재에게 "장관님 인사 실력이 워낙 훌륭하셔서 말끔하게 잘 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냈다.
'김건희 불기소' 후에도 박성재에게 쏟아진 尹 주문
윤석열 전 대통령. 사진공동취재단2024년 10월 17일 서울중앙지검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 김건희와 그의 모친 최은순을 불기소 처분했다. 고발된 지 4년 6개월이 지나서야 나온 결론이 '김건희가 주가조작을 인지했다고 볼만한 증거가 없다'는 것으로 정리되자 비판이 쏟아졌다.
윤석열은 그날 저녁 8시 30분에 박성재에게 또 메시지를 보낸다. "문정권의 도이치모터스 검찰 수사 자체가 공소시효가 다 된 10년 전 일을 무한 별건의 별건 수사로 장장 2년간 막대한 수사인력을 투입해 매일 민주당과 언론에 흘려 마타도어 대선 이슈를 만들어내는 등 검찰 역사상 전례 없는 불법수사"라고 비난했다.
또 "이걸 아는 한동훈이 사건을 매듭짓지 않고 2년간 끌고온 것도 사악한 의도에 기인"이라며 "그야말로 전형적인 정치공작 수사 … 수뇌부의 무조건 기소 요구에도 검사들이 통화녹음 자료를 제시하며 이런 명백한 반증을 놓고 기소하면 나중에 형무소 가게 된다며 불응했다는 얘기가 파다 … 보수도 선동에 속지 말고 단결해야"라고 썼다.
2시간 후인 밤 10시 17분엔 윤석열과 박성재는 텔레그램으로 36분 27초간 통화하기도 했다. 특검은 이 통화에서 앞서 보낸 메시지 내용에 대한 논의와 김건희에 대한 수사 무마 방법을 강구하는 대화가 이뤄졌을 것으로 봤다.
순직해병·명태균 등…타기관 수사도 챙긴 법무장관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류영주 기자법무부 산하가 아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서 수사 중인 사안도 박성재는 성실히 챙겼다. 순직해병 사건의 피의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변호인(김재훈 변호사)을 통해 관련 수사 진행 상황을 꾸준히 공유 받은 것이다.
2024년 6월 2일 박성재는 김재훈으로부터 △이첩 보류 지시 위법 여부 △수사외압 여부 △1사단장 제외 이첩 여부 △대통령실 전화와 이첩보류 지시 관련성 △VIP 격노설에 대한 입장 등 주요 쟁점에 대한 피의자 측의 구체적인 변론 내용을 받았다.
6월 4일에도 '해병순직사건 특검은 대통령실 압수수색과 묻지마 기소로 제2의 촛불집회 및 대통령 탄핵을, 수원지검 술파티 특검은 이재명 재판 중단이란 방탄을 각각 실현하기 위한 술책'이라는 취지의 메시지를 수신했다.
특검은 박성재가 순직해병특검과 김건희특검 입법을 막기 위해 법무부 검사들을 동원한 정황도 적시했다. 6월 12일 오전 7시 22분 그는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으로부터 상설특검 임명을 방해할 수 있는 방안이 담긴 메시지를 받았다. 오전 9시 19분과 11시 45분엔 법무부 기획조정실장으로부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특검법 입법과 관련한 상황을 연달아 보고 받았다. 장관의 특별한 업무 지시에 따라 순차적으로 이뤄진 보고로 의심된다.
6월 23일 오후에도 법무부 기획조정실장의 텔레그램 보고가 이어졌다. 오후 5시 37분엔 '낼 8시에 국힘에 전달하기로 한 특검수정안 설명자료입니다', 오후 6시 19분엔 '
마지막 문장 장관님 의견 반영한 최종 버전입니다', 오후 7시 59분엔 '…이 자료를 다 주기는 어렵고 내용 요약과 시점을 고민해보겠습니다' 등의 메시지를 박성재가 수신했다. 직접 법리검토 의견을 제시하고 이를 당시 여당이었던 국민의힘에 전달하게끔 한 것으로 특검은 판단했다.
윤석열 김건희 부부를 겨냥한 또 다른 중대한 수사, 명태균 공천개입 의혹과 관련해서도 박성재는 열심히 정보를 파악했다. 같은 해 11월 3일 박성재는 법무부 공공형사과장으로부터 '오늘 현재까지 김영선 조사 내용입니다'로 시작되는 내용의 구체적 조사 상황을 보고받았다.
11월 9일에도 '명태균 조사 요지 보내드립니다'로 시작되는 내용의 피의자 진술 내용들이 박성재에게 보고됐다. 11월 15일 새벽 1시 22분엔 명태균·김영선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사실 등이 담긴 메시지가 박성재에게 전송됐다.
특검은 검찰총장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보유한 법무부 장관의 권한이 윤석열의 정치적 입지와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위법·부당하게 행사됐다고 판단했다.
청탁금지법 위반에서 내란 범행 동조까지
위에 서술된 법무장관의 여러 행위들 중 직접적으로 내란특검이 범죄 혐의를 적용한 건 2024년 5월 5일 '명품백 수사팀' 관련 내용뿐이다. 김건희가 메시지를 보낸 후 박성재가 관련 수사내용을 검사로부터 보고받은 것을 부정청탁금지법 위반으로 판단했다.
내란특검 박지영 특별검사보는 "법무부 장관으로서 구체적 사건에 대한 지휘권을 갖고 이를 행사해 정보보고를 받는 건 통상적 업무 수행"이라면서도 "이 사안의 경우 수사상황에 대한 보고를 지시한 과정 자체가 부정한 목적과 결합돼 있다. 개인적 청탁을 받고 수사상황을 확인한 것이어서 일반적 정보보고 업무와 다르고 법령을 위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부적절해 보이는' 다른 행위들은 박성재가 12·3 당일 저녁 용산 대통령실로 불려가 윤석열의 황당한 계엄 주장을 왜 내치지 못했는지 보여주는 배경자료가 될 전망이다. 윤석열이 왜 계엄에 이르렀는지를 설명할 서사이기도 하다.
박성재의 노력에도 윤석열·김건희 부부는 끊임없이 수사대상이 됐다. 박성재는 그걸 틀어막지 못해서가 아니라, 순리대로 바로잡지 않아 결국 계엄까지 이르게 한 책임도 함께 지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