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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미스터 고' 성동일 "애드리브? 동선 10㎝도 못벗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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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미스터 고' 성동일 "애드리브? 동선 10㎝도 못벗어나"

    돈독 오른 에이전트 맡아 디지털 캐릭터와 첫 호흡…"즐길 수 있는 역할 찾는 게 내 길"

    사진=이명진 기자

     

    성동일(46)은 22년 경력의 베테랑 배우답게 한국 영화사에서 '미스터 고'가 갖는 상징성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가 인터뷰 도중 "신기한 것을 보여 주겠다"며 대뜸 자신의 스마트폰을 집어 든 때도 그랬다.

    "미스터 고를 찍을 때 사용한 디지털 콘티 어플이 있어요. 2억 원 가까이 들여서 두 시간 넘는 영화 속 모든 장면을 하나 하나 컴퓨터 그래픽으로 나타낸 거죠. 촬영 때는 이대로만 찍었어요. 동선까지 그대로 따랐죠."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는 야구 에이전트 성충수(성동일 분)로 보이는 디지털 캐릭터가 수많은 관중이 들어찬 야구장에서 손을 흔들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뒤로 중국 배우 서교가 맡은 웨이웨이와 아시아 첫 3D 디지털 고릴라 링링의 캐릭터도 보였다.

    "이렇게 철저하게 약속된 움직임이 있는데 애드리브를 할 수 있었겠어요? 촬영한 화면에다 링링을 입혀야 하니 10㎝만 움직임이 어긋나도 안 됐죠. 각 신마다의 디지털 콘티에는 '이 장면에서는 어떤 카메라 렌즈를 사용한다'는 것까지도 구체적으로 나와 있었어요."

    디지털 콘티대로만 촬영한 것처럼 모든 과정이 정해져 있으니, 현장이 보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돌아가더라는 것이 성동일의 설명이다.

    "한국 영화에서는 첫 시도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배우로서도 새로운 경험이었죠. 지금 우리나라에서 이런 방식으로 영화 찍을 수 있는 건 김용화 감독 사단 말고는 없다고 봐야죠."

    -극중 링링과 막걸리 마시는 장면이 인상적이더라.

    "링링이 디지털 캐릭터다 보니 촬영 때는 혼자 연기해야 했다. 아무리 주당도 상대가 없으면 실력 발휘를 못하는 법인데, 안 보이는 링링이 있는 것처럼 연기하려니 어렵더라. 링링이 막걸리를 마시고 안주를 먹기 위해 손을 움직이는 속도 등을 가늠하면서 혼자 막 하려니 창피하기도 했다. 촬영하는 동안 김용화 감독이 실제로 막걸리 두 잔을 마시게 해 줬다. 그런 사람이 아닌데 말이다. (웃음)"

    -디지털 캐릭터와의 연기, 새로운 도전이었겠다.

    "처음에는 스트레스를 받았고 나중에는 욕이 나오더라. 시선 처리가 가장 어려웠다. 링링의 몸집이 크니 위를 바라봐야 하는데 자꾸 사람 눈높이로 시선이 내려오더라. 김 감독한테 '어디 보냐'는 소리 많이 들었다. 그래도 이번 작품 하면서 링링에게 많이 배웠다. 보통 배우들은 상대방이 연기할 때 자기 대사 칠 타이밍 잡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한데, 보이지 않는 배우와 연기를 하면서 상대의 움직임을 느끼려고 노력하고 반응하는 법을 알게 됐다. 상대 배우의 호흡을 살려 주고 배려하는 연기를 배운 셈이다."

    사진=이명진 기자

     

    -배우 인생에서 요즘처럼 큰 관심을 받은 때도 없을 텐데.

    "영화하면서 이런 적 처음이다. 원래 인터뷰도 꺼리고, 영화 끝난 뒤 포스터도 잘 안 찍었다. 어떤 포스터에는 하도 안 찍는다고 했더니 내 사진을 합성해 넣기도 했다. 사실 누가 알아봐 준다고 좋아하거나 싫어할 나이는 아니지 않나. 감수성도 사라졌고. 이번에는 김 감독 때문에 열심히 하고 있다. 그가 미스터 고에 쏟아부은 노력을 알기에 내가 꼭 보탬이 돼야 한다. 의무감이다. 해 줄 수 있는 게 이거밖에 없지 않나. 그 많은 투자자들이 김 감독을 믿고 지원했는데 내 연기가 민폐가 돼서는 안된다. 그래서 촬영 때도 김 감독이 하라면 말대꾸 안하고 다 했다. 스트레스는 매일 촬영 마치고 스텝들과 술 먹으면서 풀었다. (웃음)"

    -17일 미스터 고 개봉을 앞두고 술자리도 많아졌겠다.

    "개봉을 떠나서 평소에도 자주 먹는다. (웃음) 어제는 VIP시사회 뒷풀이를 해 새벽까지 먹었다. 집에도 못 들어갔다. 여전히 보통 새벽 3, 4시까지 먹지만 주량은 줄이고 있다. 이제 몸 생각 해야지. 인간이 만든 최고의 음식인 술을 무척 좋아하지만 지난 20년 동안 속상해서 먹거나 혼자 마시지 않았다. 특별한 주사도 없으니 사람들이 마음 놓고 자주 찾아와 술 먹는 거지 않겠나. 아내가 매일 다른 종류의 해장국을 끓여 주니 다음 날 속 걱정도 없다."

    -'미녀는 괴로워' '국가대표'에 이어 이번 미스터 고까지 김용화 감독의 최근 작품에 모두 출연했는데.

    "그에게 많이 배운다. 감수성도 좋고 연기에 대한 지론도 정확하다. 가끔은 '저 사람 연기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한다. 성충수가 웨이웨이에게 백지수표를 넘겨 주는 장면을 찍을 때였다. 관객들은 극대화된 감정 표출을 원했을 테지만, 김 감독은 '국가대표 아류작 만들기 싫다'고 하더라. 내가 감정을 폭발시키는 모습을 보이자 김 감독이 이랬다. '링링이 훌륭하게 해내고 있고 서교의 예쁜 눈도 있는데 왜 그러냐. 어른이 애 앞에서 울면 어떻하냐. 70년대 감정으로 삼류영화 찍냐. 슬픈 것도 기쁜 것도 감추라'고. 그래서 한 시간 쉬면서 감정을 누르고 다시 촬영했다. 배우인지라 감정을 시원하게 폭발해야 하는데 지금도 찝찝한 기분이다. 영화 전체를 놓고 봤을 때는 현실적인 연기였다는 점에서 김 감독에게 100% 공감한다."

    -돈을 좇다 정을 찾아가는 인물 성충수를 어떻게 해석했나.

    "인간은 누구나 성취욕이 있다. 그것이 과하면 독하다는 소리를 듣고, 덜하면 착한 사람이 되는 거 아니겠는가. 누구나 절실하면 독해질 수밖에 없다. 성충수는 삶에 있어서 모든 것이 절실한 불도저 같은 셩격을 가졌다. 김 감독은 성충수를 두고 '목숨 걸고 돈 버는 사람'이라고 하더라. 돈 때문에 애하고 싸울 정도면 말 다했지. 결국 그도 사람이다. 극 말미 갑자기 변한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이 절실한 성충수다운 선택이었을 뿐이다."

    -야구 에이전트 역인데 야구는 좋아하는지.

    "태어나서 경기 보러 야구장에 한 번도 안 가봤다. 우리 영화는 야구 영화가 아니다. 야구를 통해 감동을 주는 드라마다. 그래서 성충수 역을 맡는 데 무리가 없다고 여겼다. 대신 직업을 분석하려고 실제로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하는 베테랑 에이전트를 만났다. 일단 그 직업의 치밀함에 놀랐다. 일례로 메이저리그 구단주나 감독은 선수에게 좋은 소리,싫은 소리 안 한하고 에이전트에게 '저 선수 저러다 2군 내려간다'는 식으로 압박한다더라. 그러니 에이전트는 선수가 빨리 적응해 제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철저하게 관리해야 하는 입장이다. 내가 만난 에이전트는 키 185㎝의 늘씬한 배우 인상에 옷도 잘 입고 차도 좋은 거 타고 다니더라. 그가 이러더라. '더 나은 세상에 더 좋은 조건으로 옮겨가려는 선수를 대변하는 사람으로서 첫인상에서 믿음을 주려고 노력한다'고. 그 얘기 듣고 바로 살빼기 시작했다."

    -중국에서는 미남 소리 듣는다던데.

    "하하, 예고편을 본 관객들 사이에서 그런 얘기가 나왔다더라. 중국인들이 싫어하는 인상은 아니란다. 원채 평소에 지저분하게 하고 다니니 영화 속 슈트 입은 모습이 깔끔했나? 중국에는 재밌는 배우는 많은데 재미와 함께 감동을 주는 배우는 없다고들 하더라. 다행히 투자자들 사이에서 내가 그런 중국인들의 요구를 채워 줄 수 있을 거라는 말이 나왔다. 중국에서 개봉하는 미스터 고는 내 목소리를 중국어로 더빙했는데, 중국 최고의 성우가 참여했다고 하더라. 그들도 좋아할 만한 작품이라고 확신한다."

    -주연급 배우로 자리매김한 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어제 입은 옷 오늘 그대로 입었다. 집에 못 들어갔으니까. (웃음) 내 스스로 달라지려 하지도 않았고 주변에서 그렇게 봐 주지도 않는다. 오히려 미스터 고 하면서 작은 역할이 안 들어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다. '나 역할 가리지 않는 거 알잖아요'라고 떠들고 다녀야 할 판이다. 실제로 그렇게 해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고 싶다. 출연을 결정한 드라마 '응답하라 1994', 영화 '수상한 그녀'에서도 작은 역할이다. 오히려 그쪽에서 '역할 비중이 작은데 할 수 있겠냐'고 불편해 하더라. 내 캐릭터? 애 셋 키우는 입장에서 그런 거 없다. 대신 철칙 비슷한 건 있다. 스스로 즐길 수 있는 역할을 맡자는 것. 즐기면서 연기하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드라마, 영화는 망해도 나는 산다. (웃음)"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어두운 집안사를 밝혔는데, 알려지는 것이 두렵지는 않았나.

    "우리나라처럼 말 많은 나라에서 왜 안 그랬겠나. 그래도 시청자가 공감하든 아니든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밝힌 거다. 이제는 나이도 있고 밥 걱정도 크게 안 하게 됐으니 '저 옛날에는 이렇게 살았어요'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는 거다. 지금도 내 앞가림 못하고 그랬으면 나가지도 않았겠지. 아내와 자식 셋 데리고 살면서 여유도 생긴 거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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