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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일반

    "오랜시간 지나도 진실은 밝혀진다"

    유서대필 누명 무죄, 법정 눈물바다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재심 거치면서 국과수 필적 재감정
    - 법원의 사과나 유감 표명은 없어
    - 강기훈씨 수술 두번하고 암 투병중
    - 선량한 시민 피해보는일 없게 해야

    ■ 방 송 : FM 98.1 (18:00~20:00)
    ■ 방송일 : 2014년 2월 13일 (목) 오후 6시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이석태 (변호사)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의 강기훈 씨가 13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법원에서 재심 무죄판결을 받은 후 기자회견을 갖고 소감을 밝히고 있다. (송은석 기자)

     

    ◇ 정관용> 오늘 정말 의미 있는 재판 결과가 나왔습니다. 지난 1991년 이른바 유서대필 사건. 그래서 3년 넘게 옥살이를 했던 강기훈 씨 사건. 재심 끝에 오늘 무죄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강기훈 씨의 변호사죠. 법무법인 덕수의 이석태 변호사를 연결하겠습니다. 변호사님 안녕하세요.

    ◆ 이석태> 네, 안녕하세요.

    ◇ 정관용> 법원에 박수소리 나고 눈물바다였다고요?

    ◆ 이석태> 네, 그렇습니다.

    ◇ 정관용> 강기훈 씨도 같이 옆에 있었죠?

    ◆ 이석태> 그렇죠.

    ◇ 정관용> 무죄 판결 딱 내리고 나서 강기훈 씨 울던가요?

    ◆ 이석태> 굉장히 오랜 세월이 흘렀고요. 그리고 정말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기 때문에 어찌 보면 그런 데 대한 충격의 여진이라고 그럴까요? 비교적 담담하게 또 어차피 그렇게 예상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담담하게 좀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 정관용> 뭐라고 언급하지 않았습니까? 판결 이후에?

    ◆ 이석태> 나와서 기자들하고 기자회견할 때 보니까 본인이 제일 처음에 드는 생각은 적어도 이 정도 사건이라면 뭔가 법원에서 유감 표시든지 사과 표시를 했었어야 되는 것이 아닌지. 그런 생각이 처음에 얼핏 좀 들었다고 그래요.

    ◇ 정관용> 그런 사과나 유감 표시가 없었군요? 오늘도.

    ◆ 이석태> 네.

    ◇ 정관용> 지금 암 투병이라고 듣고 있는데, 건강은 어떻습니까?

    ◆ 이석태> 여전히 좀 안 좋고요. 수술도 두 번이나 했었고요. 그래서 계속 병 치료 중입니다.

    ◇ 정관용> 그동안 3년 옥살이하고 나온 것도 벌써 20년이 지난 일인데, 그동안 강기훈 씨는 어떻게 살았어요?

    ◆ 이석태> 컴퓨터쪽에 전문적인 능력이 있어서 주로 회사나 자영업자를 도와주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일을 좀 해 왔던 것 같습니다.

    ◇ 정관용> 그런데 참, 가슴 속에 멍에가 얼마나 컸겠습니까?

    ◆ 이석태> 그렇습니다.

    ◇ 정관용> 많은 분들이 아는 사건이지만 다시 한 번 정리해 볼까요. 이게 1991년 고 김기설 씨가 서강대학교 옥상에서 분신자살한 그 사건인데.

    ◆ 이석태> 그렇습니다.

    ◇ 정관용> 그때 검찰이 강기훈 씨를 지목하고 유서를 대신 썼다고 하고. 그렇게 했던 배경과 이유를 어떻게 분석하십니까?

    ◆ 이석태> 김기설 씨 분신 전에 여러 사람이 아깝게 분신을 했었고요. 그리고 또 그전에는 또 강경대 학생이라고 대학생이 있었는데 시위 도중에 경찰 때문에 죽음을 당했죠. 그것은 어떤 시민들의 정권에 대한 저항이 굉장히 컸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분신이 일어나게 되니까 또 주변에서 뭔가 분신의 배후가 있지 않느냐 이런 얘기들도 좀 있었고요. 그래서 조사하다가 이렇게 유서대필 사건으로 가게 된 거죠. 그것이 이른바 그 당시 운동권으로써 커다란 그런 정치적 타격이 되는 그런 사건이었습니다. 그게 의도한 바였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어쨌든 간에.

    ◇ 정관용> 분신이 자꾸 잇따르게 되니까 그걸 뭔가 운동권의 조직적 행동인 것으로 만들어보자. 이런 의도 같은 것들이 깔려 있었던 것 아닐까요?

    ◆ 이석태> 그 당시에 저희들이 보기에는 그런 의도가 있었지 않느냐. 그래서 그걸 말하자면 아주 주도면밀하게 여론을 그거로 몰고 갔고요. 그래서 가령 유서도 보이고 또 그거 얼핏 보기에 좀 달라 보이는 그런 필적 자료도 보이고. 이렇게 해서 여론이 초기에는 정말 그 재야운동권에 거의 치명타가 될 정도로 그렇게 악화됐던 게 사실입니다.

    ◇ 정관용> 그렇죠. 지금 방금 언급하신 것처럼 고 김기설 씨의 유서, 그건 정자체로 쓴 글씨체를 그대로 신문이나 이런 데 보여주고. 또 김기설 씨가 여기저기 흘겨서 낙서한 것들을 또 보여주고. 누가 봐도 이건 둘 다 좀 다른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게 만들고.

    ◆ 이석태> 그렇죠.

    ◇ 정관용> 막 그랬었죠?

    ◆ 이석태> 또 가령 김지하 선생 이런 분들이 죽음에 배후가 있다든가. 이렇게 또 써내시니까. 그러니까 그런 면들이 좀 있는 거죠.

    ◇ 정관용> 박홍 신부께서도 배후가 있다, 증거까지 갖고 있다, 이런 식으로 또 주장을 했었죠?

    ◆ 이석태> 네. 그래서 안팎으로 아주 커다란 소용돌이가 되면서...

    ◇ 정관용> 그래서 대법원에서 확정된 게 3년 6개월이었던가요?

    ◆ 이석태> 3년이었죠.

    ◇ 정관용> 3년?

    ◆ 이석태> 네.

    ◇ 정관용> 3년을 그래서 만기출소를 하게 됐고요. 재심까지 오게 된 과정은 어떻게 된 겁니까?

    ◆ 이석태> 2005년도에 경찰청에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라고 조직되어 있었는데, 거기에 김기설 씨의 친구 되는 사람이 가지고 있던 필적 자료를 제출해서, 그래서 그걸 토대로 해서 1차적으로 경찰청 과거사위원회가 의견을 냈고요. 이건 좀 문제가 있다. 그런데 그 후에 2007년도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라는 정부기구가 있습니다. 거기서 제대로 좀 조사를 했죠. 그래서 국과수라든가 또는 다른 일반 사설 필적 감정인한테 감정을 해 보니까, 그 결과가 한마디로 강기훈 씨 본인이 쓴 필적하고 유서가 다르고. 또 아까 말씀드린 김기설 씨의 친구가 내놓은, 그게 일종의 뭐 노트라든가 이런 건데요. 그거는 김기설 씨 본인 필적이랑 유서랑 필적이 같다 이렇게 되니까, 진실화해위원회에서 강기훈 씨가 억울하다 이렇게 해서 재심권고를 한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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