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물량 부족과 저금리로 임대시장이 전세에서 월세로 빠르게 재편되면서 집주인들의 도를 넘는 횡포가 계속되고 있다.
전세 재계약을 앞두고 일방적으로 월세 전환을 통보하거나 반강제적으로 집을 빼줄 것을 요구하며 내쫓는 것은 그나마 양반.
일부 집주인들은 전세와 월세를 두고 저울질하다 먼저 계약을 약속하고 이사 준비까지 마친 전세 세입자에게 일방적으로 계약 불가 통보를 하는 등 전세를 살던 서민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대전시 서구의 한 원룸에 2년째 살고 있는 직장인 윤모(33) 씨.
윤 씨는 최근 집주인으로부터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를 들었다.
집주인은 “집을 월세로 돌리려고 하니 계속 살려면 4000만 원이던 전셋값을 5000만 원으로 올려달라”며 “아니면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50만 원을 내라”고 요구했다.
올려줄 전셋값도, 다달이 낼 월세도 부담됐던 윤 씨는 결국 회사에 연차까지 내며 집을 알아봤고 서구 쪽에 기존 전셋값보다 500만 원 비싼 돈을 주고 또 다른 원룸을 구할 수 있었다.
윤 씨는 “집주인에게 시간을 조금만 더 달라고 부탁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월세로 살지 않을 거면 집을 빨리 비워 달라’였다”며 “집을 비교해볼 틈도 없이 쫓겨난 것 같고 지금 구한 전셋집도 언제 나가게 될지 불안하다”고 말했다.
직장인 양모(34) 씨도 최근 전세로 살던 중구의 투룸 빌라에서 거의 반강제적으로 쫓겨났다.
계약 당시 양 씨가 낸 전셋값은 7500만 원.
계약 만료가 다가오기도 전에 집주인은 무조건 적인 월세 전환을 통보해왔다.
양 씨를 더욱 서글프게 했던 것은 집주인의 태도.
집주인은 계약 만료가 보름이나 남았음에도 “집 정리가 아직 안 됐느냐”며 지속적으로 전화를 걸어 양 씨를 압박했다.
양 씨는 “월세에 살면 주거비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어 도무지 엄두가 나질 않았다”며 “전셋집을 구하기는 했지만, 집 없는 설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정모(32) 씨는 더 억울한 경험을 했다.
월세 전환을 이유로 기존 살던 집에서 나온 정 씨는 유성구 투룸 전세를 발견하고 6000만 원에 계약을 하기로 약속했다.
이삿짐까지 다 싸놓은 상태로 계약만을 기다리던 정 씨.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집주인은 계약을 차일피일 미루며 정 씨의 전화를 피했다.
며칠 뒤 집주인의 전화를 받은 정 씨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집주인은 “월세로 들어온다는 사람이 생겨 전세를 주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전세 계약을 약속해놓고 뒤로는 월세 세입자를 알아본 셈.
월세를 살겠다는 사람이 나타나자 정 씨와의 약속을 깬 것이다.
결국 정 씨는 부랴부랴 다른 전셋집을 알아봐 겨우 이사를 마칠 수 있었다.
정 씨는 “집 없는 설움에 비참한 기분마저 들더라”며 하소연했다.
집주인들의 월세 선호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은 최근 전반적인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
실제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지난 2012년 말 35%였던 월세 비중은 최근 42%로 계속 높아지고 있다.
저금리에 ‘월세시대’라는 말이 나오면서 “집을 빼달라”, “무조건 월세로 전환하겠다” 등의 집주인들의 횡포도 더 심해지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