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크림 자치공화국의 러시아 귀속 여부를 결정할 주민투표가 이틀 앞으로 다가온 14일(현지시간) 크림 수도 심페로폴엔 '폭풍 전야의 고요' 같은 조용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이날 심페로폴 시내에선 큰 집회나 시위 등은 벌어지지 않았고 시민들도 차분하게 생업에 종사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시내 중심가에선 스스로를 자경단으로 소개한 무장대원들과 반군사 조직인 '국민의용대' 소속 대원들이 관청과 주요 시설을 경비하며 질서 유지에 나서고 있었다.
시내 키로프 대로에 있는 크림 정부 청사 앞에서는 다양한 군복 차림의 국민의용대 대원 200여명이 단위 부대별로 모여 임무 수행에 앞서 훈령을 받고 있었다.
레오니트 레베데프 국민의용대 공보국장은 "크림 내의 군과 경찰 조직이 와해하면서 질서 유지와 관청·주요 군사 시설 보호 등을 위해 국민의용대가 창설됐다"며 "현재 심페로폴시에만 3천500여명, 크림 전체에는 5만~6만명의 의용대원들이 활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레베데프 국장은 "의용대의 핵심은 아프가니스탄 참전 용사, 장교 동맹 및 내무군 동맹 회원 등의 예비역들이며 일부 자원자들도 참가하고 있다"면서 "이들은 월급을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각 지역의 자경단 대원들도 모두 국민의용대 소속으로 편제돼 있다"고 덧붙였다.
시내 주코프스키 거리의 크림 의회 건물 앞에는 약 50여명의 카자크족 자경단 대원들이 건물을 경비하고 있었다.
시내 도로에선 러시아 번호판을 단 군용트럭 10여 대가 줄지어 이동하는 모습이 목격됐으며 러시아 국기를 매단 자동차들이 시내를 질주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심페로폴 공항을 오가며 택시 영업을 한다는 러시아인 로마는 "며칠 전까지 탱크나 전차 등이 시내에서 이동하는 모습이 자주 보였으나 이젠 어딘가로 자취를 감췄다"며 "시내 중심가의 주요 시설은 대부분 자경단원들이 경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 전까지 크림의 러시아 편입 움직임에 반발하며 시위를 벌이던 현지 타타르계 주민들도 러시아계 주민들과 러시아 군인들이 도시를 거의 장악하고 난 뒤엔 조용해졌다"고 전했다. 그는 "지금은 러시아군과 친러 자경단 대원(국민의용대)들이 크림을 통제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면서 "얼마 전까지의 혼란은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로마는 "크림 주둔 러시아 군인 수가 많이 늘어난 것이 분명해 보인다"며 "얼마 전까지 흑해함대 소속군인 약 6천명 정도가 크림에 주둔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크림의 러시아 군인 수가 3만5천명까지 늘었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고 소개했다.
실제로 이날도 크림 남부 세바스토폴항에서는 러시아군의 대형수송함이 도착하는 것이 목격됐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 수송함에서는 최소 1대 이상의 장갑차와 군용 트럭, 병력이 내려졌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이에 앞서 지난 10일에는 세바스토폴항에서 약 15km 떨어진 곳에서 러시아 번호판을 단 100여대의 전차와 군용 트럭의 이동이 포착되기도 했다.
로마는 이와 관련 "시내는 주로 러시아계 자경단이 통제하고 심페로폴 외곽엔 표식이 없는 군복을 입은 무장 세력들이 주요 도로의 길목을 장악하고 경비를 서고 있다"면서 "이들이 사실은 러시아 군인이란 소문이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크림 당국은 러시아군이 흑해함대 주둔지인 세바스토폴 기지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16일 주민 투표 결과에 대해 로마는 "주민 대다수가 러시아 편입을 지지하고 있어 투표 결과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심페로폴 시내에서 만난 시민 콜랴는 "크림 주민 대다수가 러시아 편입을 원하는 것은 수도 키예프에 들어선 친서방 성향 중앙정부가 크림의 러시아인들을 박해할 것이란 우려 때문이기도 하지만 러시아와 합쳐지면 크림의 경제가 훨씬 좋아질 것이란 기대도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크림이 러시아에 편입되면 월급이 2~3배 오를 것으로 크림 주민들은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크림의 항공 관문인 심페로폴 공항에서도 특별히 긴장된 분위기는 감지되지 않았다. 여객기들은 정상적으로 이착륙했으며 공항 경비가 강화된 흔적도 없었다. 우크라이나 중앙 정부 소속 국경수비대원들은 특별한 무장을 하지 않은 채 평소나 다름없이 근무를 하고 있었다. 입국 수속도 까다로워 진 것이 없었다.
다만 팔에 붉은 완장을 찬 자경단 대원 10여명이 공항 청사 밖에 몰려 있는 것이 목격됐다. 스스로를 공항 자경단 책임자라고 밝힌 막심은 "공항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이곳에 나와 있다"며 "현재 공항은 평온하게 정상운영되고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