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한 계열사의 재정 악화로 그룹 내 다른 계열사의 신용도까지 연쇄적으로 흔들리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신용평가사는 현대상선[011200], 현대엘리베이터[017800], 현대로지스틱스의 신용등급을 한꺼번에 강등시켰다.
지난 14일 한국신용평가는 이들 3곳의 무보증 회사채 신용등급을 세 단계씩 강등해 모두 투기등급인 BB+(안정적)로 조정했다.
한국기업평가[034950]도 현대상선과 현대로지스틱스의 회사채 신용등급을 각각 BBB+(안정적)에서 투기등급 직전 단계인 BBB-(부정적)으로 두 단계 하향 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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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나이스신용평가도 현대상선의 장기 신용등급을 기존 BBB+(부정적)에서 BBB로 한 단계 강등하고 현대상선, 현대엘리베이터, 현대로지스틱스를 하향검토 등급감시 대상에 올렸다.
신평사가 현대그룹 핵심 계열사 3곳의 신용등급을 동시에 하향 조정한 것은 현대상선의 대규모 적자와 재정 악화가 다른 계열사의 신용도에도 직접적으로 악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해서다.
현대그룹은 '현대로지스틱스→ 현대엘리베이터→ 현대상선→ 현대로지스틱스'로 연결되는 순환출자 구조로 이뤄져 있다.
류승협 한신평 기업·그룹평가본부 실장은 "이런 지배구조 때문에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로지스틱스는 지분법 손실 등으로 3년 연속 적자를 지속했고 최근에도 관계사 유상증자에 자금이 소요되는 등 현대상선의 재무악화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KT[030200] 그룹 계열사들도 한꺼번에 신용등급 강등 검토 대상에 올랐다.
지나친 계열사 자금 지원이 문제가 됐던 현대그룹과 달리 KT그룹은 자회사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단절한 것이 강등 검토의 원인이었다.
한신평은 KT ENS가 법정관리 신청을 한 지난 12일 KT와 다른 계열사인 KT렌탈, KT캐피탈, KT에스테이트, KT오토리스, KT텔레캅의 신용등급 전망을 하향검토로 일제히 하향 조정했다. 나머지 신평사도 KT와 계열사에 대한 등급 하향을 검토 중이다.
KT 계열사의 신용등급은 독자신용등급에 모기업의 지원 가능성이 더해진 것이었다. 이때문에 업계에서는 애초부터 KT 계열사들의 신용등급이 실제 재무구조에 비해 과대평가됐다는 지적도 제기돼왔다.
그러나 3천억원대의 대출사기 사건에 연루된 KT ENS가 KT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법정관리를 신청하자 신평사들은 KT의 후광을 배제하고 계열사의 신용등급을 재검토했다.
지난주 한진해운[117930]도 차입금 부담이 과중하고 단기성 차입금 상환 계획에 대응하기 위한 유동성 확보 노력이 시급하다는 이유로 신용등급이 또다시 강등된 상태다.
이 때문에 업계는 작년 말 대한항공[003490]이 발표한 한진해운에 대한 지원이 언제 이뤄질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해 12월 대한항공은 2천500억원의 자금 대여와 4천억원 수준의 유상증자 참여를 약속했다.
대한항공의 자금 지원은 한진해운 재무 개선에 핵심 변수이지만 한편으로는 대한항공의 신용도 훼손 우려도 낳는다. 현재 신평사들은 한진해운의 신용위험이 대한항공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크다며 두 기업의 신용도를 연계시켜 감독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희도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대한항공이 기저효과와 화물 수송량 증가 등에 힘입어 이익이 회복되고 있지만 한진해운의 유상증자 참여시기 등 예측하기 어려운 지배구조 이슈가 불확실성으로 작용한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