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미지비트 제공)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정책금융역할 재정립 방안의 일환으로 추진된 단기수출보험 민간개방 속도와 시기를 두고 한국무역보험공사(무보)와 손해보험업계가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최근 무보와 업계 관계자 등으로 꾸려진 관련 협의회가 열렸지만 양측의 입장 차이가 여전히 큰 상황이어서 단기수출보험 민간개방을 두고 계속해서 진통이 예상된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지난 8월 무보가 운영해왔던 단기수출보험의 40%를 2017년까지 민간금융회사에 개방하겠다고 밝혔다. 단기수출보험 시장규모는 보험료 기준으로 4천억원, 담보액수는 2012년 하반기 기준으로 40조원에 달한다.
단기수출보험은 수출기업을 대상으로 수출대금미회수(2년 이내) 위험을 담보하는 보험이다.
금융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가 중 95%가 민간보험사에서 단기수출보험 업무를 맡고 있는데다 국내 손보사들도 해외수입자에 대한 신용정보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 준비를 거쳐 상품 판매가 가능하다며 이 같은 민간 개방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를 두고 무보 안팎에서는 여전히 회의적인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 "해외보험사만 살찌우고 혈세만 축낼 가능성"·"정부가 잘 되는 판 깨…전면 재검토"전문가들은 수출보험 민간개방이 국부유출과 중소수출기업에 대한 지원 약화, 국가 재정 낭비 등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덕성여대 국제통상학과 김상만 교수는 "대기업의 손해율은 낮고 중소기업의 손해율은 상대적으로 높아 민간 보험사들은 대기업 위주의 우량 수출 건을, 무보는 중소기업 위주의 불량 수출 건만 인수할 가능성이 크다"며 "이 경우 무보는 수지균형을 위해 중소기업에 대한 보험료를 인상하거나 정부에 보조금을 추가로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어 "수출보험은 해외수입자에 대한 신용조사, 채권조사 시스템 구축 등 진입장벽이 높은 편이어서 개방될 경우 이미 시스템을 구축한 해외 손보사들이 시장을 독식하게 될 우려도 크다"며 "수출지원이라는 정책적 기능은 사라지고, 해외 보험사의 수익상품으로 전락할 우려가 커 수출보험 민간개방은 시기상조고 충분한 검토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현재 국제 수출보험시장은 프랑스 신용보험사인 율러 에르메스와 코파스, 아트라데우스가 독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디지털대 물류통상학과 안병수 교수도 "시장 관점에서 보면 손해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대기업은 보험료가 낮아야 하고, 손해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중소기업은 보험료가 상대적으로 높아야 하지만 무보는 똑같이 받고 있어 대기업들이 볼멘소리를 할 수도 있다"며 "수출보험이 민간에 개방되면 대기업들은 보다 낮은 보험료를 제시하는 민간보험업체로 빠져나가고 중소기업들만 남은 무보의 손실은 국민 세금이 투입될 여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안 교수는 특히 "단기수출보험은 공공기관이 운영하긴 했지만 규제에 의한 독점이 아니라 경쟁이 필요할 정도로 시장규모가 크지 않은 자연독점시장으로 보는 것이 맞다"며 "무보가 국민들의 세금을 축내지 않고 수출업자들 사이에 수지타산을 맞추며 수출보험을 운영해왔는데 보이는 손이 개입해 착한 독점을 깨고 오히려 사회적인 비용을 높이고 있다. 일부 대형 보험사들에게만 이익이 되는 민간 개방은 전면 재검토 돼야 한다"고 비판했다.
무역보험공사 관계자도 "단기수출보험 민간 개방에 원칙적으로는 동의하나 중소수출기업에게 많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민간 이양 시기와 규모를 미리 정해 놓고 추진하기 보다는 향후 예견되는 문제들에 대한 방안들이 충분히 마련된 후에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 "경쟁통한 보험료 인하 기대"·"중소기업 외면 우려는 기우"수출보험 민간개방을 두고 긍정적인 시각도 있다. 시장경쟁을 통한 보험료 인하 등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되고 중소기업이 피해를 볼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는 기우라는 지적이다.
성균관대 보험계리학과 이항석 교수는 "효과가 경쟁을 통한 보험료 인하나 수출보험시장 확대로 인해 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수출기업들이 증가하는 등 무역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될 수 있다"며 "우리나라는 정부산하기관이 수출보험을 취급하고 있지만 유럽은 이미 민간금융회사들이 수출보험을 취급하고 있고 은행권의 수출금융 사례를 봐도 수출입은행이 있지만 민간은행이 들어와 수출금융 여력이 확대됐고, 실제로 민간은행의 수출지원이 더 많은 등 긍정적인 부분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민간보험회사가 중소기업의 계약을 외면해 수출 중소기업이 피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민간보험사들은 한 가지 상품의 손익관점에서만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고 영업 확대나 시장 확대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안다"며 "전체적인 매출 확대 측면에서 볼 때 민간보험사들이 중소기업 계약을 외면할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손해보험협회 보험업무부 김지훈 팀장도 "법인이 90%를 차지하는 일반손해보험료 수입이 6조2천억 원이고 단기수출보험료 수입이 4천억 원 정도로 예상된다"며 "수출보험 가입을 거부했다가 계약자가 이미 가입 중인 일반손해보험을 놓칠 우려가 큰데 단기수출보험 수익률이 좋지 않다고 중소기업의 수출보험을 거부할 회사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팀장은 또 "무보로부터 전달받은 통계를 분석한 결과 중소기업을 상대로 한 수출보험의 손해율은 당초 알려진 것과 달리 60~70% 정도로 안정적인 수준이어서 중소기업의 계약을 받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이렇듯 정부 정책 발표 이후 8개월이 넘도록 시장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일각에서는 정책 시행 전면 재검토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지만 금융위는 일단 정해진 만큼 그대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보험사들이 수익성 검토를 거쳐 사업신청을 하면 허가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며 '국부유출과 중소기업 피해 우려' 등에 대해서는 "무역보험공사의 논리인것 같은데 수출보험 민간개방에 긍정적인 의견을 가진 전문가들도 많다"며 일축했다.
이를 두고 업계 안팎에서는 "우리나라처럼 수출의존도가 큰 나라에서 수출기업들의 경영에 큰 영향을 미칠 수출보험 정책 변경을 정부가 얼마나 면밀하게 검토하고 추진했는지 의문"이라며 "추진일정 등이 발표되긴 했지만 정부가 무보와 업계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정책이 미칠 영향과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한 검토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