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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선 침몰]매일 울리던 도서관 '비상벨'…이것이 원칙

[여객선 침몰]매일 울리던 도서관 '비상벨'…이것이 원칙

  • 2014-04-21 18:55

[김갑수의 돌직구]

위 사진은 본문과 관련이 없음. (사진=이미지비트 제공/자료사진)

 

◈ 국가란 무엇인가?

2010년 4월, 영국 유학 막바지였다. 논문 쓴다고 정신없던 그 때 유럽에 큰 난리가 났다. 아이슬란드에서 화산이 터졌는데 그 재가 온 유럽 하늘을 덮어버린 거다.

당연히 모든 비행기의 운항이 중단됐다. 시야 확보도 문제지만 더 큰 이유는 화산재가 비행기 엔진에 빨려 들어갈 경우 대형 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거였다.

하늘 높이 치솟은 화산재가 유럽 하늘 곳곳으로 둥둥 떠다니며 비행금지 기간이 계속 연장됐다. 당연히 기차와 페리의 모든 표는 동났고 막대한 영업 손실을 감당하던 항공사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시간이 꽤 지나 이젠 괜찮을 법도 한데 당국이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거다. 수 만 명의 시민이 대륙에서 돌아오지 못한 채 온갖 불편과 피해를 겪고 있음에도 지나치게 가혹한 규제를 가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영국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대충 넘기기엔 너무 아찔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1982년 말레이시아에서 호주로 향하던 브리티시 항공 비행기 엔진에 화산재가 스며들어 시동이 꺼졌다. 다행히 급강하 하던 중 겨우 엔진을 다시 점화 시켜 비상착륙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실로 끔찍한 참사를 겪을 뻔 했던 거다.

더구나 30년 전엔 한 대에 불과했지만 비행허가를 내 주면 얼마나 많은 항공기가 그와 같은 순간을 맞이하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지금 우리가 그런 것처럼 공교롭게 당시 영국도 선거를 불과 한 달 앞 둔 상황이었다. 총리는 노동당의 고든 브라운. 결국 국가 재난 상황에서만 소집되는 비상각료회의(Cobra)가 소집됐다.

그리고 매우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영국 시민은 모두 스페인으로 모이라는 발표를 한 것이다. 스페인은 당시 유일하게 화산재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나라였다. 당연히 스페인으로 비행기는 모두 정상 운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비교적 가까웠다.

그런 다음 영국 정부는 항공모함 두 척을 스페인으로 출발시켰다. 그곳에 모인 자국 시민을 항공모함에 태워 오겠다는 거였다. 정말 멋있었다. 무지 부러웠다.

어찌 보면 아득할 수도 있는 30년 전 사고에서 얻은 교훈으로 절대 흔들리지 않고 안전수칙을 지킨 정부, 그리고 불편보다 안전이 우선이라 믿고 기다려준 많은 시민들, 너무 과한 규제라며 정부를 닦달하지 않은 언론, 그 모든 게 부러웠다. 눈물 나게 부러웠다.

이번 참사를 지켜보며 새삼 묻게 된다. 정녕 국가란 무엇인가? 우린 언제쯤 믿음직한 나라에서 살 수 있을까?

전남 진도군 관매도 인근 사고 해상에서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는 군·경 합동 구조팀 (사진=윤성호 기자/자료사진)

 

◈ 국가만 문제인가?

다시 영국 이야기다. 바깥세상에서 유일하게 살아 본 곳이 거기뿐이니 비교할 곳이 그곳밖에 없다. 그렇다고 그 나라가 지상낙원이라는 게 아니다. 그냥 배울 건 배우자는 거다.

공부하러 갔으니 도서관에 있는 시간이 가장 많았다. 어딘들 안 그러겠냐만 도서관은 늘 적막강산, 근데 매일 같이 엄청난 크기의 비상벨이 울렸다. 단 하루도 거르는 적이 없었다.

약 30초간 고막을 터뜨릴 듯 비상벨이 울리고 나면 안내방송이 나왔다. 잘 가동되는지 테스트한 것이라고. 그리고 두어 달에 한 번씩 대피 훈련을 했다. 벨이 울리면 그 누구도 예외 없이 밖으로 나가야 했다. 그 누구도 투덜대는 이 없었다. 그게 규정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악착같이' 울려대던 그 소리, 참 고마운 소리였다. 그리운 소리이기도 하다.

후배 하나가 박사과정에 들어갔다. 당연히 개인 연구공간이 주어졌다. 비록 몇 명이 함께 쓰는 공간이지만 그럴 듯 했다.

기념 삼아 찾아 간 연구실에서 '흥미로운' 얘길 들었다. 입주 전 안전교육을 받았다는 거다. 화재를 비롯해 다양한 재난 상황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꼼꼼하게 교육을 받아야 했고,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사항에 대해 공지 받은 뒤 엄수하겠다며 서명을 했다는 것이다. 교수든 학생이든 예외가 없다 했다. 규정이니까.

어느 날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딸아이가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가는 길이라 했다. 코피가 멈추지 않아 학교에서 응급차를 불렀다는 거다.

딸아이는 유독 코피가 자주 났다. 그래서 학기 초에 미리 선생님께 알렸고 그때마다 솜으로 막아주면 된다 했다. 하지만 그 또한 일종의 '조치'에 해당하니 정말 그리 해도 되는지 몇 차례나 물어 괜찮다고 했다.

근데 하필이면 그 선생님이 휴가인 날 사단이 났으니 그런 사실을 알 리 없는 대리 교사가 1~2분 정도 지켜보다 응급차를 부른 거다. 병원에 도착하니 이미 코피는 멈췄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해맑게 웃고 있는 아이를 보고 사실 좀 멍했다.

그렇게 대충 대충 넘어가는 일이 없는 그들이 처음엔 솔직히 짜증났다. 너무 꽉 막힌 게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는 세상에서 평생을 살다 왔으니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아닌 건 아닌 거였다. 어떤 규정이든 예외가 없었다. 사는 속도 자체가 다른 그들에게 '빨리빨리'는 통하지 않았다. 모든 게 원칙대로였다. 특히 안전과 관련된 것이라면 더욱 철저했다. 그건 정부만의 몫이 아니었다. 함께 사는 공동체 성원으로 누구나 준수해야 할 약속이었다.

이번 참사를 지켜보며 새삼 묻게 된다. 정녕 국가만 문제인가? 우린 언제쯤 원칙과 상식대로 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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