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심리 안정 위한 상담 당연...고통 받으려는 마음 지양해야”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여 만에 벌써 두 명의 단원고 희생자 가족이 자살을 시도하는 등 유가족 정신 건강에 경고등이 켜졌다.
그러나 자식을 앞세운 부모들이 죄책감에 심리 상담을 기피하는데다 사고 진실 규명에 발 벗고 나서면서 유가족들의 심리 치료는 뒷전으로 밀려나 있는 상태다.
지난 11일 새벽 1시 5분 단원고등학교 2학년 희생자의 아버지 A(50)씨가 안산 화랑유원지 내 공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순찰중인 경찰에 발견됐다.
아내와 술을 마신 뒤 홀로 분향소를 찾은 A 씨는 아내에게 "아들에게 미안하다. 아들은 차가운 물속에서 갔는데 내가 이런 식으로 살면 뭐 하겠느냐"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지난 9일 오후 5시 50분쯤 유족 B 씨도 안산시 단원구 자신의 집에서 약물을 복용한 상태로 쓰러진 채 발견됐다.
아들의 삼우제를 치른 날 B 씨는 유족 단체 대화방에 '다른 세상에서도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긴 채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전남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 진도항 등대에서 실종자 가족이 아이의 이름을 외치고 있다. 윤성호기자
◈ 유가족들 할 일이 태산...심리 상담 생각 못 해"그러나 A 씨와 B 씨 모두 정부에서 지원하는 유가족 심리지원상담은 받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12일 유가족의 심리 상담과 지원을 맡고 있는 '안산 정신건강 트라우마센터'에 따르면, 센터는 희생자 213 세대 중 55%에 해당하는 110가구에 대해 상담을 진행했다.
그러나 나머지 100여 가구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상담이 이뤄지고 있지 않은 상태다.
이 중 20가구는 장례 일정 등을 이유로 상담을 미뤘으며 80여 가구는 제대로 접촉조차 되지 않고 있다.
센터측은 "장례를 치르고 3일째 되는 날 상담을 진행하는데 공교롭게도 두 분 모두 상담이 진행되기 전에 극단적 선택을 하셨다"고 말했다.
현재 안산 정신건강 트라우마센터에는 국립서울병원과 신경정신의학회 소속 의사, 중앙자살예방센터와 경기도 광역정신보건센터 심리요원 등 전문가 50~60여명이 안산에 상주하며 유가족 심리 치료를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아이가 죽었는데 무슨 염치로 상담을 받냐"며 극단적인 선택 이후에도 제대로 된 심리 치료를 거부하고 있는 등 심리 상담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는 상황이다.
실제로 유가족들은 자신의 건강이나 심리 상태보다는 억울하게 희생된 아이들의 죽음과 진실 규명에 더 열을 올리는 등 자신의 건강은 돌보지 않고 있었다.
11일 궂은 날씨 속에서도 분향소에 나와 진실 규명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던 유가족 이모씨는 "시청에서 심리 상담 전화번호는 안내해 줬지만 지금은 거기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며 "할 일이 산더미인데 상담 치료는 꿈도 못 꾼다"고 말했다.
또다른 유가족 김모씨는 "엄마들은 내 몸이 죽어나가도 분향소에 나와 일하고 있다"며 "엄마들 몸이 성한 게 뭐가 중요하냐 자식 새끼가 다 죽었는데"라며 울분을 토했다.
김 씨는 "당장 쓰려져 죽어도 보상받고 싶은 마음이 없다"며 "진상 규명이 중요하기 때문에 내 몸 추스를 생각도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유가족의 심리 상태는 위험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규섭 안산 정신건강 트라우마센터장은 "24시간 긴급 전화나 센터에 상담을 오시는 분들 중 자살 고위험군이 많지는 않다"면서도 일부 유가족들이 자살 고위험군에 속해 있다는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내비쳤다.
하 센터장은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신 분에 대한 상담을 진행하려 해도 한사코 거부한다"며 "강제로 상담을 진행하는 규정이 없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여러차례 접촉하며 노력중"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부모들이 죄책감을 덜어내고 적극적으로 심리 상담 치료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하규섭 트라우마센터장은 "유가족 대부분이 내 자식을 보내놓고 심리 안정은 사치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그러나 고통을 더 당해야 한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하 센터장은 "몸이 아프면 병원에서 주사를 맞는 것처럼, 큰 일을 겪었을 때 심리 상담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주변에서도 가족들을 혼자 두지 말고 손을 잡아주며 빨리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당부했다.